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못버린 이종석 前장관의 얼치기 논리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연합
나는 냉전주의자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전 세계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진영으로 양분화 돼 체제 경쟁을 벌이던 시절을 우리는 냉전시대라고 부른다. 그 기간은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이데올로기로 대립하던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시기다.


결국 사회주의 진영은 대거 몰락했고 자본주의 진영은 전쟁(Hot War)을 통하지 않고도 그 대결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러한 냉전의 의미성을 떠나 우리 사회에서 냉전주의자는 극단적인 체제대결을 지향하는 반공주의자와 비슷한 말로 쓰여지고 있다.


나에게 냉전주의자냐고 물어보면 “냉전 전략은 의미가 있었다고 보지만 나는 극단적인 체제대결을 지향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최근 한겨레 신문 칼럼에서 금강산 관광 대가로 막대한 현금을 지불한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비판한 사람들을 냉전주의자라고 불렀다. 


이 전 장관이 칼럼에서 과거 남북간 삐라를 뿌리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남북이 서로 비방하지 않는 세상을 꿈꿨다는 어린 시절의 일화를 선 보인 것은 최소한 포용정책을 사용하던 시절은 서로 삐라를 보내지 않았던 평화의 시대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냉전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을 총격으로 살해한 이후에도 책임있는 재발 방지 제도를 만들지 않는 이상 금강산 관광을 갈 생각이 없다. 북한이 핵실험을 통해 핵보유국의 지위를 굳히고, 우리 해군을 공격했음에도 수천억원의 통치자금을 계속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남북 정상이 만났다고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는 착각에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냉전주의자가 아니지만 남한에 오는 삐라와 북한에 가는 삐라가 그 의미에서 천지 차이라는 점도 잘 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이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삐라는 수령과 폐쇄적인 체제를 허황되게 미화한 것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보내는 삐라는 북한 주민의 눈과 귀를 틔워주는 진실의 보고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보면 이 전 장관은 포용정책이라는 달콤한 환상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을 냉전주의자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전 장관은 칼럼에서 “1972년 남북공동성명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상대방을 중상비방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했다”면서 “그러나 이제는 북한의 도발에 대한 조치로 군당국이 대북전단을 보낸다고 한다. 이로써 상대방을 중상비방하지 않는 남북화해의 상징은 깨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정부와 극우 인사들은 냉전적 정책과 언사들을 쏟아내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대북 삐라 살포를 재개한 것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 때문이다. 북한은 천안함을 폭침한 것도 부족해 연평도를 포격해 민간인을 살상했다. 이후 정부는 5·24 대북조치로 논의됐던 대북 삐라 살포를 전격 결정했다.   


우리 정부가 대북 삐라 살포를 재개한 것은 북한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압력수단의 차원이 크다. 그러나 북한은 천안함 피격에 대해 사과는 커녕 오히려 중상모략이라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하고 이를 강제하기 위한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대응이다. 또한 앞서 말했듯이 대북전단은 외부와 단절된 북한에 외부 정보를 알릴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서 북한 주민들의 의식변화를 도울 수 있다. 이 전 장관은 북한의 도발로 무고한 장병들과 시민들이 희생 당해도 응당한 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지, 북한 주민은 외부정보도 모르고 바보처럼 3대세습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 전 장관은 “관광객 피살사건을 계기로 금강산을 향한 휴전선의 통문은 닫혔다”면서 “현정은 현대 회장이 김정일을 만나 이 사건을 풀 단초를 마련하고 다섯 가지 사항에 합의했으나 정부는 제 입맛에 맞는 곶감 빼먹듯 이산가족 상봉만을 수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다가 ‘납북 어부’가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무고한 시민이 관광하다 북한군에 총 맞아 사망했는데, 이에 대한 사과와 안전보장 약속없이 관광이 재개될 수 있다는 주장 자체가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이 얼마나 왜곡됐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 국민이 희생당하고 북한의 도발이 계속돼도 지원을 해야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러한 과거 정권의 잘못된 대북정책을 바로잡는 과정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이 전 장관은 칼럼 말미에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면서 이 정부 들어서 국군포로 송환노력이 소극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물론 이명박 정부가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 열성적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과거보다 훨씬 낳아졌다는 것이 기자의 해석이다.  


이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에서 3년간 귀환한 국군포로는 10명인데 비해 참여정부에서는 3년간 30명이었다”면서 “이명박 정권은 조국을 위해 희생한 이들에 대한 무한책임을 강조하지만 이 단순한 자료조차도 누가 진정 애국정권인지를 똑똑히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의 삶을 그 척박했던 냉전시대로 돌리려 하는 정략과 무능, 무책임으로 얼룩진 얼치기 정책을 언제까지 감내할 것인가”라고 덧붙였다.


그가 말한 것처럼 이명박 정부에서 귀환한 국군포로는 참여정부 때보다 20명 적은 10명이다. 그러나 최근 국군포로 귀환이 적은 가장 큰 이유는 국군포로에 대한 북한 내부의 통제와 감시가 강화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부당국자들과 NGO 대표들의 설명이다. 과거 국군포로가 발생해도 해당 대사관에서 ‘대한민국에 세금 낸 적 있냐’고 다그치던 상황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햇볕 10년 동안 우리는 현금과 대북지원으로 한반도 평화를 사려고 한 것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 3대세습을 노골화 하는 현재에도 햇볕정책이라는 순진한 사고로 북한을 변화시키고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과거 정책의 실패는 값비싼 수업료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비싼 수업료를 냈음에도 이 전 장관처럼 과거 정책으로 회귀하자고 주장을 하는 것은 역사를 다시 거꾸로 김정일 입맛대로 돌리자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 전 장관의 자중(自重)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