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시설 폐쇄’만으로 재가동 막기는 역부족

▲북한 영변 핵 시설 ⓒ연합뉴스

북한이 6자회담에서 중유 5만톤을 받는 조건으로 핵시설 폐쇄(shut down)에 합의했다. 북한이 폐쇄에서 한발 더 나가 불능화 조치를 취할 경우 중유 95만톤으로 환산되는 에너지와 경제, 인도적 지원을 받게 된다.

이번 6자회담에서 북한 영변 핵시설의 ‘동결(freezing)’, ‘폐쇄’, ‘불능화(disabling)’ 등 핵시설 폐기 정도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합의문에는 북한이 불능화 조치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불능화 시기와 내용은 워킹그룹에서 논의되겠지만, 미북간 정치적 타결이 전제돼야 한다.

북한은 당초 핵시설 동결을 주장했다. 한미 양국은 한발 더 나가 핵시설 폐쇄와 함께 불능화를 요구했다. 협상 끝에 북한이 폐쇄조치에 대한 요구를 받아들려 합의문이 나왔다.

그러나 북한은 불능화 시기를 합의문에 넣자는 제안을 끝내 거부했다. 이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6자회담 소식을 전하면서 핵시설 불능화 대신 ‘핵시설 가동 임시 중지’라고 표현했다.

◆동결은 핵시설 출입 및 보수 가능한 가동 준비 상태=이번 6자회담에서는 북한 핵시설 해체 단계를 동결->봉인∙폐쇄->불능화->영구 해체(dismantling)로 나누었다. 동결은 북한의 비핵화 1단계 조치로 북한 영변에 있는 핵시설을 그대로 두고 가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북한의 핵시설은 영변에 있는 5MW 원자로와 핵 연료봉 제조 공장,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 등을 말한다. 동결 조치는 이러한 시설에 대해 봉인과 철거를 하지 않고 출입 및 보수가 가능하기 때문에 언제라도 재가동이 가능하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합의 때 핵시설 동결을 약속했지만 이후 재가동에 들어가 플루토늄을 추출한 바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번 6자회담에서 한미는 북한의 동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진전된 조치를 요구했다.

◆폐쇄조치도 핵시설 재가동 막을 수 없어=폐쇄는 동결과 같이 핵시설 가동을 중단하면서, 북한 관계자의 접근 및 보수까지 제한하는 것이다. 시설 자체를 폐쇄한다는 의미다.

폐쇄 조치도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재가동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동결과 큰 차이가 없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어기고 국제원자력기구 직원을 추방하고 원자로를 재가동했다. 폐쇄조치는 이러한 북한의 행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는 없다.

김태우 국방연구원 군비통제실장은 “폐쇄조치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북한이 몰래 핵시설에 접근해 가동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국제원자력기구가 공장 봉인, 출입 금지 등의 감시를 북한의 간섭 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불능화’만이 플루토늄 추출 원천봉쇄 가능= 북한의 핵시설 재가동을 막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불능화다. 불능화는 북한의 핵시설 중 핵심적인 시설을 제거하거나 작동 불가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불능화는 군축회담에서 비행기 등의 핵심 부품을 제거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영구 해체의 전 단계에 해당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전문가들은 불능화라는 용어는 일반적인 회담에서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미국이 불능화라는 세분화된 용어를 사용한 것은 북한 핵시설을 돌이킬 수 없도록 폐기해야 한다는 의지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영구 해체는 원자로 건물을 완전히 폐기하는 조치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불능화 다음 단계로 5MW 원자로와 핵 연료봉 제조 공장,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 등 핵심시설을 포함한 기타 시설도 모두 파기한다는 의미다. ‘해체’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 자체를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제거한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6자회담에서 폐쇄 및 더 진전된 불능화 등에 합의 한다고 해서 낙관적으로 볼 수 없다”면서 “북한은 상황이 반전되어 5MW 원자로를 가동시킬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 언제든지 협의를 깰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이 합의를 지키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