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권교체> 한.일관계 ‘기상도’ 변화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일본 총선의 결과가 향후 한.일관계 기상도에 어떤 영향을 몰고올 지 주목된다.

이번 선거결과는 ‘보수’에서 ‘진보’로의 일본 정치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의미하고 있어 대외정책 기조에도 궤도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는 게 외교가의 일반적 관측이다.

이에 따라 지난 54년간 자민당 정권하에서 고착화돼온 한.일관계도 변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변화의 방향은 일단 ‘긍정’쪽이다.

일단 민주당이 내건 신(新)외교의 중심 키워드는 ‘아시아 중시’다. 미국 주도의 세계화 흐름에서 벗어나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역내 협력체제인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축한다는 구상이 여기서 나왔다. 일본 외교의 기본 축이었던 미.일동맹을 ‘대등한 관계’로 재정립하겠다는 공약도 같은 맥락이다.

한.일관계는 이런 기조 속에서 ‘성숙한 동반자 관계’로 규정되고 있다. 새 총리로 유력시되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는 “동아시아와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한.일)양국간 신뢰관계를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공약집은 한 걸음 더 나아가 ▲6자회담 당사국인 한국과의 우호적 관계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한.중.일 3국간 강력한 협력관계 구축을 명기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한.일관계의 걸림돌이 돼왔던 과거사 현안들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점이다.

8.15 광복절만 되면 논란거리로 떠올랐던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경우 신사를 대신할 새로운 추도시설 설치를 적극 검토한다는게 민주당의 입장이다. 또 위안부를 포함한 전쟁피해자 진상규명을 위해 국회도서관 내에 항구평화조사국을 만들고 원폭 피폭자들에 대한 새로운 구제인정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새 정권의 대외정책에 관여하고 있는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민주당 간사장이 누차 “(과거 침략을 통절하게 반성하고 진심으로 사죄를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천명한 것도 이 같은 전향적 태도를 확인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 2010년 한일합방 100주년을 맞아 민주당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획기적인 조치를 내놓을 것이란 관측들도 나오고 있다.

그 뿐만아니라 재일동포가 다수인 일본내 영주 외국인에 대한 지방 참정권 문제도 조기 실현을 공약하고 있어 동포사회에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처럼 민주당 정권의 등장으로 인해 한.일관계가 긍정적으로 풀려나갈 것이란 낙관론이 커지고 있지만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일단 일본 내부의 복잡한 정치상황이 민주당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분석이다. 사상 처음으로 정권을 잡은 민주당으로서는 당장 자민당의 경제실정(失政)에 대한 민심을 수습하는 게 발등의 불이기 때문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당장 내치(內治)에서 성과를 내는 게 급선무여서 현실적으로 외교에 눈돌릴 겨를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민주당은 이념적 스펙트럼이 상이한 정파들이 모인 정당인 탓에 구조적으로 `한지붕 여러가족’이라는 불안한 동거상태에 놓여있다. 주요 대외정책에 대한 내부합의가 어렵고 정권 초기에는 당내 계파간 노선투쟁이 격화될 개연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내년 7월 참의원 선거가 예정된 점도 민주당의 운신의 폭을 좁혀놓고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정치적 역풍의 가능성이 큰 과거사 문제를 `우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여기에 독도 문제가 여전히 양국관계의 `뇌관’으로 남아있다. 민주당은 공약집에서 “영토주권을 갖는 독도”라는 표현을 고집하고 있어 양국간 외교마찰 소지가 그대로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한 소식통은 “독도 문제에 관한한 여야가 따로 없다”고 말했다.

또 북핵 해법을 둘러싸고 양국이 엇박자를 빚을 개연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일본 민주당은 공약집을 통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적극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우리 정부로서는 북한이 비핵화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 한 남북관계의 진전이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 새 정권으로서도 북핵 문제의 외교적 민감성을 감안해 미국과 공동보조를 맞출 것으로 보여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이에 따라 외교가에서는 민주당이 내건 공약내용과 현실적 정치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새 정권하의 한.일관계는 갈등을 표면화하기보다는 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가는 국면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특히 새 정권은 교과서나 독도 등 과거사 현안이 돌출하지 않도록 `자극적’인 언동을 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한 소식통은 “정국흐름에 따라 돌발성 악재가 나타날 수는 있지만 가급적 갈등을 제어하는 쪽으로 정치력이 발휘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로서는 일본 민주당 정권의 등장이 한.일관계의 중장기적인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민.관 차원의 긴밀한 외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한편 과거사 현안에 대한 정책교류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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