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층 깊어진 韓中관계…한반도에 큰 바람은 몰려오는가?

한반도는 미-중간, 그리고 중국 입장에서 볼 때 서방세계와 맞부딪치는 전략적 요충지다.

중국은 아시아, 즉 동양을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베이징올림픽 개폐회식에서 보여준 일관된 메시지가 세계사에서의 중국의 역할, 동양사의 주인공, 그리고 대중적 민족정서로 ‘동방불패(東邦不敗)’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올림픽 개폐회식에서 유난히 ‘서양과 (중국으로 대표되는)동양의 화해 협력’ 장면이 많이 등장했다.

과거 마오쩌둥 시기에는 ‘동방 홍(東邦 紅)’을 내세웠다. ‘홍(紅)’은 사상을 의미한다. 중국이 ‘동방의 사상’(공산주의=마오이즘)을 대표한다는 것이었다. 중국은 ‘서양(西洋)’을 줄인 의미로 쓰는 ‘洋’ 자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서양에서 오는 조류(潮流)’라는 뉘앙스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서양에 뜯어 먹힌 과거사에 대한 컴플렉스가 저변에 놓여있고, 이에 바탕하여 중국 일반인들의 민족주의, 중화주의적 정서가 분출된다. 중국 정부는 또 이 같은 대중 정서를 국내 통합과 대외 전술로도 활용하고 있다. 과거부터 한국 정부가 ‘독도’를 매개로 한 민족정서를 대내 정치와 대일 외교에서 활용해온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하여튼, 구소련이 무너진 후 20년 가까이 미국 중심의 일극(一極) 체제에서, 미국은 전세계를 포괄하는 구심력 위주의 대외전략을 보여왔다. 중국 역시 적어도 군사전략에서는 미국의 ‘포위 대상’이 된다.

반면 중국은 가능한 수준에서 미국의 구심력을 바깥으로 밀어내는 원심력 위주의 대외전략을 구사해왔다. 이 두 힘이 맞부딪는 곳이 대략 동쪽에서부터 보면, 한반도-동남아시아-티벳-인도-중동-아프리카 라인이다. 중국은 그러면서 미국, 유럽, 러시아에 대해 도광양회(韜光養晦)하면서 화평굴기(和平堀起)를 준비해왔다. 아직은 종합적으로 미국의 힘에 떨어지지만 이번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이 ‘굴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미-중이 부딪는 라인에서 특히 한반도는, 비록 석유 한방울도 안 나는 곳이지만 중국에게는 매우 중요한 전략 요충지가 된다. 지금 티벳 문제와 위구르 자치구 때문에 중국의 서쪽은 불안한 편이다. 그런 가운데 만약 미군이 한반도 북쪽의 압록강까지 진출하여 중국의 동북쪽에서 베이징을 겨냥한 미사일 체제를 구축하게 되는 상황이 오게 된다면, 그것은 끔찍한 악몽이다. 중국은 이같은 상황을 ‘결단코’ 용인하기 어렵다.

김정일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김정일은 한반도 북쪽의 지리정치학적 이점(利點)을 활용하여 그동안 중국으로부터도 ‘당당하게’ 경제지원을 뜯어내 왔다. 또 미국의 공격을 방어해내는 외교적 방패막이로 중국을 활용해왔다. 북한의 이른바 ‘벼랑끝 전술’을 깊이 파고 들어가면 이같은 지정학적 특성과 중국의 약점을 활용하는 김정일의 ‘꽃뱀전술’이 놓여있다. 중국도 스스로 북-중 관계를 ‘입술(북한)과 이(중국)의 관계’로 표현해 왔다.

중국도 마음 같아서는, 핵무기로 안보불안을 일으키고, 별로 주는 것 없이 뜯어가기만 하고, 게다가 탈북자 문제로 ‘인권 탄압’이라는 유탄을 얻어맞으며 자칫하면 중국내 인권문제로 확대될 수 있는 상황에서, 김정일 정권을 개혁개방 정권으로 확 바꿔버리고 싶을 것이다. 사실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 중에는 김정일 정권이 중국식 개혁개방 정권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어쩌랴. 중국 입장에서 볼 때 김정일이 중국의 대미전략 일부를 동쪽 끝에서 감당해주고 있으니, 그것도 중국이 직접 하기 싫은 ‘악역’을 대신 해주고 있으니, 김정일의 ‘꽃뱀전술’을 뻔히 알고 있지만 적당한 수준에서 지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특히 90년대 이후부터의 ‘애증의 북중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2006년 10월 진짜로 핵실험을 해버리자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비핵화’ 기조가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여기에서 중국은 북한의 핵보유를 용인할 수 없는 미국, 한국 등과 공동의 이해관계의 폭이 확실히 더 넓어지게 되었다. 아울러 90년대 중반부터 15년 가까이 지속된 북한체제 내구력 저하를 지켜보면서, 중국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가 매우 중요한 현안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후진타오의 방한은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라는 맥락에서 먼저 이해해야 할 듯하다. 더욱이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첫 외국방문 일정으로 한국을 잡은 것은 중국이 현 시점에서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특히 34개 항에 달하는 ‘추진과제’ 중 정치, 군사 분야가 적지 않게 포함된 것은 92년 한중 수교 이후 가장 괄목한 한중관계의 발전의 지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중국이 한반도에서 북한보다 남한에 더 쏠렸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성급한 편이다. 지금 중국의 행보는 ‘한반도 전체’를 좀 더 친중화(親中化) 하자는 의미이지, ‘지금부터 북한보다 남한에 더 가까이 가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시 말해 한국을 방문한 후주석의 눈길의 50% 정도는 중국의 대미 전략을 의식한 것이며, 나머지 50% 정도가 각각 남북한에 가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안정적, 보수적 계산일 것이다.

그러나 후진타오의 방한을 지켜보는 김정일의 입장에서 볼 때, 특히 정치, 군사 분야에서의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현실화 추진은 큰 타격이 된다. 또 이를 지켜보는 북한의 군 간부, 당 간부가 받게 될 충격도 적지 않을 것이다. 사실, ‘동쪽에서 소리 지르며 서쪽을 공격하는’ 성동격서(聲東擊西)의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정부가 이번 올림픽 기간의 연장선에서 후 주석을 서울로 초청한 것은 김정일 정권에게 외교적 패배를 안겨준 것이다. 특히 후 주석이 서울에 와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언급한 것은 김정일로서는 꽤 뼈아픈 대목이다.

또 한편, 중국은 이번 방한을 계기로 남북관계에서 좀 더 적극적인 ‘조정역할’ 또는 ‘매파(媒婆)’ 노릇을 해보겠다는 뜻도 숨어 있는 것 같다. 최근의 남북관계 경색을 둘러싸고 후 주석이 “남북이 화해협력하고 의사소통하는 게 좋다”고 한 발언은 ‘남북이 화해협력하면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에 유리하고 결과적으로 한반도 전체가 조금이라도 중국쪽으로 오게 될 것’이라는 뉘앙스도 담겨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한국 정부는 경제 살리기와 더불어 향후 대외전략이 중차대한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1990년대 공산권 몰락과 북방개척 이후 지금이 능동적인 대외전략을 전개하기에 좋은 기회인 것 같다.

데일리NK는 그동안 북한의 개혁개방 추동과 정상국가화, 김정일 정권의 평화적 교체 등을 위해 한미중 고위급 전략대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누차 강조해왔다. 그래서 이번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추진 항목에서 2008년에 1차 한중 고위급 전략회의를 갖고 이를 정례화 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기로 한 대목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한중 고위급 전략대화가 정례화 되면 북한문제도 양국 정부 차원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한중 고위급 전략대화는 적어도 북한문제와 관련해서는 한-미-중 고위 전략대화 채널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북한의 적극적인 개방문제를 비롯하여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한미중 연합정책 수립, 재중 탈북자 보호 및 지원 등도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번 한중 정상회담은 향후 한반도의 변화와 관련하여 또 하나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건국 60주년을 맞으며 바야흐로 한반도에 큰 바람은 몰려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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