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렬은 문익환 목사 ‘흉내내기’ 그만두라

역사에 가정은 없다. 부질없는 짓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가정이라는 것을 해 보니 나도 참 바보일지도 모른다. 만일… 만일에… 문익환 목사님이 살아계셨다면 한상렬 목사의 방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 가정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과거를 짚어보자.

한 사람의 시신을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백만명이 죽어가야 했던 그 비극 앞에서 문 목사님은 어떠셨을까? 수용소, 마약, 위조지폐, 밀수, 납치, 영아살해, 불법구금과 구타, 인신매매 등 밤거리 마피아들도 하기 어려운 종합범죄를 목도하셨다면 그이는 어떤 심경이었을까?

유엔총회의 대북인권결의안으로 표출된 전 세계 인간적 양심들의 요구를 문 목사님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마주하셨을까? ‘우리민족끼리’를 일삼다가 꿈도 피워보지 못한 청년들을 무리로 죽이고도 ‘서울 불바다’를 뒤에서 지시했을 김정일에 대해 또 어떤 감정이셨을까? ‘왜 하나님은 남조선에만 계시냐’며 절규하는 북녀동포들의 통한 앞에서 과연 문 목사님은 어떤 기도를 하셨을까?

가정에 대해 나름대로 답을 내려 보자. 1994년 문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만드셨던 단체가 바로 ‘통일맞이 7천만겨레모임’이다. 그때 문 목사님을 모시고 그 단체의 실무를 하던 이는 전대협 조국통일위원회에서 필자와 함께 한 86학번 선배였다.

그때 문 목사님은 그 선배에게 ‘북한이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고 말씀 하셨다. 당시까지 한총련 조국통일위원회 정책실장으로서 북한 주도의 통일을 추구하고 있던 필자로서는 꽤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그 말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북한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은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 아니면 ‘중국식 변화’ 두 가지 중 하나인데, 당시 일반적인 생각은 동구식 몰락을 의미했다. 중국의 성공적 개혁개방을 염두에 두고 ‘중국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체제가 왜 망하는가? 민심이 떠났기 때문이다. 왜 민심이 떠났는가? 인민의 요구를 묵살하고 그 들을 적(敵)으로 돌려세웠기 때문이다. 도무지 그 간격을 메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체제가 망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상식에 기초하면 94년 1월 당시 문 목사님의 발언은 ‘김일성-김정일 체제의 필연적 몰락’을 언급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게 된다.

대규모 아사사태와 수 많은 범죄, 유엔총회에서 표출된 전 세계 양심의 호소는 문 목사님의 94년 1월의 언급을 확인하는 후속절차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결국 문 목사님은 ‘범죄자와의 춤’을 추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만약 살아계셨다면 광주의 인권을 온 몸으로 살려내셨듯이 북한동포들의 인권을 전 세계 양심들에게 호소하고 다니셨거나, 최소한 모 스님처럼 비정치적인 영역에서 북한동포돕기 운동에 전력을 다하지 않으셨을까 싶다.

희대의 범죄자인 김정일의 손을 잡고 ‘민족’과 ‘평화’ 운운하는 역설이 한상렬 목사 개인의 자유라 치자. 하나님의 백성을 학살하고 지배하는 자와 협력하는 것도 한상렬 목사 개인의 소신이라 하자.

다만 그시절 통일운동이 ‘북한인권실현을 위한 통일론’과 ‘김정일과의 연대를 위한 통일론’으로로 분화되기 전까지 고뇌의 길을 가셨던 문 목사님의 이미지를 활용하려 한다면 그것은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님을 지적해 둔다.


하나님의 사랑을 갈구하는 북녘동포들을 외면하고 싶거든 혼자서 열심히 해라. 윤동주를 가슴에 품고 항상 별을 노래했던 영원한 청년 문익환 목사님은 부디 94년 1월 역사에 그대로 두기 바란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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