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 관리’ 과제로 등장 조짐

새 정부가 남북관계를 핵문제에 연계시키며 대북관계에 능동적으로 나서지 않는 가운데 북미간 핵신고 협상이 계속 꼬임에 따라, 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가 어려운 국면으로 빠져드는 양상이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27일 미국에서 “시간과 인내심이 다해가고 있다”며 북한에 핵신고를 재촉한 이튿날,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를 통해 핵문제 해결이 지연될 경우 “지금까지 겨우 추진되어 온 핵시설 무력화(불능화)에도 심각한 영향이 미치게 될 수 있다”고 맞받았다.

한 대북전문가는 28일 “북한이 당장 미국의 불능화팀을 내쫓거나 영변 핵시설의 재가동에 들어가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신고문제를 두고 북미간의 힘겨루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임을 보여준 것”이라며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한반도에 부정적인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이러한 신고 거부 입장에 따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북 압박책을 주로 논의하게 될 경우 북한의 반발로 인해 한반도 정세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을 지적한 것이다.

북한은 핵신고 문제와 관련, 미국과 대립적인 자세를 취하는 동시에 남북관계를 핵문제에 연계하는 남한의 새 정부에 대해서도 반발과 대립 자세를 분명히 하고 나섰다.

북한이 “북핵문제가 타결 안되면 개성공단을 확대하기 어렵다”는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구실로 개성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에 상주하고 있는 남측 당국자의 철수를 요구해, 11명 전원이 27일 철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히 북측은 남북관계를 총괄해온 통일부 장관을 지목함으로써 향후 남북 당국간 대화가 여의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이후 사안별로 말로만 반응을 보였는데 이제는 행동으로 반응을 보이는 쪽으로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남북관계의 경색은 군사분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이달 초 서해상에서 대규모 해안포 발사훈련을 가진 데 이어 28일 오전 10시30분께는 서해상에서 사거리 46㎞의 단거리 미사일 3발을 발사했다.

군 당국은 북한군의 동계훈련이 통상 4월 초까지 이어진다며 해안포와 미사일 발사가 통상 훈련 차원이라고 설명하지만, 서해상은 그동안 남북간 우발적 군사적 충돌이 잇달았던 곳이라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일각에선 이번에 발사된 북한 미사일이 함대함 미사일이라는 점 때문에, 매년 5∼6월 꽃게잡이철이 돌아오면 서해상에서 조성되는 긴장상태를 더욱 우려하고 있다.

김장수 전 국방장관도 퇴임 직전 합동참모본부 등에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서해쪽을 지목했었다.

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27일 “남조선에서의 정권교체를 계기로 북침전쟁 책동이 보다 노골적으로 감행되고 있다”며 “조선반도에는 새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모를 험악한 사태가 조성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간 대화채널이 단절된 상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종래는 2∼3월 남북간 장관급회담을 열어 비료 지원을 협의하고 이산가족 상봉 등의 행사를 통해 한해 남북관계의 기조를 정하고, 이들 회담을 통해 핵문제에 대해서도 남북 당국이 대화를 가졌었다.

그러나 새 정부는 지난해의 남북정상선언에 대한 유보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상반기 예정된 남북 총리회담과 부총리급 경제공동위 등 각급 회담의 개최가 불투명한 상태다.

정부는 또 대북 대화보다는 ‘핵해결 우선과 연계’라는 입장을 대내외에 천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김태영 신임 합참의장이 국회 청문회에서 북한의 핵공격시 대처 방법에 대한 질문에 ‘북한 핵기지 선제타격론’을 펴고, 유명환 외교장관이 미국도 꺼내지 않은 “인내심의 소진”이라는 말을 하고, 김하중 통일장관이 개성공단 확장과 핵문제를 부정적으로 연계시킨 것 등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 불필요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고유환 교수는 “정부에 대북정책의 사령탑이 부재하고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 명확하게 짜이지 않은 가운데 부처별로 코드를 맞춰 수위를 높인 발언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현재는 북한문제가 체감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본격적으로 느껴질 때부터는 국가신인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며 “국제적인 신용평가기관들은 한국의 지정학적 위기와 안보리스크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지금부터 정부의 적극적인 위기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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