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의 바람맞은 인생 1부] 우연과도 같은 만남, 불행의 시작

[어느 필사원의 사건일지] 당이 맺어준 남자…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휘말린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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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여자로서 남편의 사랑을 막연히 갈구하고 그리워하면서도 끝내 함께 보내지 못하고 홀로 인생을 보낸 한 여인이 있다. 대한민국 여성들의 자유로운 삶을 생각할 때면 문득문득 이 여인이 떠오른다. 외로움에 젖고 우울함에 젖어있던 여인.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의 한 자락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다.

여인의 남편은 출장을 떠난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훌쩍 사라져버렸다. 그는 수십 년 세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에 살고 있는지, 무얼 하며 살아가는지, 여인은 남편의 이후 행적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떠나간 남편은 여전히 여인의 주민등록상 문건에 남편으로, 아이들의 아버지로 올라있었다. 부정할 수 없는 주민등록 문건은 그녀를 영원히 남편의 그림자에 얽매어 놓았다.

그녀는 지금 백발노인이 되었다. 이제는 두려울 것도 없는 나이다. 그녀는 동네 여인들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나는 어느 날 갑자기 결혼하게 되었다. 만 20살의 어린 나이에, 아직 할 일이 많은 어린 나이에 초고속 결혼을 진행했다. 내 의사가 아니었다. 남편의 의사도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에서 중매를 서주었고 결혼이 성립되었다. 그리고 나는 빈껍데기뿐인 결혼에 나를 묶어놓은 채 아이 셋을 낳고 긴 세월을 속절없이 흘려보냈다. 결혼과 함께 내 인생을 통째로 도둑맞았다.”

여인은 평생 과부 아닌 과부로 살았다. 내가 북한을 떠날 때 그녀는 70대 중반이었다. 이제는 80도 더 지났을 테니 살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그 여인이 지나칠 때마다 하나같이 처량한 눈빛을 보냈다. 당 간부들까지도 그녀를 동정했다. 일생을 과부 아닌 과부로 보내며 몸부림치며 살아온 여인의 인생이 가긍해서이다. 절간의 여승이라면 차라리 낳을까. 상처 많은 이 여인의 이야기를 나라도 속 시원하게 세상에 털어버리면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까? 그 여인의 기구한 이야기를 적는다.

벼락 치듯 이뤄진 결혼식 그리고 입당

그녀의 이름은 리정심이다. 정심은 시내의 한 공장에서 한 개 직장의 청년들을 거느린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의 전신)의 위원장이었다. 20살, 아직 꽃다운 나이였다. 미모도 좋고 성품도 좋고 가정환경까지도 좋은 그녀는 발전성이 풍부했다. 입당만 하면 공장 당위원회 조직부나 선전부 같은 곳에서 일할 재목이라고 미리 점치는 간부들도 있었다.

그런 그녀를 은근히 탐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공장 간부들, 당위원회 간부들은 좋은 남자가 있으면 그녀를 먼저 떠올리곤 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군대 나간 처남이나 동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배필로 점찍어 둔 간부들도 있었다.

정심의 집은 골목 몇 개를 지나서 돌아가는 곳에 있었다. 독일 사람들이 들어와서 설계하고 지은 집인데 산 밑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텃밭도 많고 공기도 좋았다. 하지만 도로가 불편했다. 우아하고 든든한 독일식 단층 주택이 들어서면서 간부들의 눈길이 모두 이곳으로 쏠렸기 때문이었다.

힘 있는 권력층은 공기가 좋고 터가 좋다면서 독일식 단층집을 흉내 내 저마다 독집을 짓기 시작했다. 땅이 축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단층 개인집들이 들어서면서 평야같이 넓던 길이 좁아지기 시작하고 요리조리 돌아다녀야 하는 골목들이 생겨났다. 좁은 골목길에서 바쁘게 걷는 사람들은 오며 가며 서로 부딪칠 때가 많았다.

사람들은 불편을 느끼기 시작했다. 억울한 주민들은 이 불편을 국가에 호소했지만 해결될 기미는 없었다. 힘 있는 간부들이 길 사이사이에 이미 지어버린 집들을 허물라고 할 수 없었다. 당 간부들이 대세인 시대였다.

몇 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점차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모퉁이를 지날 때 조심히 서로 양보하면서 지나다녔다. 그러나 처음 이 골목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부딪히는 사고를 겪었다. 바로 이 골목에서 정심은 불행의 씨앗인 남편과의 첫 인연을 맺었다.

그날은 출근하느라 바쁜 아침이었다. 정심은 길모퉁이에서 불쑥 나타난 한 남자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둘의 몸이 순간 붙었다 떨어졌다. 진한 군복 자락이 눈에 확 안겨들면서 남자의 커다란 가슴에 연약한 몸을 통째로 맡겼다.

정심은 바쁜 와중에도 얼굴이 빨개지고 당황했다. 순간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왠지 남자가 골목길에 숨어 있다가 정심이 오는 것을 발견하고 일부러 불쑥 나타나 부딪친 느낌이랄까. 화가 나기도 했다.

남자는 품에 확 안겨든 여자의 중심을 잡아 세워주고 당황한 어조로 사과했다.

“아, 미안하오. 어디 다치진 않았소?”

부드러운 말소리. 그가 사는 함경도의 투박한 북쪽 말씨가 아닌 부드럽고 사근사근한 평양 말씨가 정심의 목 언저리를 감겨 돌며 들려왔다. 평양에서 복무하는 군인이라고 짐작했다. 누군가에 집에 온 제대군인 아니면 휴가 나온 군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복을 입은 모습에 사과까지 하는 모습이 너무 멋져 순간 빠져들 것 같았다.

정심도 사과했다.

“전 일없습니다. 그쪽은 일없습니까?”

정심은 그때야 비로소 남자의 얼굴을 스치듯 쳐다보게 되었다. 미남형에 키가 훤칠한 청년이었다. 처음 보는 남자인데 눈에 맑은 빛이 확 돌아 단번에 호감이 갔다. 심장이 저도 모르게 쿵쿵거렸다.

그 길로 곧장 달음박질쳐 직장에 출근했는데도 계속 그 남자의 입김이 목 언저리를 감도는 것 같았다.

‘그 사람, 우리 동네 사람은 아닌 것 같고. 누구 집에 온 손님일까? 아니면 새로운 곳에 제대돼 온 청년일까?’

정심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자꾸 그 남자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북한 살림집에 태양빛 집열판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 /사진=조선중앙통신 캡처

직장에 들어서기 바쁘게 초급당 비서를 통해 당위원회 조직부에서 정심을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정심은 사업상 당위원회에 불려 나갈 때가 많았다. 하지만 조직부에서 찾는 일은 그리 흔치 않았다. 혹시 청년사업과 관련해 조직부원과의 개별적인 담화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조직부에 들어서니 조직부장과 또 한 사람이 그를 맞이했다. 공장 당위원회 간부는 아닌 것 같았다. 조직부장이 먼저 말을 걸어왔는데 그 첫마디가 이상했다.

“정심 위원장,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오? 20살로 알고 있는데 맞나? 시집가긴 좀 아쉬운 나이구만. 아직 5년은 더 일하고 갔으면 좋겠구먼.”

조직부장은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정심은 아연했다.

‘조직부장이 지체에 어울리지 않게 시집이니, 뭐니 하는 듣기 거북한 말들을 건네다니. 내가 언제 시집을 가고 싶다고 얘기했나? 입당도 못 했는데….’

정심은 3년 후쯤에야 입당문건이 내려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을 잘한다고 해서 당장 입당시켜주지 않았다. 여자들은 입당만 시켜놓으면 일을 털어버리고 시집을 가버린다고 좀처럼 빠른 입당이 성사되지 않았다. 정심은 시집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조직부장의 말이 당치 않다는 듯 입술을 감빨며 정색한 얼굴을 내리깔았다.

조직부장은 정심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약간 사이를 띄우더니 또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다.

“정심 위원장을 이만 일 시키고 이젠 놔 주어야 할 것 같소. 좋다는 남자가 있는데….”

그는 약간 뜸을 들이더니 다시 말했다.

“만나보지 않겠소? 그쪽에서는 정심을 벌써 좋아하는 것 같은데 좋은 청년이니 한번 만나볼래? 지금?”

조직부장은 얼굴에 짓궂은 미소를 짓고 정심을 슬쩍 건너다보았다. 싱거운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갑자기?’

정심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는 부끄러워 귀까지 새빨개졌다. 조직부장의 말을 거역하면서 안 보겠다느니 하는 대답은 무용지물이었다. 하지만 용기 내어 한마디 했다.

“조직부장 동지,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입당도 못 했고 아직 할 일도 많고…. 결혼은 좀 천천히 할 생각입니다.”

“괜찮아. 입당은 뭐 우리가 시켜주면 되고 그까짓 밤낮 들볶아대는 사회생활 그만두고 시집 잘 가면 그 이상 뭐가 있겠어?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면 대학 10개 졸업한 것보다 낫다고 하지 않나”

조직부장은 뭐가 좋은지 계속 미소를 잃지 않고 정심을 어르듯이 말했다. 그리고는 전화로 누군가를 부르고 함께 있던 사람과 싱글거리며 나가 버렸다.

조직부장이 나간 자리에 늙수그레한 조직부 부원이 들어섰다. 정심을 잘 아는 아버지뻘 되는 부원이었다.

“정심 위원장, 부장 동지에게서 초보적으로 내용 들었지? 잘 만나보오. 아마 마음에 들 거요. 좋은 청년이니까.”

그의 목소리는 조직적 명령처럼 무게가 실린 것 같은 위엄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정심을 조직부 옆방으로 무작정 데리고 들어갔다.

정심은 난감하고 황당했지만, 자신의 판단이나 의견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걸 알았다. 정심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당에서 결혼하라면 결혼해야 할 운명에 처해 있다고 생각했다. 불가결한 힘이 이미 그를 지배한 것이었다.

조직부 부원을 따라 방에 들어서니 군복을 입은 준수한 외모의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부원은 나가버렸다. 남자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군대식으로 벌떡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정심도 얼떨결에 맞받아 인사를 했다. 어디서 문득 날아온 낚시를 입에 문 것처럼 께름칙하고 불편했다. 그녀는 창백해진 얼굴로 앞에 서 있는 청년을 얼핏 보았다. 순간 놀랐다. 그는 아침에 골목길에서 부딪친 청년, 금방까지 가슴을 콩닥거리며 떠올렸던 그 청년이었다. 그 청년을 여기서 보다니, 정심은 당황했다. 하지만 남자는 그리 놀라워하지 않는 눈빛이다. 오히려 이미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듯한 미소를 온 얼굴로 표현하고 있었다.

방금까지 시집가려는 마음이 없다고 말했던 정심은 혼란스러워졌다. 머리는 아니라고 하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이 남자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직장 사로청 위원장으로 늘 도도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그가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다른 세계가 눈앞에서 오락가락했다. 몸과 마음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알지 못할 미묘한 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돌아온 조직부 부원은 두 볼이 빨갛게 타오르는 정심을 보며 아버지다운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두 사람, 다 어때? 내가 보기엔 그림이 너무 순수하고 아름다워. 뭐 다른 할 말이 없지?”

부원은 물어보나 마나라는 듯 다된 일처럼 여기며 말했다. 당에서 정해준 일이니 돌릴 수도 없는 일이다. 익은 떡과 같으니 이제 먹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 짙게 풍겼다. 그는 줄곧 웃음을 머금고 둘을 이리저리 힐끗거렸다. (계속)

*편집자주
북한 안전서(경찰서) 등지에는 ‘필사원’이 있다. 이들은 사건을 기록해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때문에 이들은 북한 당국이 어떻게 사건사고를 처리했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데일리NK는 필사원으로 일했던 한 탈북민의 증언을 통해 북한 체제의 속성을 파헤치고자 한다.
다만 일반적 기사체를 고집하기보다 소설적 기법을 사용해 독자들이 사건의 흐름과 북한 주민들의 심경을 보다 사실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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