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온성군 남양 노동자구에서는 4월 말부터 시내 도로 측량작업이 한창이다. 태양절(4.15)이 지나 예고 없이 시작된 공사에 주민들은 무슨 일인가 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측량작업을 하는 기술자들은 중국어를 사용했다.
이 작업 광경을 지켜보는 일행 가운데 70대 노구(老軀)의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중국 동북지역에서 김일성과 함께 항일 운동을 전개한 저우바오중(周保中)의 딸이다.
함경북도 소식통은 9일 데일리NK와 통화에서 “지난주에 주보중의 딸이 온성군 도로 포장 공사와 여인숙 조성을 지휘하기 위해 공사 현장에 직접 나와 있다”면서 “현재 도로 개축을 진행하기 위한 측량작업이 한창”이라고 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저우바오중의 딸은 ‘이번 아버지 기념사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시공을 책임진다’고 발언하며 북한 측은 공사 방해나 하지마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저우바오중은 김일성과 항일무장투쟁 때부터 인연을 맺은 돈독한 사이다. 저우바오중은 1942년 7월 시베리아 비야츠코에서 편성된 한중연합 빨치산 부대인 동북항일연군 88여단의 여단장이었다. 당시 김일성은 제1영 영장(營將)이었다. 김일성의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에도 소련 하바로브스크에서 활동 당시 저우바오중과의 인연이 여러 차례 거론되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차 국공내전 막바지였던 1949년까지 이어진다. 저우바오중은 국공내전을 마무리하기 위한 전투에 필요한 보총 1만정을 김일성에게 요청했다.
당시 김일성은 북한 내각 수상이었다. 저우바오중은 온성군 남양구 ‘남양여관’에서 열흘동안 숙식하면서 김일성을 기다렸고, 그로부터 물자를 얻어 열차편에 싣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당시 저우바오중의 북한 방문 당시 어린 딸인 저우 씨도 함께 동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저우 씨가 이번 공사를 추진하는 이유는 저우바오중의 업적을 기리는 한편 관광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주보중이 머물렀던 여관과 주변 부지를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관광상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주 씨는 2008년부터 거액의 돈을 북한 당국에 투자했다.
소식통은 “주(周) 씨가 4년 전에 북한 당국에 공사를 위탁하고 막대한 비용을 온성군당위원회에 냈다”면서도 “온성군당위원회는 이 돈을 왕재산사적관(온성군 소재), 혁명사상연구실, 영생탑 건설 등 김일성·김정일 우상화에 탕진했다”고 말했다. 이어 “주 씨가 북한에 공사를 맡기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직접 공사를 하겠다며 팔을 걷어 부쳤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중국 길림신문은 지난달 28일 중국 투먼과 북한 칠보산을 잇는 관광열차 투어 코스에 주보중과 김일성이 회담한 남양시 일대를 포함시켰다고 보도한 바 있다.
신문은 “28일 개통된 도문시-조선 칠보산 관광전용렬차에 탑승한 중국인 관광객 65명은 금후 며칠간 조선에서 이국적인 풍경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게 됐다”면서 “3박4일간의 여정에서 관광객들은 김일성초상을 참관하고 김일성과 저우바오중이 회동한 기념관, 기념탑을 관람한 후 칠보산에 도착한다”고 전했다.
저우 씨는 2009년 김정일 생일에 축하 꽃바구니와 축하편지를 보낸 사실이 조선중앙방송에 보도될 정도로 북한 당국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