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변의 ‘다자간 통합’, 통일정책의 마침표

동북아 평화와 협력을 위한 ‘다자간 통합’의 가장 중요한 행위자는 미국과 중국이다. 가정이지만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서 미중의 협력이 잘 이루어졌다면 지난 9·19 공동성명의 합의한 대로 동북아도 유럽과 같이 다자간 통합의 길로 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희망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2008년 12월을 끝으로 동북아 최초의 다자간 안보 협의체였던 6자회담은 북핵은 물론이고 더 이상 동북아의 평화와 협력을 위한 통합의 장으로서 의미를 갖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6자회담은 효력을 다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9·19 공동성명의 합의대로 동북아를 다자간 통합의 길로 인도할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좀 더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 특히 북핵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후진타오 주석이 취임하면서 시작되었다. 중국은 2차 북핵 위기가 발생하자 2003년 4월 미북중 3자회담을 개최하고, 8월부터 6자회담을 개최하여 베이징 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중국의 이와 같은 태도는 지난 1993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제9기 전인대 폐막식 직후 주릉지 총리가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하거나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우리가 상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북핵 문제에 매우 소극적이었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중국의 태도가 이렇게 급변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2001년 등장한 부시 미 행정부는 미국의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미국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확산시키려는 일방주의 외교노선을 선택하였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는 더욱 힘을 얻게 되었고, 테러와의 전쟁은 “폭정의 전초기지”에 대한 실력행사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확산되었다. 그런 가운데 2002년 켈리 동아태 차관보의 방북에서 터진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인은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의 파기와 함께 동북아에서 폭정의 전초기지인 북한에 대해 미국이 실력행사에 나설 수도 있는 위기감이 감돌았다.

미·중의 전략적 타협의 결과물인 6자회담은 태생의 한계로 인해 북핵 해결을 위한 양국의 포괄적 협력이 처음부터 무리였다. 물론 2005년 9·19 공동성명의 타결과 2006년 10월 1차 북핵 실험 이후 단행된 유엔안보리 결의안 1718호에 대한 미중의 협력이라는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의 위기가 어느 수준 이상 올라가면 전통적인 북·중관계의 복원을, 미국은 어렵게 마련된 합의를 성사시키고도 악의 정권이라는 적대적 태도로 회귀하며 과거의 관행으로 되돌아가곤 하였다. 결국 6자회담의 역사적 교훈은 아무리 강력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안이 시행된다고 해도 최대 식량 원조국이며 에너지 공급국인 중국과 북한의 안전과 존속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이 서로 협력하지 않는다면 제재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사실상 6자회담 내내 시도된 미중의 협력은 이렇게 번번이 무력화 되었다.

그런 가운데 2013년 2월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의 핵심은 ‘신뢰외교’로서 한반도 평화와 함께 궁극적인 방향이 동북아 국가들의 평화와 협력을 위한 구상을 지향하고 있다.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이 이 시기에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한반도 통일의 중요한 외부환경이라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동북아 지역에서 최대의 지분을 갖고 있는 미·중의 협력은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이 성공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인 셈이다.

그러나 유럽과 동남아 지역에서 다자간 안보협력대화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것과 달리, 동북아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도 이르지 못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동북아 지역이 갖고 있는 지역적 특수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크게 세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첫째, 동북아에서 군사적 냉전체제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지역에서는 3개의 거대한 핵보유국(미국, 러시아, 중국) 및 경제대국(미국, 중국, 일본)이 포진해 있고, 한반도는 여전히 최후의 냉전지대로 남아 있다. 둘째, 동북아의 안보구조는 냉전시대 만들어진 쌍무동맹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본적으로 대립적 성격을 띠고 있다. 셋째, 무엇보다 동북아의 중심 세력인 미국과 중국이 협력보다는 경쟁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동북아 역내 국가 간의 대립은 이 지역의 세력 분포와 변화가 내포된 매우 구조적인 문제이다. 또한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동북아 지역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논의와 역내 국가 간의 역사 및 영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자적 접근이 과연 가능할까? 역설적이지만 동북아 지역에서 다자안보의 필요성과 다자적 접근의 가능성을 보여준 계기는 바로 북핵 문제였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은 동북아 최초의 안보대화이며, 이것은 동북아에서도 다자안보체제가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남게 되었다.

안중근 ‘동양평화론’이 다자간 통합을 위해 제시했던 중요한 방안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최종 종착역이 동남아를 포함한 ‘동아시아평화협력’ 구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중근은 한중일의 수평적 제휴를 동양평화의 기본 구도로 인식하였고 이를 토대로 ‘공동군항’, ‘공동의회(평화회의)’, ‘공동은행’, ‘공동군대’, ‘공용언어’ 등 매우 수준 높은 정치 및 경제공동체를 구상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안중근이 고려했던 동양평화의 범주는 동북아의 한중일 3국을 넘어서 “인도,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동아시아를 다자간 통합의 대상을 설정하였다.

아직 냉전의 대립구도와 역사 및 영토갈등이 여전히 남아 있는 동북아 지역에서 미중의 패권 구도와 한중일 3국의 역사와 영토 갈등은 동북아의 다자간 통합 노력을 방해하는 매우 직접적인 문제들이다. 따라서 동북아에서 냉전의 잔재를 없애고 평화와 협력을 위한 다자간 통합의 길을 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차원의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첫 번째 접근은 현재의 대립구도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새로운 행위자가 필요하다. 냉전의 갈등을 구조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동북아에서 평화협력구상의 범위를 동남아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동아시아에서 다자간 통합의 경험이 가장 앞서 있는 아세안(ASEAN)을 동북아의 평화협력구상에 적극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 아세안 (ASEAN: The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은 개발도상국가 내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토착화된 다자간 통합의 사례로 평가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세안 회원국들이 한국, 중국, 일본 3개국과 함께 하는 비공식 정상회담인 APT (ASEAN Plus Three)와 아시아 태평양의 역내 안보논의의 장으로서 ‘아세안지역포럼(ARF)’가 있다.

박근혜 정부 또한 북핵 해결을 위해 현재의 6자회담에 새로운 동력의 주입이 필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만약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을 동아시아로 확대할 수 있다면 두 가지 차원에서 새로운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동북아의 대결구도를 넘어설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남방삼각과 북방삼각의 냉전적 구도가 남아 있는 동북아에서 미중의 충돌을 막을 수 있는 ‘완충지대(buffer zone)’로서 아세안의 역할이 필요하다. ‘아시아 회귀’를 준비하는 미국과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세력 확장을 견제해야 하는 중국도 모두 아세안과의 관계를 필요로 하고 있다. 둘째, 아세안의 다자간 통합의 경험을 배울 수 있다. 다자간 협상보다 양자동맹에 익숙한 동북아는 다자간 통합의 경험을 갖고 있는 아세안을 통해 지역통합의 수준을 계속 성장시켜야 한다.

두 번째 접근은 북핵이라는 단일 이슈에서 역내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다양한 이슈로 의제를 확대해야 한다. 북핵 문제 해결을 목표로 6자회담이 다자간 안보협의체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북핵이라는 단일 이슈만으로는 부족하다. 유럽의 경험처럼 역내 국가들 간의 다양한 정치, 경제, 안보, 영토, 역사 등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그러나 미·중의 패권과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미·러의 대결, 센카쿠를 둘러싼 중·일의 갈등, 독도를 둘러싼 한·일의 갈등과 오랜 역사문제는 동북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으며 따라서 더욱더 ‘다자안보협의체’를 위한 노력이 어느 곳보다 필요하지만 어느 지역보다도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를 인식한 박 대통령도 역내 국가들 간의 비정치적 사안, 즉 기후변화, 테러대응, 원자력 안전문제 등을 통해 먼저 함께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했던 것이다. 그만큼 미·중의 협력도 어렵고 나머지 역내 국가들의 이해관계 또한 복잡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동북아의 이와 같은 복잡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고려할 대 어쩌면 북핵은 동북아의 역내 안보 협력의 필요성을 촉진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북핵으로 출범한 6자회담이 ‘동북아다자안보협의체’로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동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동북아의 다자간 안보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전의 6자회담인 베이징 프로세스와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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