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내의 ‘세력균형’, 통일정책의 첫 단추

지난 2014년 7월 3, 4일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국빈 방문했다. 그는 방문 기간 중에 “한반도 내의 핵무기 개발을 확고히 반대한다”고 했으며, “한반도의 자주적인 평화통일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시 주석의 이번 방한이 관심을 끄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시 주석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전통적 우방국인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한 첫 지도자라는 것이다. 둘째, 시 주석은 최악의 한·일 관계 속에서 자신의 방한을 중국 봉쇄를 위한 한·미·일 안보협력 질서를 무디게 하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정세는 급변하고 있다. 한국은 기존의 미국 주도의 질서와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 주도의 질서 속에서 새로운 협력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 주석은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한국의 참여를 원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공개적으로 중국 주도의 금융 질서에 한국이 참여하는 것을 신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직면한 통일외교의 가장 큰 고민은 첨예한 미·중의 패권 다툼 속에서 양자택일의 압력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미·중의 눈치를 보며 모호한 전략으로 빠져나갈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한반도 통일을 위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보다 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전 글에서 밝힌 대로 서독은 적극적인 동구권 외교로 동서유럽의 ‘세력균형’을 도모하면서 통일에 우호적인 대외적 환경을 먼저 조성하였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1972년 동서기본조약을 시작으로 양독일 간에 교류협력의 관계를 만들어 갔다. 이와 같은 통일외교의 방법론은 지난 1990년대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과도 일맥상통한다. 1989년 미·소가 냉전 종식이 선포되자, 노태우 정부는 적극적인 대동구권 외교를 통해 1990년 9월 30일 ‘한·소 국교수립’과 1991년 8월 22일 ‘한·중 국교수립’을 체결하였다. 노태우 정부의 적극적인 대동구권 외교는 남북관계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1991년 12월 13일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되었고,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남북 UN 동시가입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20세기 초 안중근도 동양평화의 방법론으로 한중일 삼국의 ‘수평적 연대’를 통한 동서양의 ‘세력균형’을 제안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첫째, 안중근은 삼국이 모두 동등한 자주독립의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안중근은 삼국 중 어느 한 나라도 독립을 상실하게 되면 삼국제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둘째, 안중근은 삼국이 서로 공동의 이익을 위해 협력해야 함을 주장했다. 서양의 침략을 경계하면서 이들 중 러시아의 침략성에 대비하기 위해 삼국이 제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셋째, 안중근은 일본의 선도적 역할을 인정하였다. 동양평화를 위해 당시 문명이 가장 앞서 있는 일본이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명치유신으로 선진문명을 먼저 받아들인 일본과 한국과 청국의 국력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의 사례를 고려할 때 한반도의 통일정책의 첫 단추도 한반도 내에 존재하는 세력관계의 균형에서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때 한반도 내의 세력관계는 남북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난 1953년 7월 23일 정전협정 체결 이후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세력은 남북한과 미·중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결국 한반도의 긴장완화는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북·미 관계, 한·중 관계, 북·중 관계, 미·중 관계 등 모든 양자관계의 세력균형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한반도 내의 4개국이 세력균형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 한반도의 세력균형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남북한의 교류와 협력이 보장되는 조건이며, 현재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토대다.  

그동안 남북한은 한반도 통일을 위한 중요한 합의를 도출했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시작으로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선언’,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 등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사문화되었다. 이것은 양독일이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 체결 이후 경제, 문화, 언론, 인적교류, 보건환경 등에 관한 협정을 잘 지킨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였다. 남북 간의 합의가 지켜지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남북합의에 대한 강제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8일 박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이 지속가능한 통일정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남북한 합의에 대한 강제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모색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20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안중근이 한중일 삼국의 ‘수평적 연대’를 동양평화의 조건으로 제안했던 것처럼 21세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한반도 내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남북미중의 4개국의 수평적 연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난 1996년에 시도되었던 ‘4자회담’을 오늘의 한반도 사정에 맞게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남북합의의 구속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남북의 당사자 역할도 중요하지만 이를 보장하는 미중의 강력한 보장이 함께 뒤따라야 한다. 이와 같은 4자회담의 의미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형식은 ‘2+2 회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을 어떻게 ‘2+2 회담’으로 유도할 것이며, 어떻게 한반도 문제에 대한 4개국의 공통된 합의를 끌어 낼 것인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한·미·중의 삼각협력을 돈독히 하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한·미·중의 공동의 합의는 북한에게 매우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지난 2013년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과 대남 및 대미를 상대로 군사적 위협과 개성공단 폐쇄 등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북한을 대화모드로 돌려 놓은 것은 5월 한미 정상회담과 이어진 6월 한중 정상회담 그리고 미중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한·미·중의 삼국협력관계였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  

만약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온다면 ‘2+2 회담’의 조건은 마련된 것이다. 안중근이 삼국의 ‘수평적 연대’를 유지하기 위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했듯이 어렵게 형성된 ‘2+2 회담’이 지속되기 위해서도 역시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북한의 외교적 고립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북한의 외교적 고립을 해소하는 데 가장 중요한 상대는 바로 미국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안전과 존속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북핵 문제가 점차 악화되는 상황에서 지난 60년간 형성된 극심한 상호 불신은 대화를 통한 관계 진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 또한 더 이상 북미관계를 방치할 수만은 없다. 무엇보다 미국은 북한의 핵능력을 묶어둘 ‘현재’를 관리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미국이 내심 원하지 않아도 북미협상을 진전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둘째, 4개국이 ‘비핵화’라는 공동의 이익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는 데 가장 중요한 협력 상대는 중국이다.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자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로 인해 북핵 문제를 악화시킨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자국의 전략적 자산으로서 북한 체제의 안정도 중요하지만, 북핵 문제가 동북아의 안보 불안을 야기해 대중 봉쇄를 핵심으로 하는 미국의 ‘재균형(rebalancing) 전략’의 명분이 되는 현실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중국도 향후 북중 관계에서 ‘비핵화’를 핵심의제로 내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셋째, 한반도 문제에 대한 남북한의 주도적 역할을 미·중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미국의 태도변화를 통해 북한의 외교적 고립을 해소시켜 나가고, 중국의 태도변화를 통해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행동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관계의 진전이 중요하다. 즉 남북관계의 진전이 북미관계와 북중관계의 변화를 추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동안 우리가 제안했던 것보다 더 대담한 제안이 필요하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DMZ 세계평화공원’을 연결하는 새로운 남북 경제 협력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DMZ 세계평화공원을 통해 남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더 나아가 나진-하산 프로젝트로 시작된 남북한-시베리아-중국-중앙아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통해 북한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북한의 개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남북한 경제협력 방안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독일도 통일준비 과정에서 동서독의 합의뿐만 아니라 전승국 4개국의 동의를 매우 중요하게 인식했다. 이를 위해 독일은 ‘2+4회담’ 추진하여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가 독일통일을 찬성하도록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한반도가 통일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중요한 관문인 현재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정전협정의 당사자로서 미·중의 동의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따라서 ‘2+2회담’은 북한을 높은 수준의 대화로 끌어 낼 수 있는 수단이며, 미·중을 한반도 통일의 협조자로 만들기 위한 한반도 통일외교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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