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등장하는 ‘北 식량종말론’…진실은 무엇인가?

지난달 30일 KDI(한국개발연구원)가 ‘2009년 상반기 북한 경제 동향’ 보고서를 발간했다. 핵심 내용은 북한이 1994년 김일성 사망 직후처럼 제2의 고난의 행군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은 핵위기와 김일성 주석 사망이 겹친 1994년에 비견할 정도인 것으로 평가……..” (KDI 보고서 p14)

과연 KDI 보고서 주장대로 북한은 김일성 사망 직후 제2의 고난의 행군, 즉 대량 아사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이다.

현재 북한은 김정일의 건강 이상, 후계 과정에서의 혼란, 대북 제재 등의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북한이 이처럼 내외로 어려운 상황이긴 하지만 제2의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를 정도로 식량 문제가 최악인 것은 아니다. KDI는 불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잘못된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2000년 이후 해마다 북한 제2의 대량 아사 주장 나와

사실 2000년 이후 해마다 북한에서 제2의 고난의 행군, 제 2의 대량 아사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일종의 “식량 종말론” 같은 주장이 있어 왔다. 그리고 매년 이런 주장은 사실이 아님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올해는 2차 북핵 실험 이후 국제 사회가 대북 제재를 시행하고 있고 남북 관계도 좋지 않다. 이처럼 북한의 대외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또 다시 “식량 종말론”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제는 북한의 식량 사정이 어떤지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이 잘 발달되어 있다. 바로 북한의 시장이다. 북한에도 이제 시장 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에 식량 부족은 시장 가격에 반영된다.

때문에 식량의 절대량이 부족해서 아사 위기에 진입하게 되면 식량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게 된다. 현재 북한 시장의 쌀 가격은 전례없는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6월 23일 북한 식량 가격 조사결과 평양은 5월 1kg에 2,000~2,200원 수준이던 쌀값이 6월 들어 1,900~2,000원 수준으로 하락했다. 북부 국경도시인 혜산은 5월, 6월 모두 쌀값이 1kg에 2,300원으로 큰 변화가 없다. 회령이 경우에는 5월에 2,200원이던 쌀값이 6월 중 일시적으로 2,700원대로 상승했으나 다시 6월 말이 되자 2,200원대 이하로 떨이지고 있다. 그리고 신의주의 경우에는 5월에 2,200원이던 쌀 값이 6월말에는 2,000원으로 하락하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열린북한통신 제18호에서 인용)

이처럼 5월 25일 핵 실험이후 국제 사회의 제재가 강화되었는데도 식량 가격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식량 가격은 작년 동기 대비 아주 안정된 가격이다. 작년에는 4,5 월 한 때 1kg에 4,000까지 육박할 정도로 식량 사정이 어려웠다. 올해는 작년 절반 수준인 것이다.

그런데 환율 상승까지 고려하면 식량 가격은 더 떨어졌다. 올 해 환율은 작년 동기 대비 30% 정도 상승했다. 원래 환율이 오르면 수입 식량 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에 북한 국내 식량 값도 동반 상승해야 한다. 이런 환율 상승에도 불구하고 북한 식량 가격은 오르기는커녕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 주민 구매력 감소 주장은 근거 없어

그렇다면 KDI는 이처럼 북한 식량 가격이 하향 안정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 식량난이 심각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 북한 시장 쌀 가격은 상대적으로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그 이유는) 북한 시장에서 일반 주민들의 실질 구매력이 크게 저하…….주민들의 실질 구매력(수요)이 줄어들면서 가격이 하향 안정세를 보였다….”(KDI 보고서 p21)

이 내용에서 보듯이 KDI는 북한 식량 사정은 어렵지만 가격이 안정적인 이유는 바로 북한 주민들의 구매력 감소가 근본 원인이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즉 KDI 주장은 북한의 쌀이 부족하지만 쌀에 대한 수요도 줄었기 때문에 가격이 안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 원론에서 나오는 공급도 줄지만 수요도 줄었기 때문에 가격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KDI는 북한 주민들의 식량 수요가 왜 그리고 어떻게 줄었는지에 대한 계량적 설명은 못하고 있다. 그저 북한에서 빈부 양극화가 강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의 빈부 격차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북한의 경제 양극화는 90년대 중후반 이후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다. 작년에 비해 올해 빈부 양극화가 특이하게 커질 계기도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특히 올해만 빈부 양극화 때문에 식량 구매력이 줄어들었고 그 때문에 식량 가격이 떨어졌다는 것은 너무 궁색한 설명이다.

KDI 분석의 결정적 맹점은 주민들의 실질 구매력이 감소해서 쌀 수요가 줄었는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계량적 지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실증 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구매력이 감소하면 쌀 수요는 줄어들지만 옥수수쌀 수요는 증가한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우니 비싼 쌀 보다 저렴한 옥수수쌀로 허기를 채우려는 것이다.

때문에 북한 주민의 구매력이 떨어지면 옥수수쌀 수요가 증가해 옥수수쌀의 가격이 상승한다. 일반적으로 옥수수쌀은 쌀 가격의 1/2 수준인데 옥수수쌀 수요가 증가하면 쌀과 옥수수쌀 가격 차이가 줄어들게 된다. 참고로 옥수수쌀은 옥수수 알을 빻아서 쌀처럼 잘게 만든 것이다.

때문에 옥수수쌀 가격을 조사해보면 구매력(수요) 감소로 식량 가격이 안정적인지 아니면 공급이 충분해서 식량 가격이 안정적인지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실증 조사 결과 옥수수쌀 가격도 상승하지 않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6월말 현재 옥수수쌀 가격도 쌀 가격과 함께 떨어지고 있으며 대체로 쌀 가격의 1/2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신의주에서 옥수수쌀 가격은 1,100원대로 쌀 가격의 절반 수준이다. 회령과 혜산에서도 거의 절반 수준인 1,2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평양에서도 쌀값의 절반 수준인 900~1,000원 대를 유지하고 있다.

옥수수쌀 가격 안정세가 KDI 주장 반박 결정적 근거

이처럼 옥수수쌀 가격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KDI의 북한 구매력 감소로 쌀 가격이 하향 안정화되고 있다는 주장은 옥수수쌀 가격의 변동이 없다는 사실로 인해 쉽게 반박되는 것이다.

KDI 뿐만이 아니다.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의 식량 상황은 으레 어려워야 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예년에 보면 해마다 북한에 대량 아사의 위기가 온다는 일종의 북한 식량 종말론이 퍼지곤 했다. 사이비 종교 단체도 아니고 권위있는 국제 기구까지도 이런 식량 종말론에 힘을 실어주곤 했다. 올해도 비슷한 주장이 나왔다.

WFP의 폴 리슬리 대변인은 6월 19일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아사자 발생에 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식량지원을 늘리지 않으면 영양실조로 많은 사람이 쓰러지고 숨질 가능성이 있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올 해 북한의 식량 사정은 예년에 비해 그렇게 나쁘지 않다. 물론 굶어 죽는 사람이 완전히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제 북한에서도 돈이 없는 사람은 식량을 살 수 없어서 굶어 죽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에 식량의 절대량(공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북한 정부가 빈곤층을 제대로 구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외부에서 식량 지원을 더 많이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빈곤층에게 식량 사먹을 돈을 주면 해결될 문제인 것이다.

북한 식량 사정 괜찮은 이유 세 가지

그렇다면 강화되고 있는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식량 사정이 악화되고 있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보인다.

우선 4,5월 춘궁기를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는 6월 20일경이면 햇감자, 햇보리 등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면 춘궁기에 상승했던 식량값이 하강하기 시작한다. 올해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5월 25일 핵실험 이후 탈북자에 대한 단속은 강화되었으나 식량 무역 통제는 강화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북중 국경을 통한 식량 수입이 여전히 원활하게 유지되고 있다.

셋째, 북한 내 장마당을 통한 식량 거래도 통제되고 있지 않다. 일각에서는 평성 시장 폐쇄 사례를 들며 장마당 통제 강화를 주장하나 정확히 말해 평성 시장은 폐쇄가 아니라 이전되고 있다. 그리고 그 외 지역에서 시장 통제 움직임은 거의 없다. 공산품을 단속하는 경우는 있어도 식량 거래를 단속하는 경우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물론 올 상반기 북한의 식량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 앞으로도 북한의 식량 문제가 없을 것임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마침 7월 19일경 북한에 폭우가 왔다는 보도가 있는데 이 폭우의 영향도 살펴 보아야 한다.

분명한 것은 적어도 올 6월말까지 북한의 식량 사정은 안정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 식량 공급은 부족한데 주머니 사정도 어렵기 때문에 식량 가격이 저평가되어 있다는 KDI의 주장은 틀렸다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 북한 내 식량 문제 논쟁에서 다시 한번 실증적 조사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경제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실제 가격 조사를 해야 하고 거기에 기반하여 결론을 내려야 한다. 연구를 감(느낌)과 편견으로 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