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강조 사라졌지만 ‘비핵화’ 언급도 없는 북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

북한의 최근 공식 회의나 발표에서 ‘핵’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11일 열린 ‘김정은 국가 최고수위 추대 6돌 중앙보고대회’에서 보고자인 최룡해 당 중앙위 부위원장은 김정은의 업적을 찬양하면서 북한의 위상을 “세계적인 군사대국” “전략국가의 지위”라고만 언급했다. 1년 전 5돌 중앙보고대회에서 “핵보유 강국”으로 지칭한 것과는 다른 표현이었다. 11일자 노동신문에서는 병진노선을 언급하면서 ‘핵-경제 병진노선’이라는 용어 대신 ‘새로운 병진노선’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핵’이라는 말을 피해간 것이다. 11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도 ‘핵’과 관련된 별다른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 특사단의 방북 때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표명했고, 김정은의 중국 방문 때에도 북한이 ‘단계적 비핵화’를 할 의사를 밝혔다는 중국쪽 보도가 나온 점, 북미 간 물밑접촉 과정에서 북한이 미국에 비핵화 문제를 논의할 의향을 밝혔다는 보도 등으로 보면,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된 상황에서 북한은 ‘핵’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피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핵문제와 관련된 협상국면인 만큼, ‘핵’이라는 용어 사용으로 불필요한 분란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인 것 같다.

‘비핵화’ 언급도 없는 북한

하지만, 이 시점에 우리가 동시에 살펴봐야 할 부분이 있다. 북한이 ‘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비핵화’라는 단어 역시 공식 매체나 발표를 통해서는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표명했다는 것은 한미중과의 접촉 과정에서 전언의 형식으로 전해진 것일 뿐, 북한이 공식 회의나 발표를 통해 ‘비핵화’ 의지를 표명한 적은 아직 없다. 북한 주민들에게 공식적으로 비핵화 의지를 밝힌 적은 아직 없다는 뜻이다.

사실, 최룡해가 사용한 ‘전략국가’라는 말은 북한이 ‘핵보유 국가’라는 뜻이며, 노동신문이 사용한 ‘새로운 병진노선’이란 말은 ‘핵-경제 병진노선’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최고인민회의에서 ‘핵’과 관련된 메시지가 없었다지만, 법률개정 권한이 있는 최고인민회의는 ‘핵보유국’을 서문에 명시한 헌법(2012년 개정)도 바꾸지 않았고,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와 같은 법률(2013년 제정)을 폐지하지도 않았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비핵화와 관련해 어떤 변화도 보여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핵문제 입장 바꾸기가 껄끄러워서?

물론, 지난해까지만 해도 핵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매진하던 북한이 갑자기 주민들에게 비핵화를 언급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을 바라는 것은 바닷물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노동신문 2월 23일자)이라고 말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주민들에게 비핵화를 언급하기에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이다.

하지만, 북한이 아직까지 ‘비핵화’를 공식화하지 않고 있는 것이 단순히 입장을 바꾸기가 껄끄럽기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해서라도 체제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주변국과 대타협을 이룰 수 있음을 살짝 흘려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비핵화’ 의지는 아직 유동적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되고 미국에 비핵화 협상 의사를 밝혔다는 지금까지도 북한이 대내적으로 비핵화 얘기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가 아직은 유동적임을 방증한다. 미국과의 협상이 잘 될 지, 그래서 정말 핵을 포기해도 되는 시기가 올 지, 북한에게는 아직 자신이 없는 것이다. 혹시 핵협상이 잘 안 될 경우를 상정한다면, 구태여 비핵화라는 언급을 주민들에게 해서 혼란을 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북한이 대내적으로 비핵화와 관련된 언급을 언제 어떤 수위로 할지는 남북, 북미정상회담과 같은 대외적 여건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구도로 협상국면이 가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비핵화와 관련된 언급이 점진적으로 등장하겠지만, 원하는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면 비핵화라는 말이 끝내 등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찌 보면, 북한 대내적으로 비핵화에 대한 언급이 어느 수위로 등장하느냐가 북한이 이 국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지를 판단하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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