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권서 ‘팽’당한 ‘北인권기록보존소’ 설립할 때

▲ 동독의 국가범죄로 희생된 8만여 동독인 희생자 기록을 보관했던 서독 중앙기록보존소의 존재는 동독의 인권유린을 억제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사진은 동독인 희생자 명단을 소개하고 있는 한스 오토 풀룸마이어 중앙기록보존소 소장의 모습. <사진제공:북한인권정보센터>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북한인권문제가 사회적, 정책적 이슈가 되고 있다.

그 중심에서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이하 기록보존소)의 설립과 운영이 논의되고 있다. 기록보존소는 북한에서 발생한 인권피해 사건을 조사하고 기록하여 DB(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함으로써 북한 당국의 인권침해 행위를 예방하고 향후 피해자에 대한 구제와 보상,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적정한 처벌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필자는 2000년 이후 기록보존소의 설립과 운영을 당시 통일부에 제의하였으나, 북한 당국을 자극하고 남북 화해와 협력에 방해가 된다는 사유로 거부당했다.

당시 최종 결재를 담당하던 통일부 고위직들은 그들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반대했다. 인권의 보편성과 북한인권의 심각성을 이해하는 실무자들이나마 북한의 인권피해 기록 축적에 대해 필요성을 인정하였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

햇볕 통일부, 北인권 기록보존소 반대

정부차원의 기록보존소 설립이 무산되면서 필자와 뜻을 함께 했던 북한인권 활동가와 연구자들은 사재를 출연해 2003년 현재의 (사)북한인권정보센터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센터는 북한인권 침해 사건을 조사하고 기록하기 위하여 현재까지 3,000여 명의 국내외 탈북자에 대한 인권피해조사를 실시했으며, 분단이후 탈북자와 북한방문자들이 작성한 수기 170여 권, 그리고 잡지와 신문기사, 북한에서 촬영된 영상물과 연구보고서 등 인권침해 사건이 포함되어 있는 수집 가능한 모든 자료들을 모아왔다.

북한인권피해 조사에 대한 선행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본 센터 연구진은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연구지원을 받아 ‘북한인권 피해조사와 분석양식’을 개발하고,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북한인권피해 사건의 DB를 구축할 수 있는 ‘NKDB 통합 인권 DB’를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운용하고 있다.

이후 DB의 관리와 운영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2007년 부설기관으로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설립했고, 보존소는 DB의 관리 및 자료 외부공개 수준 결정, 보고서 발간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DB는 16개 대분류(권리유형: 생명권, 개인의 존엄성 및 자유권, 생존권, 건강권, 교육권, 이주 및 주거권, 결혼과 가정에 대한 권리, 재생산권, 신념 및 표현의 권리, 집회 및 결사권, 재산권, 참여권, 노동권, 피의자와 구금자의 권리, 외국인 권리, 기타)와 94개 중분류(침해유형-세부 권리침해 유형), 88개 세부항목, 98개 도구 및 방법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8년 2월 현재 DB에 등록된 인권침해 사건은 4,235건이며, 관련 인물은 3,217명이다. 그러나 3,000여명의 탈북자 인권피해 조사 자료 중 현재 700여명에 대한 조사 자료만이 분석, 등록되었을 뿐 나머지 자료는 연구인력의 부족으로 아직도 작업 중이다. 나머지 조사자료에 대한 분석을 마치면 실제 관련 사건은 1만건이 넘을 전망이다. 서독정부가 1961년부터 통일시기까지 30년간 공식적으로 운영한 동독지역 인권피해 조사기관이었던 ‘잘쯔기터 인권침해 중앙기록보존소’의 최종 사건 기록 41,390건과 비교하면 적지 않은 사건기록임을 알 수 있다.

기록보존소는 또한 국군포로, 납북자, 정치범수용소, 종교박해 등 하부 DB를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다. DB의 등록 자료들은 매년 발간되는 ‘북한인권통계백서’(국문/영문)와 ‘북한종교자유백서’에 활용된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민간차원에서 운영되고 있는 기록보존소에 대한 정부차원의 지원방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하고자한다.

동독 인권유린 횡포, 서독 기록보존소가 억제

먼저 기록보존소는 반드시 운영되어야 한다. 기록보존소는 정부 교체와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어야 하며, 북한인권 피해자 증언과 관련 자료를 종합적으로 수집할 수 있어야 하고, 수집된 자료의 외부공개와 활용에 제한을 둘 수 있도록 독립적 운영체계를 확보해야 한다.

서독의 ‘잘쯔기터 인권침해 중앙기록보존소’는 1961년 동독의 심각한 인권침해 사건에 분개하여 설립되었으나, 서독내 친동독 성향의 정당과 언론, 민간단체들의 강력한 폐쇄요구를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심지어 운영비를 분담하고 있던 서독내 일부 지방주(州)는 운영비 분담을 거부하기도 했다.

특히 동독의 집권층이 기록보존소 종사자에 대한 특별한 처벌규정을 제정해두었기 때문에 종사자들은 늘 신변위협을 받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동독과 (범죄)인도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공산주의 영향력 하에 있는 모든 지역에 대한 여행을 포기해야 했다. 이들의 이름은 동독의 수배자 명단이 실린 책의 가장 위쪽에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동독의 수상과 정치인들은 동서독의 관계개선을 위한 협상과 논의의 전제조건으로 ‘잘쯔기터 인권침해 중앙기록보존소’의 폐쇄를 강력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서독 정부는 동독의 요구와 서독내 반대세력의 주장을 무시하고 기록보존소를 통일시기까지 운영했다. 그 결과 동독의 정치범과 인권침해피해자들은 기록보존소를 희망의 존재로 인식하였으며, 동독 권력자들은 자신의 처벌 가능성을 우려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특히 통일 이후 기록보존소의 자료는 가해자들에 대한 형사 처벌 자료로 활용되었다.

민관 힘 합쳐 北인권유린 예방해야

과연 한국정부가 국가기관으로 기록보존소를 설립할 경우 통일시기까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인가?

북한의 강력한 반발과 한국의 복잡한 정치 지형을 고려해 볼 때, 기록보존소가 우리 정부기관으로 운영되는 것은 여러가지 어려움에 노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소한 이명박 정부 임기 내에는 유지될 수 있을지 몰라도 남북관계 개선과 한국 내 정치지형의 변화 과정에서 정부기관의 공식적 운영방식이 지속될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기록보존소 폐지를 요구하는 북한의 태도에 굴복되지 않도록 현재와 같이 민간에서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은 어떤가?

이것은 안정적 재원 확보의 어려움, 정부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자료협조의 제약, 탈북자 조사시설과 교육시설에서의 조사협조 어려움, 기록보존소 자료의 활용과 관리의 공공성 유지를 생각해 볼 때 그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기록보존소는 정부와 민간의 공동운영 방식으로 유지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하여 가칭 ‘북한인권지원법’ 또는 관련 법률에 설립 근거를 두는 법정단체로 기록보존소의 성격을 규정하고, 관련 법률에 기록보존소의 운영을 위한 정부의 지원과 협조를 명시함으로써 정부 지원하에 민간이 운영하도록 제도화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 방안은 북한의 반발과 폐쇄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며, 남북화해와 협력 및 관계 개선에도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재정 지원과 자료 및 조사 협조를 책임지고, 민간은 운영과 유지를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하면 된다. 그리고 자료 활용 및 공개와 관련해서는 그 수준과 범위를 민관 공동 협의 방식으로 설정하면 될 것이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실용주의 노선’과도 일맥상통하는 모델이다. 안정적이며 지속적인 북한인권 개선 활동을 위해 이제 정부가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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