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과 ‘북한 장기생존론’은 허구

▲ 북한도 중국式 개혁개방 가능할까. 상하이 푸동

90년대 이후 남한의 대북정책은 ‘통일공포증’이라고 할 수 있는 요인이 많이 작용하였다.

남한 정부와 국민들이 90년대 초까지 통일에 대한 열망이 컸지만 독일식 흡수통일의 고통스러운 경험 때문에 통일에 대한 인식은 극적으로 바뀐 듯하다. 지금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통일이 나라의 발전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생각보다 남한경제를 파괴시킬 수 있는 위협으로 보게 되었다.

이러한 공포가 결코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최근 남한에서는 독일식 흡수통일을 피하고 북한의 단계적인 변화를 바람직한 시나리오로 보게 되었다. 햇볕정책의 기반이 된 이 시나리오에 따라 북한이 중국처럼 단계적으로 시장화 정책을 하도록 김정일 정권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국 안에 ‘또 하나의 중국’은 없다

남한 납세자들에게 부담 없는 전략으로 보이는 이 계획은 한국 정치계, 사회 각 분야에서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물론 20만 명의 북한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들은 석방까지 10-20년 더 기다려야 하겠지만, 남한 납세자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꿈같은 시나리오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맹목적인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 즉 단계적으로 자유화될 북한이라는 나라가 수십 년 동안 북한 주민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면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 전략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중국이나 베트남의 사례를 인용하며 그 시나리오가 북한에서도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점이 있다. 이 시나리오는 중국과 북한 사이의 엄청난 큰 차이를 부정하는 허점이 많은 논리에 의거하고 있다. 중국에 ‘또 하나의 중국’이 없고, 베트남도 ‘또 하나의 베트남’이 없다. 대만은 너무 작아서 중국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중국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형편을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활형편과 비교할 경우에도 다른 나라의 번영이 자기의 생활형편과 직접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북한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북한 사람들이 남한이 이룩한 번영을 보게 되면 같은 문화, 같은 민족으로서 극적인 충격이 될 것이다.

또 중국 사람들은 대만과 통일이 되어 중국의 경제가 많이 향상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물질적으로 풍부하고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남한과의 통일은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민주주의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나리오를 이미 독일에서 보았다.

북한주민에게 남한은 매력적인 ‘대안’될 것

북한체제 ‘장기생존론자’들은 북한 주민들이 동독 사람들처럼 행동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 60년 동안 세계 역사상 가장 엄격한 독재체제에서 살던 북한 사람들이 또 수십년 동안 권위주의적인 체제를 견디고 단계적인 개혁을 통해 생활의 개선을 끈기 있게 기다린다는 것이 가능할까? 이 가정은 믿기 어려운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권위주의 체제를 잘 견디고 별로 투쟁하지 않는다. 그들은 1950-70년대의 남한 사람들처럼, 권위주의를 경제발전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로 본다.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정치적 안정을 필요악으로 보는 것이다.

또 중국 사람들은 권위주의 체제에 의한 고속성장으로 생활 수준의 향상을 기대하는 것 외에 다른 도리도 없다. 그러나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남한과의 통일이 훨씬 매력적인 대안이다.

북한 주민들이 구동독 사람들처럼 행동하지 않는 이유는 북한체제가 주는 공포심과 주민들의 무지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무서운 공포체제와 남한을 비롯한 해외 국가들의 사정에 대한 무지이다. 정치적 억압 그리고 엄격한 쇄국정책은 북한정권의 생존을 위한 필요한 조건이다.

북한 정권이 수십년 동안 쇄국정책을 펴온 결과, 주민 대부분은 북한을 옛날처럼 ‘지상낙원’으로 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북한이 얼마나 낙후한지, 얼마나 빈곤한지 아직은 잘 모르는 것 같다.

북한이 중국식 개혁과 개방정책을 택하려면 나라의 문을 더 열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주민들을 해외 생활, 특히 남한 생활에 대한 정보에서 격리하는 방법이 없어져 각종 정보가 공식, 비공식 교류를 통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갈 것이다.

같은 나라의 다른 한 부분으로 인정된 남한의 생활 수준이 북한보다 10배~20배로 높은 사실을 북한 주민들이 알게 될 때, 북한 주민들은 자기 정권이 나라를 다스릴 권리가 있는 정통성 있는 정부로 보지 않을 것이다.

개혁개방과 사회통제, 양립 어려워

또 중국식 시장개혁은 북한식 통제 시스템과 양립하기 어렵다. 여행증 없이 마음대로 출장도 가지 못하면 시장경제가 어떻게 발달할 수 있을까? 독립 회사에서 출신성분을 지식과 능력보다 더 중요시하면 이러한 회사가 경쟁력이 있을까?

물론 중국에도 공산당 권위주의 체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중국은 정치범 가족들이 서양 기자들과 만나 정권을 비판하는 인터뷰를 별 문제없이 한다. 북한보다 훨씬 자유스럽다. 따라서 약화된 통제체제는 북한체제 생존의 필요조건인 ‘공포심’을 자아내지 못할 것이다.

남한의 번영에 대해 잘 알게 되고, 보위부를 무서워하지 않게 된 북한 주민들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로 만든 김일성-김정일 정권을 정통성 있는 정부로 계속 인정하고, 정치적 경제적 생활을 대폭 개선할 수 있는 남한과의 통일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오랜 기간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는 믿기 어렵다.

물론 독일식 통일이 각종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는 걱정은 근거가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고통스럽지만 해야 하는 일도 적지 않다.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이 남북의 통일 문제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역사학 박사

<필자 약력> -구소련 레닌그라드 출생(1963) -레닌그라드 국립대 입학 -김일성종합대 유학(조선어문학과 1986년 졸업) -레닌그라드대 박사(한국사) -호주국립대학교 한국사 교수(1996- ) -주요 저서 <북한현대정치사>(1995) <스탈린에서 김일성으로>(From Stalin to Kim Il Sung 2002) <북한의 위기>(Crisis in North Korea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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