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중동(靜中動)…호랑이 눈으로 멀리, 정확히 보라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정중동(靜中動)이다.

6자회담을 비롯해서 각국간 ‘대화 프로그램’이 중지돼 있다. 국가간 상호작용이 없다. 미국도, 한국도, 중국도 지금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모멘텀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도 북한은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2차 핵실험이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니 떠들어대면서 누군가, -정확하게는 미국이- 언젠가는 말려주기를 기다리며 벼랑끝으로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바삐 움직이는 쪽은 아무래도 북한 속사정인 것 같다. 2012년 강성대국 문패달기를 목표로 부산을 떨고 있다. 북한당국은 현재 ‘150일 전투’를 벌이고 있다. 살림집(주택) 건설을 비롯해서 소위 ‘경제대국’으로 가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150일 전투는 또다른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는 것 같다. 1974년 이후 김정일이 3대혁명 소조운동과 ‘70일 전투’를 통해 자신만의 권력기반을 닦은 사례를 떠올리면, ‘150일 전투’는 김정일이 후계를 염두에 두고 미리 김정운의 기반을 닦아주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만약 그 짐작이 맞다면 지금 북한 권력내부는 후계문제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빠르게 뭔가가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런 추론의 연장선에서 2차 핵실험 등의 대외 벼랑끝 행동도 예상보다 빨리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일이 뇌중풍을 맞은 이후 북한이 외부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방법은 ‘즉각적 대응’이다. 큰 전략이나, 그런 전략이 드리우는 둔중한 공포감이 섞인 그림자는 어른거리지 않는다. “우리는 한다면 한다” 식의, 거의 ‘무대포’ 수준의 전술을 보여주고 있다. 오죽하면 미국 여기자 2명을 인질로 삼았겠는가.

지금 김정일은 대외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외긴장을 높여야 미국과 맞상대하자는 ‘전통적 시그널’이 통하게 되는 것이고, 또 그렇게 해서 주변국들로 하여금 ‘북의 대외긴장 모드’에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다. 김정일식 말투대로 하자면 ‘적들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외 긴장고조는 내부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교란시키기 위한 양동 전술의 측면이 있다.

북한의 권력내부 움직임 중 핵심은 김정일의 후계문제다. 북에서 들려오는 정보, 첩보, 소식, 소문들 중에 김정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 ‘새별장군의 활약상’이 적지 않다. ‘새별장군이 군 기강 확립을 주도하고 있다’는 소식도 그런 종류다.

더욱이 ‘충성의 당 세포’를 중심으로 장군님(김정일)에게 “후계자를 빨리 내세워야 한다”는 청원편지를 올리도록 하라는 당중앙위원회(중앙당)의 지시가 내려졌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그것은 지금 김정일이 3대 세습과 후계문제에 엄청난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충성의 당원들로 하여금 3대 세습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수면 아래에 있던 후계문제를 사실상 당 차원에서 수면 위로 부각시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지금 한국, 미국, 중국 정부가 관심을 집중해야 할 대목은 어차피 벼랑끝으로 갈 수밖에 없는 한반도 군사긴장 고조문제가 아니라 북한의 권력내부 문제일 것이다. 후계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그것이 권력 내부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지, 만약 김정운으로 후계의 무게중심이 쏠린다면 파장이 있을 것인지 또는 없을 것인지부터, 중장기적으로 3대 세습이 과연 어느 정도의 체제 내구력을 갖게 될 것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진단하는 작업에 돌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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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 때문에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있다는 소리는 정말 뭘 모르는 ‘북맹’(北盲)수준이나 다를 바 없다. 또 남북관계를 경색시킨 당사자는 금강산 여성 관광객을 뒤에서 총격할 때부터 시작해서 장거리 로켓 발사, 여기자 2명과 유씨 등을 억류한 북한당국이지, 한국이 아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책 때문에 남북관계가 경색됐다는 주장은 팩트(fact)부터 틀린 것이다.

하여튼, 최근 또다른 북한의 변화도 주목된다. 대남공작 부서를 노동당에서 국방위원회로 이관시키고 ‘정찰총국’으로 개편했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북한에서 ‘총(總)’자를 붙이는 경우는 ‘당 군 정에 있는 모든 유관 업무를 한꺼번에 다 모은 부서’에 붙인다. 김정일의 호위와 관련한 모든 업무를 모은 ‘호위총국’이 그 예다.

만약 그렇다면 인민군 정찰국도 국방위원회에 신설된 ‘정찰총국’에 통폐합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업무를 김정일과 함께 북한군 현대화의 기초를 놓은 오극렬이 맡았다고 한다. 이번 북한의 대남공작 기관 개편에서 북한이 KAL기 폭파(35호실), 미사일 밀수출(작전부) 등 테러·납치·밀수 업무를 맡아온 노동당 부서를 국방위원회에서 일괄 관장토록 한 것은 후계문제와도 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김정일은 장성택(국방위원), 최익규(당 선전부장), 오극렬(국방위원) 등 오랫동안 심복 노릇을 해오면서 거의 ‘피붙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전진 배치했다. 김정일은 이 사람들은 결코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이 역시 후계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또 이러한 일련의 작업이 김정일이 뇌중풍을 맞은 후에 나타난 변화라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최근 들어 김정일은 많이 서두르고 있는 것 같다. 또 2012년 안정된 후계체제 돌입을 위해 총체적인 국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첫째,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내부적으로 분열되지 않으면서 미국, 중국, 일본과의 협력관계를 광범위하게 구축하는 것이다. 특히 외교 안보 관련 사안을 비롯해서 중국과 지속적으로 협력관계를 확대해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작은 대북 성과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 정부 시기 대북 성과주의 때문에 불필요한 남남갈등과 대북정책의 비효율성을 노정했다.

대북정책은 작은 성과에 매달리지 않고, 문자 그대로 호시우보(虎視牛步)의 자세로 호랑이 눈으로 멀리, 정확하게 보면서 소걸음으로 가는 것이 맞다. 그렇게 해야 오류를 줄이고 효율적으로 갈 수 있다. 특히 현 시기는 ‘호시’(虎視)의 자세가 중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큰 걸음을 내디뎌야 할 시기다.

그러한 바탕 위에서 정부는 북한으로 하여금 대화의 장(국제회담, 남북회담)으로 나올 수 있도록 강력히 추동하는 한편 향후 대북정책에서 필요한 준비를 잘 해두어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청와대, 통일부, 외교부는 성과주의의 유혹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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