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 가를 `고비’..힐 방북 주목

연말 대선 열기 만큼이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도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이른바 ‘신고 담판’을 짓기 위해 3일 방북 길에 오르고 거의 같은 시각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은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 평화구축 문제 등을 협의하기 위해 방미길에 올랐다.

평양과 워싱턴에서의 논의 결과에 따라 불능화 시한으로 설정한 올해 말까지 북핵 6자회담 현안은 물론 한.미 양국간 미묘한 입장차가 상존하는 이른바 `종전선언을 위한 4자포럼’ 논의의 가닥이 잡힐 것으로 예상된다.

◇ 힐, 뭘 논의하나 = 5일까지 북한에 체류하는 힐 차관보는 영변 3대 핵시설의 불능화 상황을 시찰하는 것 외에는 북핵 신고 문제 논의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힐 차관보는 자신들의 핵개발 계획 포기에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 군부 인사를 포함, 고위급 인사들을 두루 만날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힐 차관보가 북한에서 다룰 핵심의제는 물론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관련 의혹을 신고과정에서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문제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제2차 핵위기의 단초가 된 UEP 의혹을 북한이 납득할만하게 규명해야 미국도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할 수 있음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소식통들은 힐 차관보가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의 자서전에 나오는 북한의 원심분리기 도입 관련 증언 등에 나타난 대로 UEP 필수 장비인 고강도 알루미늄관 수입 사실 등을 바탕으로 북측의 시인과 해명을 요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힐 차관보는 지난 1일 “북한이 UEP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이 문제를 돌파할 수 있으며 만약 감추려 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 뒤 “우리는 북이 (UEP와 관련) 무엇을 했는지 인정하고 무엇이 진행됐는지를 해명하고 관련 자재 등을 처분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추출된 플루토늄의 총량도 핵심현안에 속한다. 이번에 불능화되는 영변 5㎿ 원자로에서 추출된 플루토늄은 핵무기 재조원료가 되는 것으로, 핵실험까지 한 북한이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질이다.

북한이 신고할 플루토늄 총량이 얼마인 지, 그리고 신고한 량이 다른 참가국들의 평가치에 얼마나 근접하는 지가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잣대가 될 것으로 북핵 외교가는 평가하고 있다.

힐 차관보는 이밖에 미국 등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시리아로의 핵물질 이전 설에 대한 해명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 향후 시나리오 = 외교소식통들은 북한이 힐 차관보를 자신들의 심장부로 초청했다는 점을 감안, 북한의 태도 변화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북한측은 그동안 UEP 관련 의혹이나 핵 이전설 등에 대해 ‘없는 것을 있다고 할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묘한 시기에 힐 차관보를 부른 만큼 이를 계기로 ‘증거에 입각한’ 적극적 해명과 신고를 결심할 경우 6자회담의 순항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힐 차관보가 김계관 부상 뿐 아니라 UEP 해명 등에 매우 소극적인 군부 인사들과도 면담을 갖고 그들의 ‘협조’를 다짐받을 경우 우호적 기조는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측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와 관련, 추출된 플루토늄 총량은 물론 UEP 관련 의혹, 핵 이전 문제 등 과거 핵활동 전반이 신고서에 담기거나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해명이 전제돼야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등 북한에 주어질 안보적 조치가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힐 차관보와 북측의 협의가 긍정적인 결과를 낼 경우 6자 수석대표회담은 당초 의장국 중국이 각국에 통보한 대로 6일이나 하루 이틀 늦은 시일에 베이징에서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가능성이 낮기는 하지만 힐 차관보의 북한 체류기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이 전격적으로 이뤄질 개연성을 지속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하고 있지 않다고 힐 차관보가 밝혔지만 김 위원장이 사실상 ‘미국 정부의 특사’인 힐 차관보와 만나 보다 확실한 비핵화 의지를 확인해줄 경우 핵 협상 전반은 물론 북.미 관계 정상화 과정도 매우 빠른 속도로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대로 UEP 의혹에 대해 북한측이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거나 소극적인 해명에 나서 북.미가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사태는 심각해진다.

당장 6∼8일로 예정된 6자 수석대표 회담이 연기돼 연내 개최 마저 불투명해질 것으로 보이며 미국내 여론이 악화되면서 이른바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등도 기대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6자회담 국면이 부정적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한국 대선 정국과 이어지는 새 정부의 입각을 감안하면 한동안 과도기가 불가피할 것이란 점에서 6자회담이 상당기간 공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 백 실장 방미 = 힐 차관보와 같은 날 워싱턴으로 향한 백종천 안보실장은 현 정부의 임기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각종 한.미 현안을 점검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백 실장이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을 만나 한미동맹과 북핵 불능화 진전 과정, 6자회담 전망, 한반도 평화구축 등에 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눌 예정이라고 전했다.

특히 백 실장은 미국 측과 한반도 종전을 위한 4자 정상선언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국내적으로도 한동안 논란이 됐던 종전선언 문제는 이번 백 실장의 방미를 통해 가닥이 잡힐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측은 최근 서울을 다녀간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언급 등을 통해 북한이 이 문제에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음을 미측에 설명하고 반응을 타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핵 외교가의 분위기는 “무엇보다도 비핵화에 주력해야 할 미국의 입장에서 종전선언을 위한 4자 정상회담이 크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는 쪽이다.

다만 북한이 불능화는 물론 성실한 신고서 제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미국 조야를 ‘만족시킬 수준’이 될 경우 상황이 바뀔 가능성은 있다고 보고 있다.

외교소식통은 “의회를 포함한 미국 조야의 분위기는 2차 핵위기의 발단이 된 UEP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핵 협상 전반이 어려워질 가능성을 점치게 하고 있기 때문에 종전선언 문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거의 없을 것”이라면서 “이런 점에서 백실장의 방미는 종전선언 문제를 비핵화 뒤에 설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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