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보유국 세운 원수님 고맙습니다”

‘10.9 핵실험’ 이후 한달 반이 지난 평양은 ‘핵보유국’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듯했다. 남북어린이어깨동무가 24일 평양시 강남군 장교리에 건립한 ‘모자보건센터’ 준공식 취재차 22일부터 25일까지 평양에 체류하는 동안 둘러본 평양시내는 핵보유국을 알리는 붉은색 구호판을 시내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고 시민들 또한 핵보유국임을 공공연히 자랑하며 자긍심을 드러냈다.

◆”인민들 사기 충천” = “핵보유국이 된 5천년 민족사의 역사적 사변을 길이 빛내이자”, “핵보유국의 당당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제국주의자들의 온갖 도전을 단호히 짓부수자”
평양역 광장을 비롯해 평양시내에는 핵보유국 관련 구호가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찬양하는 구호 만큼이나 많이 나붙었다.

특히 일부 구호는 “핵보유국으로 일떠(일으켜) 세운 김정일 원수님 고맙습니다” 등 핵실험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대 치적으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북한 대남기구인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이제 (핵보유국이 된) 우리 공화국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자긍심을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또 “남한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핵무기는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말을 수 차례 되풀이 하며 안심시키기도 했다.

평양 양각도호텔에서 만난 한 시민도 “인민들의 사기가 그 어느 때보다 충천해 있다”면서 평양의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6자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도 엿보였다.

올들어 수 차례 평양을 다녀온 남한 대북지원단체의 한 인사는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북측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고 있다”면서 도시 분위기를 ‘긴장 속의 평온’ 이라고 평했다.

북한 관계자들은 6자회담과 남한 대선 전망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가 가장 우려하는 주민들의 식량문제에 대해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모르겠다”고 답하거나 ‘노 코멘트’로 일관해 식량문제가 치부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북한 민화협 고위 관계자는 남한과 국제사회의 식량사정과 관련한 우려에 대해 “일 없다(괜찮다). 자체 조달할 수 있다”면서 자존심을 놓지 않았다.

그는 그러나 향후 남북관계 전망에 대해 “남쪽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해, 남한의 전향적인 조치를 기대하는 듯 했다.

◆”도심은 활력이 넘치지만..”= 평양 도심은 활력이 넘치는 듯 했다.

이른 아침부터 중심가인 김일성광장에서 노란 모자를 눌러쓰고 내년 봄 공연 예정인 집단체조 ‘아리랑’을 연습 중인 수만 명의 청소년들의 모습은 사회주의 체제 특유의 집단성과 역동성을 보여줬다.

특히 대낮에 평양 도심거리에서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청춘남녀들과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거리를 오가는 남녀 대학생들의 모습은 북한체제의 경직성이 많이 완화됐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또 분홍.초록색 등으로 단장한 일부 고층아파트들도 도시 이미지를 한결 밝게 만들었다.

그러나 평양은 여전히 21세기 지구촌의 ‘고독한 섬’으로 비쳐졌다.

물론 독특한 북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겠지만, 국제호텔인 평양 양각도호텔마저 인터넷 연결이 쉽지 않았고, 정보화시대의 최신 이기인 휴대전화도 상용화 되지 않고 있었다.

핵실험으로 국제정세가 악화된 탓인지 외국 관광객들도 눈에 많이 띄지 않았다.

낙엽이 진 거리에 10여m씩 줄을 지어 ‘무궤도 전차’를 기다리는 시민들과 자전거 행렬 등은 이색적인 도시 풍경을 자아냈지만 도심 거리를 오가는 차량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중학교 영어회화 학습 ‘눈길’ = 미국과 사활을 건 생존게임을 벌이고 있는 북한이지만 국제 공영어가 되다시피한 영어 교육마저는 외면하지 못하는 듯 했다.

평양시내 모란봉제1중학교에서는 30여석 규모의 어학실습실을 차려놓고 학생들에게 영어회화 학습을 집중적으로 시키고 있었다.

회화 시연을 하는 학생들은 원어민 못지 않은 발음을 선보였다.

평양에는 많은 소학교.중학교들이 이 학교와 같은 어학실습실을 갖춰놓고 있다고 학교 관계자는 귀띔하기도 했다.

특히 모란봉제1중학교에는 남한과는 달리 학생들의 석차를 인물 사진과 함께 교내 복도에 게시해 눈길을 모았다.

이와 관련, 학교 관계자는 “학습열의를 높이는데 제일 좋기 때문”이라며 “모든 학교에서 성적 순위를 이렇게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모란봉제1중학교 4학년 1반 교실에는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효순.미선양’의 자리가 여전히 보존돼 있었다.

이 중학교는 두 여학생이 숨진 이듬해인 2003년에 명예학생으로 등록시킨데 이어 지난해에는 졸업장을 수여하기도 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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