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민주화운동 ‘대모’ 재독동포 김진향씨

이른바 반체제 인사나 민주화.통일운동에 나선 사람이라면 재독동포 김진향(63.여)씨를 모르면 ‘간첩’이다.

해외 민주화운동의 ‘대모(代母)’격인 김씨는 30여년 넘게 조국의 민주화와 남북통일을 위해 직접 뛰기도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문익환 목사, 임수경씨, 황석영씨 등 많은 인사들의 활동을 지원했다.

그는 1992년 범민련 유럽지역위원회 부회장 자격으로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만나 통일문제 등을 논의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1966년 간호사로 파견돼 베를린에 정착한 김씨는 현재 6.15 공동선언실천 유럽지역위원회 재정부장과 한민족 유럽연대 대외협력부장을 맡고 있다.

그는 여성가족부가 10-13일 서울 쉐라톤워커힐에서 개최하는 한민족여성네트워크(KOWIN)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했다.

김씨는 11일 “현재 남북이 서로 만나고 화해하고 교류하는 것만 해도 반(半)통일이 된 것과 같다”며 “통일을 원하지만 당장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통일 독일은 장벽은 허물어졌지만 아직도 마음의 통일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남북한도 끊임없이 왕래한 뒤에 하나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부터는 여성들이 모성애와 섬세한 감각으로 통일운동에 적극 나서달라”고 덧붙였다.

경북 칠곡 출생인 그는 김천 간호학교를 졸업한 뒤 영남대 가정학과에 입학해 2년간 재학하다 독일로 갔으며 베를린 국립병원 등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 독일 남편 클라우스 모엑(62)씨를 만나 결혼했고, 남편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민주화.통일운동에 나섰다. 2006년에는 뒤늦게 독일 함부르크대를 졸업했다.

김씨가 통일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고국을 찾기 위해 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하러 갔다가 당시 동독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다시는 공산지역을 통과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썼던 경험 때문이다.

그는 “남과 북으로 분단된 조국에 태어나 동과 서로 갈라진 독일로 외화획득을 위해 간호사로 나가 겪은 냉전 이데올로기의 씁쓸한 경험이 통일운동에 밑거름이 됐다”고 설명했다.

여성운동의 시작은 계약 만료가 됐다며 독일이 파독 간호사를 추방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때부터다.

그는 1977년 ‘재독한국여성모임’과 함께 독일 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계약을 연장해 달라고 요구했고, 이를 관철시켰다.

광주항쟁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나선 그는 민주화 인사들의 방북을 도왔고, ‘김대중 구명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북한이 수해로 고통받고 있을 때 지원금을 모아 주독일 북한대사관에 전달했다.

그는 “한국을 찾을 때마다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혀 관계기관으로부터 감시를 받는 등 고통을 겪었다”며 “내가 하는 일은 친북행위가 아니라 ‘애국운동’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도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미국에서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위해 한인들이 노력할 때 모금운동을 벌였고, 김학순 할머니 등을 독일로 초청해 강연과 세미나 등을 열어 독일을 비롯한 유럽지역에 진실을 알렸다. 할머니들의 증언집을 독일어로 번역해 출간하기도 했다.

방한할 때마다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참가하는 그는 서대문 형무소 옆에 세울 ‘할머니들의 집’ 건립 기금을 모으고 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