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참전노병들 “잊을 수 없는 역사”

6.25 전쟁이 발발한 지도 강산을 여섯 차례나 바꿔놓을 정도로 긴 시간이 흘렀지만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렸던 해외 참전 용사들의 가슴 속에 그 전쟁의 영광과 상처는 선연히 새겨져 있다.

시간이 갈수록 전쟁에 대한 기억들이 희미해지고, 후세가 떠안아야 하는 책임에 대한 성찰도 무뎌져 가는 세태이지만, 이역만리 한국 전쟁터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전선을 누볐던 노병(老兵)들의 기억 속에 59년 전 한반도는 잊혀질 수 없는 곳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공군 조종사로 1952년 9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북녘 하늘을 누볐던 존.E 렐로(83.예비역 공군준장)씨는 “한국이 다시 도움을 요청한다면 우리는 다시 한국으로 갈 것”이라며 한국전 참전 경험을 자부심으로 생각했다.

한국전 발발 소식에 자원입대해 1951년 12월 한국 땅을 밟은 영국군 기갑중대장 출신 마이크 스윈델스(79.예비역 육군소장)씨는 중부 전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북한.중공군과 일진일퇴를 벌이던 치열한 전투 상황을 잊지 못했다.

자신이 속한 부대에서만 12명이 숨지고 부상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는 스윈델스씨는 “한국전에 영국군이 7만5천명 이상이 참전해 1천78명이 숨졌고 3천명 가까운 병사들이 부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전은 영연방이 1949년 출범한 이후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이 영연방 깃발 아래 함께 참전함으로써 영국에게도 영연방의 구심점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며 또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1년도 채 되지 않은 1953년 여름 미군 보병 45사단 중대장으로 강원도 양구 전선에 투입된 샘 웨슬(79. 예비역 육군중장)씨는 많은 전투를 치렀지만 7월 27일 휴전 당일 상황은 더욱 기억에 또렷하다.

웨슬씨는 “정찰팀 20명을 이끌고 오후 4시부터 수색정찰을 나갈 예정이었는데 `밤 10시를 기해 전쟁이 종료된다’며 갑자기 중지명령이 떨어졌다. 그래서 무거운 탄약통을 메고 이동하지 않기 위해 우리와 중공군 모두 허공을 향해 총을 쏴 탄약을 소비했다. 정확히 밤 10시가 되자 거짓말처럼 총성이 멈추고 무거운 침묵이 찾아왔다”고 회고했다.

참전 용사들은 전쟁 후 잿더미로 변한 폐허에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해 낸 `한강의 기적’에 찬탄을 표하면서 자신과 동료들의 피와 헌신이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된 데 대해 감격해 했다.

수 차례 방한한 경험이 있는 렐로씨는 “한국인이 이뤄놓은 업적들에 대해 경탄해 마지 않는다”며 특히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세계 최고로, 내 차는 기아차이고 아내는 현대차를 타고 있다”고 소개했다.

2년 전 한국을 들러 영국군이 참전했던 전투 현장과 곳곳을 둘러본 스윈델스씨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던 곳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감동적인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전 당시 자신의 부대원 4명을 잃었다는 웨슬씨는 “우리는 언제나 자유국가를 지향하는 한국민과 함께 있을 것”이라면서 “한국전에 참전해 미국과 한국을 위해 싸웠듯이 한국 젊은이들도 조국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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