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내주 러시아.우즈베키스탄 순방기간 열리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은 메인이벤트인 러시아 전승 60주년 기념행사 참석에 못지 않은 중량감 있는 정상외교 일정이다.
노 대통령과 후 주석은 지난해 11월 칠레 아태경제협력체(APEC) 회의 이후 약 6개월만에 성사되는 이번 대좌에서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북핵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다룰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은 6월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 6월 또는 7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등으로 이어지는 연쇄 정상회담의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해 대응수위가 어느 정도선에서 결정될지도 주목된다.
정우성(丁宇聲) 청와대 외교보좌관도 4일 브리핑을 통해 이번 정상회담의 의제와 관련, “현안인 북핵문제, 한중일 관계 등 동북아 정세와 양자 관계 현안”이라고 밝혀 북핵문제가 주요 어젠다임을 분명히 했다.
관심은 양국 정상이 지난해 칠레 회담에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긴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차기 6자 회담의 조기 개최와 실질적 진전을 위해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한 합의를 재확인할 것이냐, 아니면 완고한 태도로 돌아설 것이냐에 있다.
지난해와는 달리 북한은 2.10 핵보유 선언을 통해 미국에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데다 6자회담 테이블에 복귀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는 등 전반적인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 미국과 북한은 상대 지도자를 향해 ’폭군’, ’망나니’ 같은 험구를 주고받고, 미국내에서 북한 핵실험 임박설 보도가 잇따르면서 북핵 문제의 유엔 안보리 회부 등과 맞물려 이른바 ‘6월 위기설’이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변화된 한반도의 안보환경 속에서 압박보다는 협상 쪽에 무게를 실어온 양국 정상이 칠레에서 합의한 북핵기조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가 이번 모스크바 양자 정상회담에 쏠린 관심인 셈이다.
한.중 양측은 이번 회담에서 북핵 문제 등 정상회담 논의결과를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하지 않기로 조율을 마친 것으로 알려져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원려’가 반영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북핵 문제와는 별개의 차원에서 한중 정상이 양국 국민의 공동 관심사인 일본의 교과서 왜곡 등 역사 인식 문제와 관련해 공동 대처방안을 논의할 지 여부도 관심거리이나 실현가능성은 낮아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두 정상이 여러 얘기를 털어놓고 얘기를 나누겠지만 그런 방안을 합의하는 회담은 아니다”며 가능성을 일축했다.
한편 이번 후 주석과의 정상회담은 수 십개국 정상이 참석하는 러시아의 2차세계대전 전승행사 기간에 노 대통령이 사전조율을 거쳐 마련한 유일한 양자 정상회담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측은 당초 6자회담의 또다른 참가국인 러시아의 블라드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실무 외교채널을 통해 타진했지만, 행사 주최국인 러시아가 행사기간에는 개별 정상회담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정중히 ‘사양’한 것으로 전해졌다.
2차대전 패전국인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도 모스크바 행사에 참석하지만, 한국과는 공식회담을 갖지 않는다.
후 주석의 경우에는 노 대통령과 회담 후 모스크바 현지에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양자 정상회담을 가질 것으로 알려져 북핵 문제 등과 관련한 양국의 조율 결과가 주목된다.
노 대통령이 사전계획 없이 미.일 정상등과 ‘즉석 회동’할 가능성과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오찬이나 행사 이동중에 조우해 관심사항에 대한 의견교환 정도는 있겠지만 어느 정상과 조우할 지, 부시 대통령이나 고이즈미 총리와 만나는 일이 있을지는 예상할 수 없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