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체제와 6자회담

지난 10월1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정부 당국자들은 ’예상치 못한 장면’에 깜짝 놀랐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핵무기를 폐기할 경우’를 전제한 뒤 ’한반도 평화제체 구축을 위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한국전 종료를 선언하는 문서에 공동서명할 용의가 있다’는 발언을 한 것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강력한 의지를 밝히고 나선 부시 대통령의 모습에서 변화하는 한반도의 오늘을 상징적으로 느꼈다고 정부 당국자들은 전한다.

53년 전 냉전의 최전선이 돼버린 한반도에서 총부리를 겨누었던 북한과 미국이 종전협정을 체결하는 일이 바야흐로 가까운 장래의 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 동인(動因)은 북핵 6자회담의 맥락에서 찾아지고 있다. 다시 말해 한반도 정세를 쥐고 흔드는 북핵사태의 전개에 따라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도 급물살을 타게 되는 국면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 한반도는 아직도 정전(停戰) 상태다. 1953년 7월27일 유엔을 대표해 미국과 북한, 그리고 중국은 정전협정을 체결했다. 3년간 지속됐던 한국전쟁을 일시 중단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어정쩡한 이 체제는 반세기를 넘었다. 기술적으로만 본다면 언제든 다시 전쟁을 속개할 수 있는 상황이다. 소련이 붕괴되고 동유럽의 자유화 물결이 몰아쳤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지구상 마지막 ’냉전의 섬’으로 남아있다.

평화체제로 이행하려면 무엇보다 한국 전쟁 당사국이자 정전협정 체결국인 미국과 북한, 중국, 그리고 실질적 교전 당사자인 한국이 모여 전쟁의 종결을 처리해야 한다.

교전 당사자였던 미국과 중국이 데탕트의 물결 속에 수교한 데 이어 1992년 한국과 중국도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다. 또 남북한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이른바 ’햇볕정책’의 효과로 어느 때보다 우호적인 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북한과 미국의 대결적 상황이 마지막 남은 비정상적인 요소가 됐다. 이 대결상황이 묘하게도 북한 핵위기와 결부돼있다.

1990년대 중반 발생했던 1차 핵위기를 넘겼던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가 세상에 나왔을 때 세계는 한반도에 봄이 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제네바 합의를 실천하기 위해 북한땅 신포에 미국과 한국이 주도하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의해 경수로가 지어졌다.

그리고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를 총괄하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땅을 밟기도 했다. 어디선가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평양방문, 나아가 김정일 위원장의 워싱턴 방문 가능성이 제기됐다.

북미간 관계정상화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자 한반도에 평화가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이 부풀어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때 미국에 북한에 대한 ’비호감’을 가졌던 부시 대통령이 등장했다.

그리고는 북핵 위기 2라운드가 전개됐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국 특사의 방북 이후 불거진 2차 북핵 사태는 다시 한반도를 위기국면으로 몰아넣었다.

북미간의 책임공방 속에 제네바합의는 휴지가 돼버렸고 신포에 지어지던 경수로 건설도 중단됐다.

위기지수가 높아만 가던 2003년 봄 중국의 중재로 북한과 미국이 베이징에서 만났다. 이른바 북미중 3자회동의 결과 북핵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과 북한은 물론 한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이 참여하는 6자회담이라는 새로운 협상 구도가 탄생했다.

과거 제네바 협상이 북미간 양자구도로 전개됐다면 6자회담은 한반도 정세를 다루는 새로운 다자 틀로 등장한 것이다.

2003년 8월 베이징에서 1차 회담이 열린 이후 6자회담은 2006년 12월 제5차 2단계 회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6자회담의 하이라이트는 2005년 9월19일 발표된 ’9.19공동성명’이다. 그리고 이 속에는 핵문제 해결 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체제의 발판이 되는 내용도 포함돼있다.

공동성명은 4항에서 ’6자는 동북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을 공약했다.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다’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9.19 공동성명의 잉크도 마르기도 전에 6자회담은 큰 위기에 봉착했다.

북한 기업 등의 거래 계좌가 다수 개설돼 있는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가 북한의 불법자금 세탁에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아 미국의 대테러법에 따라 ’돈세탁 주요 우려대상’으로 지정된 것이다.

미국의 이같은 조치 이후 마타오 금융 당국은 BDA 은행 내 북한 관련 혐의가 있는 모든 계좌를 동결했다. 당연히 북한은 격분했다.

2005년 11월 다시 베이징에 재개된 제5차 1단계 6자회담은 ’BDA 암초’를 넘지 못하고 좌초위기에 빠졌다.

서로를 향해 험악한 목소리를 쏟아내던 올해 7월5일, 미국 시간으로는 독립기념일에 맞춰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국은 즉각 유엔을 동원해 북한을 압박했다. 그러자 북한도 10월9일 재차 도발했다. 이번에는 ’레드라인’으로 여겨졌던 핵실험이라는 초강수를 던져버린 것이다.

미사일과 핵실험에 맞서 유엔 안보리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 1695호와 1718호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와 이에 맞서는 북한의 대결전선을 말해주었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과 미국은 6자회담 의장국 중국의 중재로 다시 대면했다. 그리고 세모를 앞둔 12월18일 베이징에서 5차 2단계 6자회담이 재개됐다. 13개월의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6자회담의 동력을 되살려낸 것이다.

예상대로 이 회담도 북한과 미국의 팽팽한 신경전으로 점철됐다. 그리고 앞으로 6자회담이 어떤 미래를 향해 나아갈 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도래하려면 사실상 6자회담의 성공이 필수 조건이 됐다. 6자회담과 ‘한반도의 봄’이 하나의 흐름에서 엮여가는 상황에서 세계인의 시선은 6자회담에 쏠리고 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