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회령 반체제 조직활동(데일리NK 2005년 1월 17일 보도)이 밝혀진 데 이어, “2003년 4월 김일성 생일(4월 15일)을 앞두고 함흥 대극장 건물벽에 김정일을 비난하는 구호가 발견, 보위부가 대대적인 색출에 돌입한 사건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함흥출신 탈북자 권상호(가명, 25세)씨와 어머니 김모(53세)씨는 2일 DailyNK와 만남에서 “2003년 4월 함흥 대극장 건물벽에 김정일을 비난하는 구호가 발생해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고 밝혔다.
권씨는 “당시 건물벽에 ‘김정일이 조선을 다 망쳐 놨다’ ‘함흥시를 나진처럼 개방하라’ ‘개혁개방만이 살길이다’고 쓴 구호가 3개나 있었다”며 “글자 크기는 아이 얼굴만큼 컸다”고 말했다.
권씨 모자는 “함흥에서는 식량난 때부터 삐라사건, 낙서사건들이 종종 발생했지만, 2003년 사건은 김일성의 생일을 며칠 앞두고 발생한 것이어서 매우 엄중했다”고 전하고, “이 사건으로 국가안전보위부도 사건해명(수사)을 위해 골머리를 앓았다”고 전했다.
다음은 권씨와 나눈 대화
– 어디서 구호 사건이 발생했는가?
2003년 4월 중순경 함흥 대극장 벽에서 발견됐다. 대극장의 뒷편, 은정1동(옛 중앙동) 쪽인데, 성천강 오수교에서 역전쪽으로 향하는 중앙도로에서 훤히 보이는 벽 1.5미터의 높이에 구호낙서가 있었다.
– 언제, 누가 발견했나?
처음 신고한 사람은 은정1동 인민반장이다. 아침 8시에 발견하고 보위부에 신고하자, 보위원들이 동원되어 구호에 천을 씌우고 사진을 찍어갔다. 며칠 뒤에는 4.15 명절(김일성 생일)이기 때문에 함흥시당에서 행사준비로 한창 들볶던 시기다. 행사를 파괴하려는 엄중한 사건으로 떠들썩 했다.
4월 달이면 아침 6시에 날이 밝는다. 그런데 2시간이 넘도록 사람들은 구호를 보고도 신고하지 않았다. 신고하면 보위부에서 시끄럽게 불러들이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은 보고도 못 본 척한다.
– 어떤 내용이었나?
‘김정일이 조선을 다 망쳐 놨다’ ‘함흥시를 나진처럼 개방하라’ ‘개혁개방만이 살길이다’고 쓴 구호가 3개였다. 글자는 먹으로 쓴 것 같았고, 크기는 아이 얼굴만큼 컸다.
– 구호를 쓴 사람을 잡았나?
그 넓은 함흥바닥에서 어떻게 잡나? 국가보위부 수사가 붙었다고 하지만, 잡지 못한 것 같다. 국가보위부와 함남도 보위부에서 긴급 수사조가 조직되어 대극장주변 은정동, 하신흥동, 상신흥동에서 직장없이 노는 사람들과 불량끼가 있는 사람들을 모두 소환 조사했다.
그런데 워낙 식량난 때 집 나간 사람들이 많아 누가 썼는지 잡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김일성 동상과 연구실 주변에 또 낙서할까봐 보위원들이 4.15 행사기간에는 매일같이 잠복을 섰다.
– 어떤 사람들인지 밝혀진 것은 없나?
특별히 알려진 것은 없다. 다만 보위원들이 어른들을 집중조사하는 것으로 보아 어른들의 소행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글자 높이와 글씨를 보면 아이들이 아니다. 아마 김정일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소행으로 보여진다.
– 주민들이 정부에 불만이 많다고 들었는데,그런 사람은 얼마나 될 것 같나?
식량난 때부터 주민들은 ‘김정일을 믿다가는 다 죽는다’며 장사를 해먹었다. 7.1일 경제조치 이후에는 물건값이 뛰면서 대부분 사람들이 장사에서 망했다. 또 직장생활도 하면서 장사도 하라고 하니까, 2중고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분노가 고조됐던 것이다.
주민들은 그런 고통이 김정일이 정치를 잘못해 굶주린다고 대체로 생각하는 편이다. 또 혜산과 라진-선봉, 평성쪽으로 장사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외부사람이 쓰고 갔는지, 아니면 함흥사람이 직접 쓰고 갔는지 잘 모른다.
권씨는 당시 구호사건 외에도 삐라사건, 초상화 분실사건이 여러 차례 있었다고 전했다. 2003년에는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가 찢어진 채로 성천강에서 발견돼 보위부의 집중 검열을 받았다고 한다.
권씨가 밝힌 구호사건과 2004년 회령에서 발생한 북한 반체제 동영상사건은 유사한 점이 많다. 북한내 반체제 조직들의 행위로 보여지는 구호사건 등은 주로 함경남북도 일대에서 발생하고 있다.
단동=권정현 특파원(延吉) kjh@dailynk.com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