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거드 교수 ‘대북지원은 倫理’ 주장 잘못됐다

최근 데일리NK에 실린 스티븐 해거드 미 스탠포드대 교수의 칼럼은 대북 식량지원 원칙과 인도주의, 그리고 도덕적 딜레마를 생각해보게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세상사가 자비심과 도덕성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고 정책의 효율성과 그것이 미칠 파급효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에서 해거드 교수의 글에 대해 적지 않은 비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북한 식량 상황에 대한 해거드 교수의 책과 논문들을 많이 읽어 보았지만 이번 글은 맥을 잘못 짚었다는 느낌이다. 먼저 그의 논지를 따라 이야기를 해 보자.


논쟁 1. 그는 “북한의 상황이 1990년대 중반 상황보다도 나쁘지 않다는 논쟁 자체가 이상해 보인다”고 한다. 그러면서 고난의 행군 당시보다 나쁘지 않을지라도 인도주의적 사회라면 북한을 돕기를 원할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북한에 대한 진정한 인도주의적 관점은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첫째, 북한 주민을 돕더라도, 어려움의 근본 원인인 북한 독재정권의 안정이나 전용을 눈감아 주는 방향에서 돕는 것은 곤란하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왜 식량 지원을 요구하고, 어느 정도 어려운가를 면밀히 따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만일 1990년대 중반과 같은 아사 사태가 발생한다면 인도주의 사회는 주저없이 주민들을 구제하는 데 뛰어들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심각하지 않은 가운데 북한 주민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면 좋지 않은가 하는 ‘얕은 인도주의’로 접근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처사이다. 이것은 세상에 쌀이 공짜고 북한 정권이 이를 주민들에게만 나눠준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15년이 넘어가는 대북지원에 대해 국제사회가 왜 ‘피로감’을 토로하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같은 맥락이지만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북한 주민들이 지향하는 생존의 방법을 확대하는 것이다. 북한의 통치 집단이 취하는 경제 정책은 1990년대 대아사 사태 이후 사실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와 같은 심각한 상황으로부터 북한이 벗어난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보다 주민들이 스스로 사는 방법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이 찾은 방법은 다름 아닌 최소한의 자율 경제인 ‘장마당’이다. 외부 사회는 그 처럼 북한 주민들이 지향하는 방법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그것이 북한 주민들에게 사실 더욱 도움이 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북한 주민들을 돕되 북한 주민들에 대한 김정일 정권의 태도를 함께 바꾸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필요한 장마당과 같은 시장 경제를 확대하는 방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섣부른 지원이 장마당을 위축시키고, 제2의 반시장적 ‘화폐개혁’을 위해 김정일 정권에게 이용된다면 그것은 결코 주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에 대한 다양한 보고를 엄밀하게 가려야 한다. 북한의 장마당에 식량이 없지 않으며 가격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외부의 지원이 상인들을 통제하려는 김정일에게 이용되고 북한 정권의 근본적인 개혁을 막을 수도 있다.


해거드 교수는 북한의 상황이 극적으로 악화된다면 시기는 늦어 버릴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과거와 달리 북한에 대한 정보가 빠르게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상황이 그 정도가 된다면 충분히 신속하게 대처하고 움직일 수 있다. 영유아와 어린이의 영양실조 문제를 제기하지만 그 역시도 그래서 ‘지혜로운’ 지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북한의 취약 계층을 지원하자는 데 대해 이견이 있는 사람은 없으며 한국 정부 역시도 그것을 실행하고 있다.


논쟁 2. “북한 정권을 강화시키기 때문에 식량 지원을 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북한이 곧 붕괴할 것 같지 않으며 외부 식량 지원의 보류로 정권이 더 약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지원 식량이 다른 목적들, 즉 군대를 위한 자원으로 전용되더라도 선량한 시민을 구했다면 그것이 잘못인가라고 반문한다.


북한 정권이 외부의 지원으로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제 위기는 정권을 압박하며 주민들의 정권에 대한 충성도를 떨어트리는 요인이 된다. 실제로 김정일 정권은 만성적 경제난으로 인해 ‘통치’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정권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인식도 점점 악화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설령 당장 붕괴의 조짐이 보이지 않더라도 이 같은 현실을 부정하진 못할 것이다.


이 위기를 김정일 정권은 더욱 강력한 통제로 극복하고 있으며 대내외적으로 군대라는 ‘물리력’을 전면에 내세우는 선군정치를 약 15년 동안 해 오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에게 가장 중요한 정치 집단이 군대가 된 것이다.


김정일은 선군 정치 기간에 군대를 혁명의 주체로까지 격상하였다. “인민군대가 혁명의 주력군으로 등장하여 혁명의 주체가 더욱 강화되고 그 역할이 비상히 높아지는 시대”를 선군시대라고 선전한다.(고초봉. 2003. 『선군시대 혁명의 주체』. 평양: 평양출판사. p. 31.) 그러면서 일반 대중들에게 군대를 모범으로 하는 ‘혁명적 군인정신’을 강조한다.


위태로운 김정일 정권이 군대와 호위총국, 보위부 등의 물리력에 의존해 생존한다는 것 역시 잘 알려진 사실이다. 폭압적 통치자는 제한된 사회의 자원을 자신이 동원하는 물리력에 최우선적으로 보급해야 한다. 군대를 위해 전용된다는 것은, 그렇더라도 선량한 시민을 구하면 좋은 것 아닌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선량한 시민들이 더 심각한 압제에 시달리도록 영향을 주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진단해야 한다.


논쟁3. “북한 정권이 2012년 백주년 생일을 위해 비축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논리가 안맞다”고 주장한다. 북한 정권이 현재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왜 내년도에 자비를 더 베풀기 위해 현재의 부족한 상황을 지속시키겠는가? 라고 해거드는 반문한다.


김정일은 2012년 강성대국을 가장 중요한 주제이자 국가적 과업으로 선전하고 있다. 핵개발과 같은 북한의 비이성적인 행동들도 2012년 강성대국에 맞추어져 있다. 2012년이 되어도 북한이 어렵다면 그 같은 상황이 북한 주민들에게 주는 영향은 크다. 그것을 김정일은 잘 알고 있다.


2012년이 되면 강성대국이 완성된다고 주장해 온 북한 정권은 어쩔 수 없이 2012년을 대비해야 한다. 핵실험을 성공하고 군사 부문에서 강성대국이 되었다고 자랑하는 북한 당국의 선전에 주민들은 강성대국이 되었는데 전기가 왜 나오지 않는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2012년이 북한 3대 세습에서 중대한 해가 될 것이라는 것 역시도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으며 김정일은 주민들에게 무언가를 안겨주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처지로 점점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논쟁 4. “외부 식량 지원이 단지 엘리트에게만 돌아간다는 점은 분명 잘못된 문제제기”라고 해거드는 주장한다. 즉 북한의 식량문제는 엘리트의 문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 직면한 문제이며 외부의 지원이 정부로 하여금 6백만명 가량의 시민들을 위해 더 많은 배급량을 제공해 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대목에서 해거드는 북한을 오랫동안 살펴온 학자로서 북한을 참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실망감을 주기까지 한다. 해거드는 일반의 ‘상식’을 적용해 김정일이 상식대로 행동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머릿속의 산술적 방정식에 불과하다. 북한 정권이 이성적이고 선량한 정권이라면 이 같은 논쟁도 사실 필요가 없다.


실제 김정일은 엘리트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배급을 자신의 정치 논리에 따라 조절하고 있다. 김정일이 평양에 배급을 주는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북한에서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실이다.


논쟁 5. 적합한 모니터링이 있기 전까지는 식량 지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적절치 않다며 “어떤 모니터링 시스템도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완벽함은 선(善)함의 적(敵)이 되어서는 안된다”고까지 이야기하는데, 북한에 요구하는 모니터링 폭이 과연 완벽에 가까운 것인지 먼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모니터링에 대해 시종일관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왔고 모니터링을 허용하는 듯 하면서도 교묘하게 방해해 왔으며 국제구호단체를 일방적으로 추방한 수많은 전력을 소유하고 있다. 과연 우리가 정확한 모니터링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인가? 영유아와 취약계층에 ‘지정’ 지원을 하자는 것이 무리인가? 북한 정권은 그것을 왜 거부하는가?


해거드는 ‘도덕적 딜레마’를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북한 식량 지원 문제가 윤리인가, 정치인가 라는 물음을 던진다. 외연은 그럴 듯하지만 해커드는 근본적으로 북한을 향한 도덕적 딜레마의 맥을 잘못 짚고 있다.


해거드는 북한 정권이 문제는 문제인데 북한 주민을 도와야만 하는 것이 도덕적 딜레마라고 한다. 이 같은 고민은 그래도 맹목적 지원론자들의 인식보다는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 진정한 도덕적 딜레마는 북한 주민을 도와야만 하는 데, 문제는 더욱 근본적인 정권의 문제를 덮어 두거나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되는 상황이 초래되고, 역으로 주민들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도주의 사회는 많은 고민을 하고 지혜로운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며 진정한 ‘괴로움’을 안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얼마 전 2009년에 탈북한 탈북자와 이틀을 동행한 적이 있다. 평소 북한에 관심이 많고 비교적 다른 사람들보다 북한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필자이지만 좀 더 정확하고 좀 더 확연하게 사회상을 그려보기 위해 매우 구체적인 질문들을 하였다.


이 탈북자는 자신이 보는 북한은 이미 오랫동안 배급이 끊어졌고, 북한 주민들 스스로가 배급에 대해 기대를 하지 않으며 어떻게든 스스로 살 궁리를 하고 방법을 찾은 지 10년이 넘었다고 이야기 한다. 김정일 정권이 장마당만 통제하지 않아도 주민들은 어떻게 해서든 먹고는 산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


우리의 도덕적 딜레마는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 역시 북한 주민들을 돕고 싶고 우리에게 풍족한 식량으로 북한 주민들의 어려운 형편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필요하고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우리의 도덕적 딜레마는, 북한 주민들의 조금 더 나은 삶을 외면하는 문제가 아니라 북한 주민들에게 만성적으로 어려움을 안기는 김정일 정권의 유지를 도울 수 있다는 더 큰 문제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그것이 역시 자유사회와 이성이 통용되는 사회가 공포 사회와 폭력 사회에 대해 가져야 할 도덕적 분별인 것이다. 우리는 북한 식량 지원 역시 그 같은 도덕적 분별로서 접근하여만 하는 것이다.


해거드는 식량지원비평가들이 잘못되었다면 그 대가를 치를 비용은 상당히 높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는 북한에 대한 외부의 지원이 북한으로 하여금 ‘비상 시기’를 벗어나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도 확인하였지만, 동시에 북한 정권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으며 그릇된 정책과 부당한 정치적 억압이 지속하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주민들이 스스로 사는 방법을 찾는 것도 보았고 그것을 억압하는 정권의 행태도 보았다. 그렇다면 과거의 경험이 비교적 뚜렷한 해답을 주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걱정해야 하는 것은 그 같은 교훈을 무시하고 섣불리 접근함으로써 치러야 하는 더욱 심각한 윤리적, 정치적 대가이다.


해거드는 윤리인가 정치인가를 대비해 물음을 던지기보다 윤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옳지 않은 방향에 대한 진지한 검토를 선행하여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치러야 하는 대가를 가장 최소화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지혜’를 구하는 데 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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