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박사 김태우의 5차 6자회담 최종분석

1990년대 초반 북한의 플루토늄(Pu239) 생산으로 인해 조성된 긴장국면을 제1차 핵위기라고 한다면, 1998-9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실험발사와 핵관련 시설로 의심받던 금창리 터널을 둘러싸고 고조된 긴장을 제2차 핵위라 할 수 있다.

제3차 핵위기는 2002년 10월 미국이 북한의 농축 프로그램 보유를 선언하면서 점화되었다. 이 위기는 미국의 경수로 공사 중단, 북한의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 핵동결 해제 및 영변 5MW 원자로 재가동, 플루토늄 생산 재개 등으로 이어졌으며 2005년 2월 10일에는 북한 외무성이 ‘핵보유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북한이 플루토늄탄 보유는 기정사실이 되었고, HEU를 통한 핵무기 개발도 시도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신빙성을 더하게 되었다.

6자회담은 제3차 핵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다자 대화체로서 2003년 8월에 시작되어 현재 제5차 6자회담이 진행되고 있지만, 핵해결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제5차 6자회담의 1단계회의(2005년 11월 7-9일)는 11월 12일부터 부산에서 열리는 APEC회의를 감안해야 한다는 중국의 제안에 따라 공동발표문의 이행과 관련하여 각국이 원칙과 방안을 제시하는 선에서 3일간의 회의로 마감되었다. 이제 APEC 이후에 개최될 제2단계 회의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북한의 강경한 대미 비판 등으로 핵협상을 전도를 어둡게 하는 요인들은 여전히 많다. 아직도 6자회담의 전도에는 많은 고산(高山)과 심곡(深谷)들이 가로놓여 있다.

공동발표문의 의미와 과제

물론 2005년 9월 19일 제4차 회담이 도출한 공동발표문(Joint Statement)은 일단 희망적인 생각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공동발표문은 핵해결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지며, 북한에게 군사적 잠재력과 무관한 최소범위의 평화적 핵이용권만을 인정하면서 ‘모든 핵무기 및 현존하는 핵프로그램들의 포기’ 약속을 받아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였다.

그럼에도 필자는 공동발표문 직후 쏟아진 희망적 견해들에도 불구하고 발표문은, 법적으로는 핵 대화의 파국을 방지한 중간적 조치(modus vivendi)에 지나지 않는데다가 향후 막중한 과제들을 남기고 있어 섣부른 낙관론이 금물임을 반복적으로 지적했다. 공동발표문이 남긴 과제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공동발표문에 포함된 모호하거나 이중적 의미를 가진 표현들의 극복: ‘포기(abandon)’란 표현은 ‘폐기’나 ‘해체’에 비해 모호하고 북한의 주관적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있어 모든 핵시설의 물리적 해체를 원하는 미국과 분쟁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적절한 시기’라는 표현의 애매성도 핵협상을 좌초시킬 수 있는 함정이 될 수 있다.

공동발표 다음날 북한 외무성은 “경수로 제공 없이는 핵억제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한국에 대해서도 ”200만 kw의 송전이 경수로대신 주는 것이면 받지 않겠다“라고 말하는 등 경수로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였다. 이는 북한의 先 투명성 조치에 따라 경수로 제공을 논의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을 미국의 견해와는 정면으로 대립된다. ‘행동 대 행동’도 북한이 동시 보상을 강조할 때 쓰던 표현으로 북한의 충분한 신뢰 회복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으로 믿는 미국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별도의 포럼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논의한다”라는 표현은 북한이 ‘한미동맹 철폐’와 ‘주한미군 철수’라는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하기 위한 선전장을 원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② 종합적인 핵합의서 도출: 핵포기의 범위를 정하고 사찰의 대상과 절차를 합의하는 일이나, 주요 조치들의 타이밍이나 선후관계를 정하는 문제는 만만하지 않다.

공동발표문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프로그램의 포기“를 명시하고 있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핵프로그램을 폐기할 근거가 마련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이것으로 1994년 제네바 합의가 불문에 부쳤던 1992년 이전까지의 플루토늄 생산활동, 2003년 1월 북한이 핵동결을 해제한 재처리 시설의 가동상황, 미국이 고백을 원하고 있지만 북한이 존재를 부인하고 있는 농축 관련 시설, 북한 스스로가 존재를 주장한 핵무기 등을 모두 검증하고 폐기할 수 있는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농축시설에 대해 북한이 ”없는 시설을 어떻게 사찰할 것인가“ 라고 반문하고 나선다면, 그리고 핵무기에 대해서 ”블러핑(bluffing)을 위해 핵보유를 주장했을 뿐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을 바꾼다면, 협상은 혼미 속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③ 합의의 이행: 종합적인 핵합의가 서명되더라도 북한의 이행 문제는 별도의 과제로 남는다.

④ 핵해결과 인권문제의 연계: 2004년 미 의회가「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킨데 이어 2005년 11월 17일 유럽연합(EU)이 주도한 대북 인권결의안이 유엔에서 채택됨으로써 이제 북한의 인권문제는 세계적인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추세를 감안할 때 핵해결의 반대급부로 북한에 제공되는 에너지와 경제지원은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유도하는데 기여해야 하며, 북한으로 하여금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국제사회에 참여하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긍극적으로 원하는 핵포기의 반대급부는 체제의 보장과 정권의 안위이기 때문에, 역설적이지만 핵포기의 대가로 주어지는 반대급부가 오히려 인권부재의 수령체제를 인정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논리도 성립한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핵해결이 북한체제의 경직성을 완화하고 인권을 개선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당위론에는 변함이 없어야 한다.

제5차 6자회담

지난 11월 9~11일간 개최된 1단계 5차 회담은 각국이 선호하는 이행 원칙과 방안들을 제시하는 선에서 종료되었기 때문에 이것으로서 향후 핵협상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북한이 제기한 ‘단계별 핵폐기 방안’은 북한의 근본태도가 바뀌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북한이 제시한 5단계는 ‘핵실험 보류,’ ‘핵이전 금지,’ ‘핵무기 추가 생산 금지,’ ‘검증을 통한 핵활동 중지 및 핵폐기,’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 이행’ 등인데, 북한이 여전히 핵포기에 앞서 ‘여건 조성’을 주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미국이 적대정책을 포기해야 핵을 포기할 수 있다“라는 종래의 입장을 대변한다.

특히 ‘핵실험 보류,’’핵이전 금지’ 당연한 금기사항으로 미국이 이를 북한의 양보조치로 인정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핵활동 중지 및 핵폐기’도 “핵활동을 중지하는 것이 핵폐기”라는 식의 두루뭉술식 표현일 수 있으나, 모든 핵시설의 가동중단에 더하여 확실하게 제거하기를 원하는 미국의 생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미국과 IAEA는 당연히 북한이 일단 핵활동을 중단하고 핵시설, 핵물질, 활동 등을 성실하게 신고(declare)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말하고 있는 수순과는 다르다.

북한이 ‘선 여건 조성’을 주장하면서 ‘경수로 선 제공,’ ‘미군 기지 사찰’ ‘미국의 대남 핵우산 철폐,’ ‘수교 조치’ 등을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은 상존한다.

북한이 마카오 은행의 대북제재를 비판하고 나선 것도 주의해서 볼만하다. 1단계 5차 회담에 참석 중이던 북한의 수석대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마카오 주재 중국계 은행 ‘방코델타 아시아 은행’이 미국의 조치에 따라 북한과의 거래를 중단한 것에 대해 거세게 항의하면서 재제를 풀지 않으면 핵폐기 논의를 유보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북한은 회담이 열리기 직전에도 같은 이유로 미국을 강하게 비난했었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는 금융제재에 대한 북한의 민감성을 나타낸다.

북한은 매년 7-8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하는 만성 적자국이지만 남북한 관계(대남 교역, 경제협력 사업 등)에서 비롯되는 외화와 무기수출, 미사일 수출, 마약 거래, 위조달러, 조총련 송금, 해외 비밀구좌로부터의 송금 등으로 보전해온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한 외화 수입은 연평균 8-11억 달러로 추정되며, 무역적자를 메우고 난 여분은 정권 유지비(충성스러운 간부에 대한 비밀 하사금, 무기구매, 김정일 위원장의 개인적 용도 등) 또는 대량살상무기 부품 구입을 위해 사용되어 왔을 것이다.

북한의 금융제재 비판은 평양정권이 외화 부족에 대해 민감함을 보여주는 것이며, 특히 조총련으로부터의 송금이 줄어든 최근 해외 비밀구좌로부터의 송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음을 반증한다. 북한은 정권유지비에 사용할 외화의 고갈을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결국 제1단계 5차 회담에서도 북한은 체제에 대한 강한 집착을 재확인시켜주었으며, 향후 핵협상에서도 ‘체제와 정권의 안위’를 쵀대의 목표로 삼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렇듯 북한의 기본 입장에 큰 변화는 감지되지는 않고 있고 있다.

정책적 고려점

제4차 6자회담이 도출한 공동발표문에 의거하여 핵협상을 벌이고 타결하는 것은 한국이 당면한 과제이나. 그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

① 성과에 대한 냉정한 평가: 공동발표문이나 앞으로 거둘 성과에 대해 냉정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과도한 의미부여나 확대해석을 경계해야 한다.

9ㆍ19 공동발표문 직후에도 일부 학자들은 이번 공동발표문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시작‘ ’제네바합의보다 구속력도 강화된 합의‘ 등으로 칭송했지만 이런 것들은 성급하고 과장된 것이다. 과장된 견해에 근거하여 앞질러 핵해결을 예상하는 것은 후일 국민에게 더 큰 실망감을 안겨줄 수 있다.

② 대북지원의 양면성 유념: 한국이 제공하게 될지도 모르는 200만 kw의 송전은 통일비용이라는 측면을 가지지만, 북한의 군사력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 이 전력이 북한의 화학, 기계, 조선, 소재산업 등에 공급된다면 이것이 북한의 군사력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핵해결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지원해도 무방하다는 식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성공적인 핵협상에 수반되는 모든 대북지원의 경우 분배의 투명성 문제를 경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③ 미국과의 힘든 정책조율 예상: 향후 핵협상에 있어 한국은 미국과도 힘든 협상을 예상해야 한다. 이미 미국의 강경파들은 이번 공동발표문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으며 북한의 ‘선 경수로 제공, 후 핵폐기’ 주장을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미국이 과연 인권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북한과 수교하고 포괄적인 안전보장을 제공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도 두고 볼 문제이다. 때문에 향후 미국내 정치판도의 변화에 따라서 중재자로서의 한국의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이 있다.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경우에도 미국은 신포 부지의 재사용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한국으로서는 선행투자를 사장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1/3의 공정을 진행시킨 신포 부지의 재사용은 불가피하다. 대북지원을 위한 부담 원칙에 있어서도 한국이 경수로 경비의 70%를 부담하기로 했던 종전의 방식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④ 최악 상황 대비: 향후 핵협상이 진행되다가 아무런 결실없이 종료되는 경우,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북한이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고 더 많은 핵물질을 생산한다면 한국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된다.

한국은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이 먹히지 않는 핵강국 북한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경우 공동발표문은 북한이 일단 반북여론을 진정시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모면하면서 핵무기 생산을 계속할 수 있는 피난처일 뿐이다. 이것은 비생산적인 핵협상을 무한정 허용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⑤ 평화적 핵이용권 문제: 제4차 회담 이후 크게 부각되고 있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공동발표문에서 적절하게 절충되었다. 즉, 북한에게 농축이나 재처리를 배제한 최소한의 평화적 핵이용권을 언급했고, ‘남북한 비핵화공동선언 재확인’으로 향후에도 농축이나 재처리를 보유하지 않아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북한의 군사적 핵이용을 불식시켜야 한다는 당면과제에 비추어볼 때 이러한 절충은 단기적 관점에서는 적절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문제점이 많다. 공동발표문의 내용대로 남북한 모두의 영구적인 ‘농축 및 재처리 포기’가 제도화된다면 다른 차원에서의 국익 손실을 의미한다. 즉, 공동발표문의 ‘비핵화공동선언 재확인’ 부분은 북한이 일방적으로 위배하는 가운데 한국만이 우둔하게(?) 준수해온 ‘비농축, 비재처리’ 구도를 재확인한 것이 된다. 이는 한국에게 계속해서 손실을 강요하는 것이 되며 “북한이 군사적 핵이용을 확실히 포기한 이후에도 농축과 재처리를 금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지 않는다.

물론 모든 일은 경중완급(輕重緩急)을 따지면서 순리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이 당장 ‘농축 및 재처리 권한의 확보’를 주장하고 나설 타이밍은 아니나, 이 문제는 정책결정자들의 뇌리 속에 남아 있어야 한다.

김태우 / 국방연구원 군비통제연구실장

– 뉴욕주립大 정치학박사(핵정책/핵전략 전공)
–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군비통제연구실장
– 경기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한국핵은 왜 안되는가?>, <저승바다에 항공모함 띄웁시다>, <미국 핵전략 우리도 알아야 한다>(2003), <주한미군 보내야 하나 잡아야 하나>(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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