현실화 되는 북한 화폐개혁의 후유증

우려했던 대로 북한 화폐개혁의 후유증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 전문 매체들을 통해 들려오는 내부 소식들을 종합해 보면 화폐개혁 초기의 충격은 어느 정도 가셨지만, 여전히 혼란스런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는 타격이 큰 신흥 시장세력을 중심으로 산발적인 저항의 움직임이 문제였다면, 이제는 물가폭등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좋은벗들’에 의하면 새해 들어서면서 북한 전국적으로 물가가 비정상적인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3일, 평안남도 순천시장에서는 쌀이 kg당 90원, 옥수수가 45원에 거래됐다. 이는 12월 30일까지만 해도 쌀이 40-50원, 옥수수 20-25원선에서 거래되던 것에 비하면 2배 가량 오른 가격이다.

폭등세는 6일에도 이어져 평양시 만경대구역 당상시장에서는 쌀이 kg에 120원, 옥수수는 70원까지 뛰었다. 같은 날, 청진 수남 시장에서는 최고가를 다시 한 번 갱신해 쌀이 150원, 옥수수가 75원에 거래됐다.


청진과 경쟁이라도 하듯이, 다음 날인 7일 평양에서도 쌀이 150원으로 올랐다. 청진에서는 8일 오후 100원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50원으로 떨어졌지만, 얼마 못 가 200원으로 치솟았다. 심지어 평양에서는 쌀값이 250원까지 치솟았다는 소리도 들린다.


북한 당국은 갈수록 불안해지는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한편으로는 주민들에게 신권으로 거액을 지급하면서 민심을 추스르는 한편, 외화 사용을 억제하는 등 이중적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둥의 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지난달 중순 농민과 탄광 광부들에게 1인당 신권 1만5천원씩 지급했으며 소위 이상 인민군 장교들의 급여를 100%가량 인상했다. 이번 조치로 목돈을 거머쥔 농민과 탄광 광부들이 대거 상품 구매 대열에 합류하면서 이를 반겼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물가는 급등하고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북한의 무역결제은행인 조선무역은행은 지난 1일 신권 환율을 달러당 96.9원으로 공시했으나 단둥의 북한 무역일꾼들은 신의주에서는 달러당 200원, 평양에서는 180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은 지난해 12월 초 화폐개혁 실시 후 중순쯤부터는 외화사용을 금지시켰고, 1월 4일부터는 주요 도시에서 소위 ‘돈 장사꾼’이라 불리는 환전상들을 대대적으로 체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 보도에 의하면 외국인에 대해서도 환전시 개인정보를 포함한 서류 제출을 요구하는 등 북한내 외화 사용을 철저히 단속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이 이처럼 예민한 것은 그만큼 현지의 사정이 불안스럽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런 혼란이 초래된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의 실물가치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이 풀렸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말 북한당국은 화폐 개혁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실질 가치로 100배나 높은 임금을 지급했다. 즉 근로자들의 명목상의 임금을 화폐 개혁 이전과 동일하게 지급한 것이다.


하지만 실물경제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 북한 물가는 앞으로도 천정부지로 뛰어오를 것이고, 조만간 화폐 개혁 이전 물가 수준으로 복귀할 것이다. 때문에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을 100 배 인상된 금액으로 지급한다 해도 실상은 북한 주민들의 구매력이 100분의 1로 줄어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주민들이 축적한 부를 강탈해간 것이나 다름없다.


북한 당국이 이번 화폐개혁 조치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 북한에서 먹고 사는 문제의 핵심은 쌀값 안정화다.


북한 당국이 발표한 새 국정가격이 유지되기 위한 관건은 그 가격이 유지될 정도로 쌀이 공급되는가 여부다. 그런데 북한은 90년대 중반 이후 대략 연간 100만톤 이상의 쌀이 부족하다.


쌀 공급량 증대의 문제는 북한당국의 힘으로는 단기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중국이 여전히 북한이 필요로 하는 쌀의 일정 부분을 공급해주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지는 미지수다.


국제사회의 지원도 저조하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이 추진 중인 대북 긴급구호 사업을 위한 자금 조달 성과는 목표치의 약 18%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핵실험 이후 한국, 미국, 일본도 지원을 중단했다.


결국 북한 화폐개혁의 성공 여부는 남북관계나 북미관계 개선을 통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렸다. 북한은 화폐개혁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시장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공식경제부문의 확대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기존의 시장을 대체할 새로운 루트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1990년대의 대량 아사사태는 식량공급의 감소 탓도 있지만 붕괴된 배급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식량확보 루트가 제도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계획경제가 붕괴하면서 막 생겨나기 시작한 장마당에 적응하지 못한 계층에서 아사자가 집중 발생했었다.


그 때에 비해 지금은 주민들이 외부세계의 사정을 잘 알고 있고 시장의 영향이 더 커졌기 때문에 그만큼 주민들의 불만과 고통도 더 클 것이 분명하다.


북한은 현재 3중고에 처한 상황이다. 김정일 건강이상설, 후계구도 구축, 붕괴한 경제회생 등이 그것이다.


북한은 올해 신년공동사설에서 “경공업과 농업은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투쟁의 주공전선”이라며 주민 생활 향상을 위해 경공업과 농업에 박차를 주력하겠다는 뜻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과거 공동사설과 달리 인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은 광명성2호와 핵무기 개발이라는 화려한 불꽃쇼 뒤에서는 인민들의 삶이 그만큼 피폐해졌다는 반증으로 들린다. 북한이 당면한 어려움은 150일전투나 100일전투 같은 과거회귀식 노력동원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쌀밥에 고깃국, 비단옷에 기와집’으로 요약되는 북한 주민들의 이상을 실현하려면 김정일 위원장이 결단을 내려 핵을 포기하는 대신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는 길 외에는 대안이 없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김정일 위원장은 평화협정 같은 ‘꼼수’를 버리고 6자회담으로 당장 복귀하는 것이 인민들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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