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감자농사 잘 지어도 도적 막지 못하면…

“농사는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다.” 북한에서 수십 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도는 말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도 있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하는 농사는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옛날과 지금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푸념이다.



북한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농업에서의 현대화, 과학화, 화학화가 실현됐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기계화는 제자리걸음이고 비료도 퇴비와 부식토로 대체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사를 짓는 방법도 전혀 변화가 없다.



북한 당국이 최근 적극 장려하고 있는 감자의 파종부터 수확, 가공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서 개인 소토지 농사의 어려움을 확인할 수 있다. 감자는 농사꾼들에게 있어 “썩어도 먹고 얼어도 먹고 버릴 것이 하나도 없어서 그야말로 빈곤한 사람들이 사랑하는 작물”이라고 할 정도로 인기 작물이다.


먼저 겨우내 움(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어 비바람이나 추위를 막아 겨울에 화초나 채소를 넣어 두는 곳)에서 잠을 재운 감자를 햇볕이 잘 들게 만든 비닐하우스에 내놓아 싹 틔우기를 15일 정도 진행한다.



그런 다음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감자 눈을 뜬다. 최근에는 통감자 심기를 장려하는데 비료를 주지 못하면 싹을 떠서 심은 것보다 수확이 많이 떨어진다. 감자에서 싹을 뜬 것을 ‘감자종자’라고 한다.



5월 초에 감자종자를 소가 밭갈이한 밭에 약 20cm 간격으로 심으면 25일 정도 지나 싹이 땅위로 올라온다. 감자 잎이 여섯 잎이 돋을 때 첫 김을 맨다. 이후 20일이 지나면 두 번째 김을 매주며 비료를 준다. 비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겨우내 모아 말려두었던 인분을 잘게 부수어 비료대신 사용한다. 그로부터 15~20일 지나서 감자 이랑에 북을 준다(흙으로 식물의 뿌리를 덮어준다).



이 시기 농민들은 배를 곯고 일한다. 산나물 등에 소량의 곡식가루를 섞어 먹으며 가을을 기다린다. 함경북도에서 농사를 지었던 최 모 씨는 “‘한 끼 먹고 다음 끼니는 뭐로 마련할까’는 걱정을 하다보면 밥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확을 앞둔 북한 농사꾼들의 고달픈 일상은 비단 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밭의 감자를 밤마다 도적으로부터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다. 경비를 잘 서지 못해 다 기른 농산물을 잃는 것도 모자라 인명피해를 보는 일도 흔하다.



북한은 국가경제가 빈약한 상황이라 군대와 각종 건설 돌격대도 정상적인 공급을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력갱생을 요구한다. 즉 도적질 하라는 말이다. 때문에 야밤에 남의 집이나 밭을 도적질하는 군인, 돌격대로부터 밭을 지키는 일이 농사꾼의 어깨를 짓누른다.



2010년에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 김 모 씨는 “2003년 가을, 돌격대의 습격으로 한해 감자농사(2.5톤 정도)한 것을 도적맞고 나니 한해를 살아갈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며 “보안서에 신고했지만 오히려 ‘건사를 잘하라’는 핀잔만 들었다”고 전했다.



배고픔, 도적과 싸우면서 수확한 감자는 밭에서 선별작업을 마친 후 마대에 담아 수송기재를 이용해 집으로 운반한다.



감자를 캐는 것도 힘겹지만 집에 가져오는 일이 더 힘들다. 수확한 감자를 집까지 운반하려면 수송기재인 트랙터가 있어야 하는데 협동농장 트랙터를 쓰려면 밤이나 새벽에 써야 한다. 그나마 연료부족으로 트랙터를 쓰기도 쉽지 않다.



트랙터 한 대에 보통 감자 2.5~3톤을 적재하는데 산골길이 울퉁불퉁해 많이 싣지 못한다. 보통 트랙터 운전수들은 10km를 왕복하는데 디젤유 10kg을 요구한다. 디젤유 1kg은 4000원이고, 가을감자 가격은 1kg당 100~150원 한다. 결국 트랙터를 움직이려면 감자 250~300kg을 팔아야 한다는 말이다.



가난한 주민들은 자연히 소를 쓰게 되는데 공수(工數)도 곱절로 든다. 소를 빌려서 감자 500kg을 실어오는데 사용비로 감자 70kg을 주어야 한다. 감자 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집에 가져온 감자는 종자, 먹을 것, 가공할 것 등으로 가려낸다. 보통 감자농사를 전문으로 하는 집은 1인당 감자 1톤을 한해살이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비료 등이 충분치 않아 땅이 산성화되고 도적피해까지 있어 기준량에 미치지 못한다.



감자 가공도 쉽지 않다. 우선 가공할 감자를 물에 깨끗이 씻는다. 그런 다음 기계에 넣어 갈아낸다. 전기사정으로 기계를 사용 못하면 발로 갈게 만들어진 발기계로 갈아낸다. 건장한 청장년이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발기계를 돌리면 감자 약 400kg을 갈 수 있다.



갈아낸 감자는 채로 걸러 앙금을 앉히고 한 두 시간 후에 물을 바꿔 준다. 이렇게 우려내기를 5번 정도 하고나면 감자녹말이 하얗게 된다. 모두 우려낸 녹말은 물기를 짠 다음 방안에 비닐을 깔고 말린다. 물기가 없이 완전히 마르면 비닐용기에 습기가 들어가지 않게 포장한다.



북한에서는 감자녹말이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인기가 많다. 주민들은 명절이나 결혼식 등에 감자녹말 국수를 만들어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