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IAEA 협력 어디까지 왔나

우리나라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협력관계를 맺은 지 올해로 50년째를 맞는다.

우리나라에 원자력이 도입된 시점은 1956년 3월 당시 문교부 기술교육국에 원자력과가 신설된 때로 볼 수 있다. 국제사회에선 같은해 10월 IAEA 헌장이 채택됐고 이듬해 7월 IAEA는 유엔(UN)의 산하기구로 창설됐다.

이후 IAEA는 국제사회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증진 활동을 벌이는 한편으로는 원자력의 군사적 전용을 금지하는 규제활동을 펴면서 현재는 144개국을 회원국으로 하는 명실상부한 국제기구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나라는 1957년 IAEA 출범과 동시에 회원국으로 정식 가입했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역사가 IAEA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해왔다는 것은 양측의 이 같은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간 13회의 이사회국, 1회의 의장국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IAEA 사무국에 정규직원 24명과 전문가 6명을 파견하고 18개 사무총장 자문위원회 중 16개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등 IAEA 사무국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또 IAEA의 올해 예산 2억8천800만달러 가운데 1.456%의 재정을 분담해 회원국 중 12번째를 차지하고 있으며 매년 IAEA로부터 30만∼50만달러의 지원을 받는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오늘날 세계 6위권의 원자력 강국으로 도약하기까지 IAEA간 협력관계는 어느나라 못지 않게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과학기술부가 12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한-IAEA 기술협력 50주년 기념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특히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사무총장이 직접 행사에 참석한 것은 이같은 한국과 IAEA간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다. 임기 4년의 IAEA사무총장을 3번째 역임하고 있는 국제 원자력계의 거물이자 IAEA의 총사령탑인 이집트 출신의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이 특정 국가의 행사에 참석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게 과기부의 설명이다.

더구나 그의 방한은 북한 핵 폐기가 임박한 상황에서 IAEA 사찰단의 방북을 앞두고 국제사회의 이목이 한반도에 쏠리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어서 더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는 이번 콘퍼런스에서 ‘IAEA : 평화를 위한 원자력 50년’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한 뒤, 김우식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으로부터 감사패를 받는다. 이어 김 부총리와 합동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건국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다.

우리나라와 IAEA간의 협력관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1957년 IAEA 출범과 동시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한 이후 1968년 7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서명하고 1975년 3월 국회비준을 얻어 NPT에 정식 가입했으며 같은 해 10월 한.IAEA 안전조치협정을 체결했다.

우리나라는 원자력 분야의 국제사회와의 꾸준한 협력을 맺으면서 1978년 4월 드디어 국내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인 고리원전 1호기 상업운전을 시작한다. 세계 21번째 원전 보유국이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역사가 실질적으로 시작된 것도 이 때부터였고 이후 세계 6위권의 원자력 강국에 이르기까지 IAEA와의 협력은 더욱 긴밀해졌다.

한스 블릭스 IAEA 사무총장이 1983년 4월 한국원자력연구소를 방문했고 같은해 IAEA는 고리원전에 대한 종합점검을 실시하기도 했다.

1989년 9월에는 정근모 전 과기부 장관이 IAEA총회 의장에 피선되는 등 IAEA에서 한국의 역할이 더욱 강화됐다. 이후 IAEA에 국제원자력안전협약 국가비준서 기탁, IAEA의 사용후 핵연료 및 방사성 폐기물관리 안전협약 서명 등 구체적인 협력관계를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IAEA와의 50년 역사는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대표적인 사건이 2004년 9월 한국원자력연구소 연구원들의 핵개발 의혹사건이었다.

연구소 일부 연구원들이 2002년 초 핵연료 국산화 연구차원에서 동위원소를 분리하는 레이저 연구장치에서 0.2g의 극소량의 우라늄을 분리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로인해 IAEA 사찰단이 한국에 대한 초유의 핵 사찰을 시작하기에 이르렀고 1982년 플라토늄 추출 실험도 드러나는 등 핵개발 의혹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IAEA의 핵사찰은 4차례에 걸쳐 진행됐고 2004년 말 IAEA 총회에서 핵 개발의혹을 벗고 안보리 회부를 피하기까지 3개월 가량 한국은 IAEA를 비롯한 일본 등 국제사회에서 의혹의 대상으로 몰리기도 했다.

다행히 핵개발 의혹을 벗고 IAEA와의 관계는 다시 정상화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사상초유의 IAEA사찰은 국내 원자력계에 국제 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고 주변국의 복잡한 이해관계, 한국의 국제적.지정학적 위치, 과학자들의 연구윤리와 국가관 등 다방면에 걸쳐 많은 교훈을 남겼다.

이번 한-IAEA 협력 50주년 콘퍼런스와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의 방한은 이같은 시련 속에 양측간의 신뢰관계가 복원됐음을 알리는 구체적인 증거로 받아들여진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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