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납치문제 해법 차이

1978년 납북된 것으로 알려진 김영남씨가 어머니 최계월씨를 만남에 따라 납치문제를 다루는 한일간의 해법 차이가 눈길을 끈다.

한국 정부가 납북자의 생사확인과 상봉에 무게를 둔 점진적이고 실용적 접근법을 구사하고 있다면 일본 정부는 납치 일본인과 그 가족의 송환까지 요구하는 ’근본적 해법’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북 양측은 2000년 6.15공동선언에서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했다”고 합의한 뒤 납북자 문제를 광의의 이산가족 범주에 넣어서 풀어왔다.

이후 남측에서는 2000년 11월 제2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1987년 납북된 동진27호 갑판장 강희근(56)씨와 남측의 어머니 김삼례씨를 상봉시킨 이후 지금까지 총 26가족 104명의 상봉을 성사시켰다.

김영남씨가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납치 일본인 요코다 메구미씨의 남편인 것으로 알려진 뒤에도 남한 정부는 공개적으로 북한을 압박하기 보다는 장관급회담 채널을 통해 북측에 이 문제의 해결을 촉구했고 북측도 신중하게 청취한 뒤 ’조사중’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이어 정부는 200명으로 상봉자 수가 늘어난 이번 제14차 상봉에서 최계월씨를 명단에 포함시켜 북측에 전달했고 북측도 긍정적으로 화답해 만남이 이루어졌다.

또 제16차 장관급회담에서 남북은 ’전쟁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내 납북자 문제 해결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직접 나서 납북자 문제를 인도적 사안의 회담틀인 적십자회담에만 맡겨둔 남한에 비해 적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고이즈미 총리는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납치문제에 대해 북측으로부터 시인을 받아냈고 2004년 정상회담에서는 일본으로 귀국한 납치피해자의 북한거주가족 5명의 일본행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일본쪽에서는 북한의 점진적 문제 해결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실종 또는 사망한 10명의 일본인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고 북측의 조사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특히 일본은 이번 상봉에서 어머니를 만난 김영남씨가 2004년 11월 전달한 요코다 메구미씨의 유골에 대한 DNA조사 결과 ’가짜’라고 주장했다.

일본에서는 북한의 전달내용을 대부분 거짓 또는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문제의 해결보다는 정치적 압박에 무게를 두고 있는 모양새다.

결국 북측은 일본측과 접촉에서 ’할만큼 했다’는 입장을 피력했고 최근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일본과 앞으로 납치문제를 논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일본측에서는 28년 만에 아들을 만나게 될 최계월씨에게 “북쪽 지역에서 상봉을 하지 말 것”을 주문하기도 했으며 최씨는 일본측이 아들과의 상봉문제를 정치적으로 다룬다는 불만을 표출하면서 일본 언론에 대해 취재거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