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넘기는 북한産 위폐 논란

북한정부가 위조달러를 제조·유통했다는 미국의 주장과 그에 대한 북한의 강력한 반발이 북핵 6자회담과 한반도 정세에 중대한 변수가 되고 있다.

그간 의혹으로 존재했던 북한산 위폐문제가 올 9월 새롭게 제기된 이후 북미 양국이 날카롭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그 파장이 갈수록 증폭됨에 따라 이 문제는 올해를 넘기고도 한동안 ‘뜨거운 감자’로 남을 전망이다.

◇ 위폐 논란 경위 = 북한이 위조 달러 제조 및 유통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은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올 9월초 미국이 마카오를 거점으로 한 북한의 대외 금융거래에 연계된 것으로 의심되는 아시아 은행들을 강도높게 조사 중인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북한산 위폐문제가 새삼스럽게 부각됐다.

미 행정부는 9월15일 북한이 마카오 소재 중국계 은행 ‘방코 델타 아시아(BDA)’를 통해 위조달러를 유통시키고 마약 등 불법 대금을 세탁해왔다고 공식 발표함과 동시에 애국법 311조에 근거, 이 은행을 ‘돈세탁 우선우려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위폐문제는 정식으로 도마위에 올랐다.

미 당국의 조치가 가져온 파장은 컸다. 미국 금융기관들이 BDA와의 일체 거래를 중단하면서 BDA의 파산 우려가 제기되자 자금인출이 잇따랐고, 급기야 마카오 당국은 북한 계좌를 포함한 BDA의 모든 계좌를 동결했다.

이어 미 사법당국은 10월12일 북한과 공모해 수백만달러의 위조달러를 유통시킨 혐의로 션 갈렌드 북아일랜드 노동당 당수를 기소하면서 공소장을 통해 북한에서 위조달러가 제작됐다고 적시했다.

이 와중에 9.19 공동성명 타결로 북핵문제가 획기적 진전을 봄에 따라 위폐문제 는 단순히 북미간에 해결할 사안으로 치부되는 듯 했다.

그러나 북측이 11월 9∼11일 진행된 5차 1단계 6자회담에서 돌연 회담밖 사안인 BDA문제와 위조달러 공모주장에 강력 반발하면서 위폐 문제는 다시 수면위로 떠 올랐다.

결국 5차 1단계 6자회담은 다음 회의 일정도 잡지 못한 채 종료됐지만 북한이 미국과 금융제재 문제를 협의하기로 했다고 발표하고, 미국도 당시 이렇다 할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에 따라 위폐 문제도 봉합될 가능성이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북미간 금융제재 관련 회동의 성격과 참석 대상을 두고 이견을 보이면서 회동이 기약이 없어지고, 북한이 금융제재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을 듯한 태도를 보임에 따라 상황은 급변했다.

미국은 이달 16일 북핵 6자회담 참여국과 다른 주요 국가 외교관을 초청, 북한의 위조지폐 제조에 대한 설명회를 열었고, 북한은 15일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화국은 화폐를 위조한 적도 없으며 그 어떤 불법거래에 관여한 적도 없다”고 주장하는 등 양측은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 미국 ‘북한産 위폐’ 주장 증거 있나 = 미국 당국이 16일 비공개 브리핑에서 북한 위폐제조의 증거라며 제시한 중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슈퍼노트’라 불리는 100달러짜리 위폐 사진과 실물이다.

또 북한이 최근 스위스산 시변색 잉크(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특수 잉크)와 정밀 화폐 인쇄기를 대량 구입한 사실을 정황 증거로 들었다.

북한이 자국돈을 찍는데 이토록 비싼 잉크와 정밀 인쇄기를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미국의 논리이다.

또 미 당국은 북한 외교관들이 외교 행랑으로 위폐를 유통시키고 위폐로 물건을 구매하다 여러 번 적발된 사실과 함께, 북한이 입금한 은행계좌에서 위폐가 섞여 나온 사실 등을 공개했다.

그러나 미 당국은 위폐 유통과 관련한 각종 입증자료는 제시했지만 북한이 위폐를 제조했음을 말해주는 직접 증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스위스산 잉크를 증거로 들었지만 화폐 제조에 사용되는 시변색 잉크는 스위스 시크파(Sicpa)사 제품이 전세계 90여개국에서 사용되고 있기에 그 것만으로는 북한이 위폐제조를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 한미 ‘사실관계’ 놓고 미묘한 시각차 = 우리 정부는 미국과 북한산 위폐문제의 사실관계를 두고 미묘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위폐제조의혹을 기정사실로 전제한 채 이 문제가 미국의 행정 및 사법절차에 따른 조치이기에 북핵 6자회담과는 연계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위폐문제는 결코 북한과의 정치적 타협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 아래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점점 궁지로 몰고 있는 양상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실제로 위폐를 제조.유통했다면 국제적인 규범에 따라 원칙적으로 처리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현 단계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대북 압박에 선뜻 동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6자회담이 위기에 봉착한 현 상황에서 이 문제가 갖는 파괴력을 의식한 우리 정부는 미국이 현재까지 제시한 증거만 갖고 북한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러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미국은 확신을 갖고 북한을 압박하고 있지만 확실한 정보 없이 대북 압박에 동참했다가 돌아올 ‘후과’를 우려하는 우리 정부는 일단 말을 아끼면서 미국 정부와 BDA를 관할하는 중국정부 등으로부터 추가정보가 제공되기를 기다리고 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