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비양심’ 김대중 전 대통령

김대중 전대통령이 6·15 남북 공동선언 기념 행사에서 현 정권을 비난하며 한 이른바 ‘독재자 발언’이 문제가 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도처에서 이명박 정권이 민주주의를 역행시키고 있다고 말한다’며,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현재와 같은 길로 나간다면 국민도 불행하고 이명박 정부도 불행할 것이니, 이명박 대통령이 큰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참가자와 국민들에게는 ‘국민은 독재자가 나왔을 때 반드시 이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했다는 것을 명심하고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고 호소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역행시키고 있는 이명박 정권에 행동하는 양심으로 맞서자는 호소로 들린다.

이명박 대통령이 민주주의에 역행하고 있다는 것은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와 일부 야당과 사회단체들의 시위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노 전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나 일부 야당과 사회단체의 불법시위에 대한 정부의 제한을 민주주의에 대한 역행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정치인의 부정부패를 근절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강화를 위한 대표적 과제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전대통령도 정치인의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하라는 원칙을 특히 강조했다.

이번 검찰수사는 노 전대통령이 말하는 부패 청산의 과제를 충실히 이행한 것일 뿐이다. 노 전대통령 사망 이후 격화되고 있는 일부 정치인들과 사회단체의 불법시위에 정부가 엄격하게 대응하는 것도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과 질서를 세우기 위한 방도일 뿐이다.

불법시위를 제한하는 것은 독재고, 노 전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회운동세력과 야당 정치인들의 불법행동에 눈감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식의 논리가 성립한다면 모를까, 최근 검찰 수사와 불법시위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독재로 규정할 수는 없다.

더구나 수백만명을 굶겨죽이고, 2천3백만 북한 주민의 자유와 권리를 완전히 박탈하여 수령의 노예로 만든 세계 최고의 독재자 김정일과 손을 잡고, 극단적인 수령독재 아래서 신음하는 북한 주민의 고통을 외면해온 김 전대통령이 아닌가? 그런 그가 우리 국민의 민주적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을 근거도 없이 독재자로 매도하고, 행동하는 양심을 부르짖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김 전대통령이 진정한 민주주의자라면 이명박 정부를 한 번 비판할 때, 김정일 독재를 백번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김 전대통령이 양심이 있다면, 김정일 정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한 번 할 때, 이명박 정부나 북한 주민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백번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김정일 독재보다 더한 독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김 전대통령은 발언에서 ‘북한이 많은 억울한 일을 당한 것으로 알고 있고, 미국으로부터 참기 어려운 모욕도 당했지만, 6자회담에 참가해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이명박 정부에게는 ‘일방적인 금강산 관광 철수를 철회하고, 개성공단 숙소를 설치하는 등 우리의 의무사항을 이행하여 6.15와 10.4 선언을 지켜나가라’고 당부했다. 김정일 독재에 대한 이해와 동정은 묻어나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우리 정부에 대한 이해와 관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적 경쟁 세력에는 독재라는 딱지를 쉽게 붙여대면서도 극심한 김정일 독재 앞에서는 침묵하거나 오히려 그와 손잡고 북한 민중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데 본인도 모른 채 협력하고 있는 그를 어떻게 민주주의에 대한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가?

김 전대통령이 남한 내의 정치적 갈등과 경쟁에 집착해 민주주의와 독재를 가르는 대원칙과 기준을 상실해 버린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김 전대통령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반대하지만, 6자회담이나 미국과의 회담에서 반대해야지, 절대로 전쟁의 길로 나가서는 안된다’는 말로 발언을 끝냈다.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김정일 정권의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 때문이지, 우리 정부와 주변국이 전쟁을 획책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김 전대통령은 김정일 정권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돈을 제공한 당사자다. 국민의 정부가 펼친 대북햇볕정책은 결과적으로 김정일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는 방식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말았다.

김 전대통령에게 양심이 있다면, 이명박 정부가 6.15선언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고, 전쟁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비난하기 전에, 오늘날 한반도의 긴장이 햇볕정책의 정책적 오류에서 비롯되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6.15 선언으로 돌아가자’는 커다란 구호가 써있고, 그 밑에 독재자 김정일과 손을 맞잡은 모습이 그려진 대형 걸게그림 앞에서 ‘행동하는 양심’을 부르짖고 있는 김 전대통령의 모습에서는 진정한 민주주의자의 얼굴도, 자신의 잘못을 정직하게 인정할 줄 아는 양심도 찾아볼 수 없었다.

김 전대통령의 ‘행동하는 비양심’이 우리 사회의 민주발전과 북한의 민주화, 한반도의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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