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대북사업 위기마다 ‘공동보도문’으로 극복

현대그룹과 북한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에 관한 합의를 담은 공동보도문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3번째다.

현대측은 그동안 북한과 사업하면서 각종 의정서, 합의서, 부속합의서 등을 체결했는데, 특히 공동보도문은 사업이 위기에 봉착했다가 재개될 때 총수가 방북해 협상을 벌인 뒤 합의사항을 내놓을 경우 사용됐다.

이밖에 금강산 지역의 개발 및 사업권 획득, 시설 독점권 취득 등 비교적 ‘실무적인’ 사안들의 경우 는 합의 후 현대측이 남한에서 대언론 발표를 통해 공개했다.

첫 공동보도문은 지난 2003년 4월25일 북한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전파 방지를 내세워 금강산 관광 중단을 발표한 뒤 그해 6월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방북, 북측과 관광 재개 문제를 논의한 끝에 나왔다.

현대아산과 북한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6월13일 금강산 해로관광 및 시범 육로관광 재개, 개성공업지구 건설 착공식 개최 등 4개항의 합의사항을 공동보도문으로 발표했다.

공동보도문은 현대아산을 대표한 정몽헌 회장과 김윤규 사장,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를 대표한 송호경 부위원장, 금강산국제관광총회사를 대표한 방종삼 총사장의 명의로 작성됐다.

현대와 북한의 아태위간 2번째 공동보도문은 2005년 11월 발표됐다.

당시 현정은 회장이 남편인 정몽헌 회장의 사망으로 현대그룹 총수에 오른 후 김윤규 부회장과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결국 김 부회장이 퇴진하자 북한이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파트너였던 그의 퇴출에 반발, 대북사업이 중단 위기에 처했었다.

북한은 일일 금강산 관광객의 수를 기존의 절반 규모인 600명으로 줄이고, 아태평화위 대변인 담화를 통해 현대와의 모든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경고했지만 결국 현 회장이 방북, 금강산 관광 정상화에 합의해 위기를 넘겼다.

2차 공동보도문과 3차 공동보도문은 2003년 1차 보도문과 달리 체결 주체를 따로 명기하지 않고 각각 ‘2005년 11월11일 개성’, ‘주체98(2009)년 8월17일 평양’으로만 표기했다.

현대가 금강산관광지구 및 개성공업지구 개발업자이자 대북 경제협력 사업 주체로서 그동안 북한과 작성한 의정서나 합의서, 공동보도문은 체결 주체나 형식 등에서 다소 차이를 보인다.

양측의 첫 합의 문서는 금강산 관광의 토대를 마련했던 1989년의 ‘금강산 남북공동개발 의정서’였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1989년 1월23일부터 9일간 북한을 처음으로 방문해 고 김일성 주석을 만난 뒤 북한의 최수길 대성은행 이사장 겸 조선아시아무역촉진위원회 고문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실현하는 토대가 된 이 의정서를 체결했다.

현대와 북한측은 9년 뒤인 1998년 6월22일, 9월19일, 10월29일 각각 금강산 관광 사업관련 의정서, 합의서, 부속합의서를 체결했고 그해 11월18일 937명을 태운 관광선 `금강호’가 동해항을 출항, 남북 당국의 승인 하에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다.

이밖에 2007년 11월3일에는 아.태평화위가 현대측에 백두산과 개성지구에 대한 관광사업권을 주기로 했으며 관광을 실시하기 위한 실무 대책들을 취하기로 했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북남 사이의 관광사업에 관한 합의서’가 양측 사이에 체결됐다.

이 합의서엔 현대그룹 현 회장과 최승철 당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이 각각 서명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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