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의 한계와 김정일의 수령절대주의

정치와 사회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1997년 황장엽 선생의 망명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 굳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각종 언론과 미디어에서 떠들썩하게 보도했으니 웬만한 사람은 그의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본 것이 당연하다.

북한에 별 관심이 없었던 사람은 그의 망명에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겠지만, 북한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북한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간단히 그의 약력을 살펴보자면 북한 최고의 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김일성종합대학을 거쳐 1949년 모스크바종합대학에서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을 공부했다. 1954년 입국하여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1958년 노동당 핵심 간부로 발탁되었다. 그후 1965년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에 임명되었고 주체사상 확립에 관여하였다. 1970년 당중앙위원, 1980년 당비서, 1984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1987년 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북한의 주요 요직에 있었으며 부족할 것 없는 생활이 보장되어 있었던 그가, 왜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남한으로 왔을까. 그가 우리 ‘남쪽 사람들’에게 과연 무엇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은 그의 저서「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를 보면 알 수 있다.

저자는 탄압을 피해 남한에 온 것도, 안락한 노후를 보장받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 김정일과 싸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결정적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에게 김정일과 싸우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가족과 수많은 지인들의 희생을 무릅쓰고 온 그에게, 그리고 얼마 남지 않았을 노년의 저자에게 그 시간이 얼마나 안타까웠겠는가.

수령이 있어야 인민이 존재한다

이 책은 철학적 이론서가 아니다. 북한에 대한 풍부한 자료가 담겨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현상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수령절대주의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게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바탕 위에서 쓴 글이다.

저자는 수령절대주의의 연원과 역사, 그 작동구조를 밝히고, 이로 인한 각종 사회적 폐해들을 지적했다. 또한 이의 제거 없이는 북한 동포들의 인권도 남북의 평화도 통일도 절대 보장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햇볕정책으로 수령절대주의를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을 비판하며 의견을 제시한다.

인민의 이익은 최고 선진계급인 노동계급이 대표하고, 노동계급의 이해는 전위당이 수렴하며, 전위당은 최고의 공산주의자인 수령이 지도한다는 스탈린의 수령주의! 그나마 스탈린주의는 인민과 노동계급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북한의 수령절대주의는 수령에서 출발한다. 수령이 사상을 창시하고, 이 사상에 의거하여 당이 조직되고, 이 당에 의해 노동계급이 영도되고 이에 기초해야만 인민들이 역사에서 자주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수령이 있어야 당이 있고, 인민이 존재한다.

북한에서 자주 등장하는 ‘그대가 없으면 조국도 없다’는 구호는 솔직하게 수령절대주의를 표현하고 있다. ‘동무들에게서 수령의 신임을 떼 놓으면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고 김정일은 이야기한다. 이 민족을 김일성 민족이라고도 한다.

북한에서 모든 교육은 수령우상화에 맞추어 있다. 인민들의 창조성이 발양될 조건은 어디에도 없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 세 가지가 이 책에서 핵심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내용이다.

햇볕정책의 모순

저자는 특히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된 햇볕정책의 한계를 논한다. 햇볕정책의 취지는 간단하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외교적으로 고립된 김정일 정권이 전쟁을 일으키면 어떻게 하느냐,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게 아니냐, 남북분단의 주원인이 냉전이었는데 이제 냉전이 해소되었으니 민족의 이해와 화해를 도모해야 할 때가 아니냐, 우리가 도와주면 김정일도 외투를 벗을 것이 아니냐.

저자는 바로 이 부분에서 개탄을 금치 못한다. 수령절대주의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히틀러에게 속은 유럽을 이야기한다. 독소불가침조약을 히틀러가 체결했는데 그것이 지켜졌는가, 시간을 벌고 히틀러의 힘만 키워준 게 사실이지 않은가, 도와주더라도 그 정권의 성격에 따라야 하지 않은가, 강도에게 시간을 주고, 돈을 주면 오히려 강도를 도와주는 것 아닌가, 외치는 내치의 연장이다, 인민의 목숨을 파리만도 못하게 생각하는데 남측 동포들의 생명을 귀히 여기겠는가, 법을 내팽개친 독재자가 국제사회에서 남북관계에서 약속을 지키겠는가.

김정일에 의해 만들어진 수령절대주의의 실체를 알고 진정한 통일로 가기 위해서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지, 이 책에서 저자는 일목요연하게 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그가 왜 북한에 남아서 북한 사회를 변화시켜보려 하지 않고 남한으로 올 수밖에 없었는지, 현 정부의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왜 아무런 개방조치도 취하지 않는지 궁금한 독자들은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북한 사회의 실체와 그 지도자 김정일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The DailyNK 기획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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