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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한다는 취지로 지난 9년간 추진되어온 ‘햇볕정책’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를 6개월 정도 남긴 가운데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이사장 유세희)가 4일 그동안 정부의 대북정책을 총체적으로 평가하고, 향후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할 수 있는 새로운 대북정책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한국 정부의 대북 지원정책, 북 개혁개방으로 이끌었나?’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햇볕정책을 추진한 지난 9년 동안의 대북정책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는 데에 대부분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특히 햇볕정책 기간 동안 핵실험 등 오히려 북한의 선군정치 노선이 강화됐다는 의견을 보였다.
고려대 유호열 교수는 “정부의 지나친 낙관주의로 인해 북한의 잘못된 행태에 대한 교정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만들었다”면서 “지금까지 북한 체제를 강화시켜주었고 오히려 북한이 개혁개방 선택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대신 물고기만을 줌으로써 북한 지도부나 간부 및 일반 주민들로 하여금 체제 개방과 정책 개혁을 위한 근본적인 노력을 적극 추진하지 않아도 좋다는 그릇된 신호를 보내주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 당국이 제한된 자원과 에너지를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을 뒷받침해 줬다”고 지적하고 이와 함께 “군사력이 강화돼 개혁개방을 주도할 엘리트들의 진출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올바른 대북정책에 대해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북지원의 투명성 ▲선군정치 약화와 대북교류를 강화하는 투 트랙 전략 ▲국내정치용이 아닌 대북정책 등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남북 화해협력 정책은 정권을 초월한 대안 없는 대세”라며 “남북경협의 확대는 북한을 안정적으로 자본주의 세계경제로 편입시키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고 교수는 “정부의 대북정책으로 인한 북한의 변화 정도를 수치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으로 인해 북한 내부에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북한이 의미 있는 변화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손광주 데일리NK 편집국장은 “햇볕정책 실패의 근본원인은 우리가 북한을 지원하면 개혁개방으로 유도해낼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김정일 정권의 생존전략인 군사우선주의(선군정치) 노선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했다”며 “중국도 해내지 못한 김정일 정권의 개혁개방 유도를 남한 주도로, 또 ‘민족공조’로 가능하다고 본 것은 착시현상이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대북지원정책이 남한의 강점인 경제력으로 북한의 강점인 군사력을 약화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의 강점인 군사우선주의 노선을 강화해주는 데 기여했다는 것.
손국장은 “대북정책은 남북간 대화와 협력이라는 ‘트랙 A’와 김정일 정권을 약화시키는 ‘트랙 B’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는데, 햇볕정책 이후 트랙 B가 약화되면서 도리어 트랙 A까지 약화시키는 결과를 자초했다”며 “트랙 A, B는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기 때문에 향후 ‘대북정책 정상화’가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운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정부의 대북지원은 북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정책수단”이라면서 “한국정부는 지원에 대한 반대급부로 북한 주민의 인권, 탈북자, 구조적 식량난 문제 등에 대해 당당히 정치적 결단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장은 “햇볕정책이 지나치게 정치화되고 말았다”며 “대북지원이 ‘퍼주기식’으로 바뀌면서, 북한은 ‘받으면서 큰소리치는’ 모습을, 그리고 한국의 정치인들은 북한과의 화해 제스처(북한방문, 고위지도층과의 회동 등)를 통해 스스로의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는 잘못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비판했다.
송영선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지난 10년간의 햇볕정책은 북한 정권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자원과 동력으로 작용했다”면서 “대북관계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했고’, 국내 정치적 의도로 북한에 접근함으로써 ‘호혜적 상호공존’이 아닌 일방적으로 끌려다는 점에서 햇볕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7월, 9월, 11월, 12월 등 총 6차례에 걸쳐 ▲북한의 개혁개방과 대북지원 ▲남북경협 평가 ▲신대북정책 모색 ▲북한인권개선 ▲신대북정책 주제별 제언 등의 내용으로 전략포럼을 계속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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