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렬 처음 볼 때는 사실 두렵기도 했다”

▲ 관광 7주년을 맞아 금강산을 찾은 정동영 장관

지난 토요일 저녁에 양천구에 위치한 자유북한방송(freenk.net)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다음날 <북한자유를 위한 한국교회 연합>(KCC)이 주최하는 강연 차 미국으로 향하는 김성민 대표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방송국에 도착하니 김 대표는 이미 먼저 방문한 다른 탈북자와 저녁을 먹기 위해 근처 식당으로 향한 뒤였습니다. 물어 물어 식당을 찾아가니 이미 불판에 삼겹살이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었습니다. 소주도 이미 절반 가량이 비어 있었습니다. 김 대표 일행은 이미 얼굴이 벌개져 술잔이 몇 번씩 오고 갔음을 짐작케 했습니다.

“나참… 한성렬(유엔 북한 차석대사)이 만났을 때 사실은 진짜 겁이 났습니다. 처음에는 말 할 용기가 나지 않았죠.” 이달 초 김 대표가 한 차석대사를 워싱턴 소재 레이번 빌딩에서 만났을 때 당시의 아찔했던 심정을 토로하던 차였습니다.

“처음에는 몇 마디 의견을 전하려고 했지요. 내가 명함을 건네자, 욕을 하며 집어 던지길래 갑자기 탈북자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한 대사의 눈을 노려보며 ‘한반도 평화 올라면 김정일 타도해야 하지 않나’라고 말한겁니다.” 그는 눈을 밑으로 향한 채 쓴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이내 소주 한잔을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

“한성렬도 사실은 불쌍한 사람 아닌가”

국내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돼 처음엔 괜한 행동을 했나하고 생각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한 대사와 격투라도 벌이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고 했습니다. 북쪽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그 새카맣게 타버린 가슴의 한을 풀지 못한 게 아쉽다고요.

김 대표는 알고 보면 한 대사도 가족이 평양에 붙들려 있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겠냐고 했습니다. 북한 대사라고 해봤자, 빛 좋은 개살구라고 했습니다. 그는 “기껏해야 남한의 중산층 대우를 받으면서 김정일의 나팔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개인적 앙심은 없다”고 했습니다.

북한 최고위 핵심 간부 자녀의 가정교사로 지내다가 탈북한 모 인사는 ‘그 쪽 중앙당 간부들 남한의 중산층도 안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황장엽씨도 길거리를 가다 여섯 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가 핸드폰으로 친구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북에서는 중앙당 간부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을 여기서는 여섯 살 꼬마애가 하고 있구나”라고 혼잣말을 했다고 합니다.

김 대표와 마주 앉은 한 탈북 출신 대학생이 화제를 이어갔습니다. 그는 남한에서는 경력이 중요하다면서 명문대 대학원을 가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선택이 실속 없이 허영심의 발로로 보일까 애써 경계하기도 했습니다.

“금강산 관광, 나중에 북한 주민들에게 무슨 소리 들을 줄 아는가?”

고향이야기를 하더니 대뜸 “남한 사람들 금강산 놀러 다니는 것이 북한 주민들에게 나중에 어떻게 보일까 생각이나 하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는 고향이 강원도 원산이었습니다. 금강산은 한 번도 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특히, 남쪽 관광객을 받은 뒤로는 그 쪽에는 얼씬도 못하게 한답니다.

“북쪽 사람들은 앞으로 가보지도 못할 곳을, 남한 사람들은 관광이랍시고 배낭 메고 왔다 갔다 하면 과연 어떻게 생각할 것 같나, 인차 그 사람들이 남한 주민들 삿대질 할 날이 반드시 온다”고 했습니다.

“관광 차원에서 가는 건데, 너무 민감한 거 아니냐”고 캐묻자 “살기 고단한 북쪽 사람들은 금강산에 발도 못 떼게 하는 데 이게 무슨 남북 교류냐”고 답합니다. 그는 이어 “남한 사람들이 돈을 펑펑 쏟아서 김정일을 돕고 간 걸 나중에 알면 손가락질 받을 게 뻔하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북한을 안다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금강산을 다녀온 사람들이 벌써 1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주민과 탈북자의 가슴속을 들여다 보고 그 진심(眞心)을 매만져주는 사람은 너무도 적은 것 같습니다. 여전히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북한에 반복되고 있지 않은 지 되돌아 볼 때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습니다. 그새 진로 세 병이 바닥났습니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