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떠도는 ‘햇볕정책 분(粉)가루’를 걷어내라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물(物)에는 근본적인 것과 말단적인 것이 있고, 일에는 마침과 비롯함이 있나니 먼저하고 나중 할 바를 알면 곧 도에 가까운 것이다(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라는 구절이 있다.

즉 사물의 본말이 뒤집히면(本末顚倒) 사람은 편할 날이 없고 사회는 분열되며 국가는 존망의 위기에 빠지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대북정책에 대한 논의를 보면 여당이건 야당이건 본말을 알고 하는지, 아니 본말의 존재를 알고 있는지가 의심스럽다.

서로 체제가 다른 남과 북이 대결을 하건 대화를 하건 대북정책의 출발점은 곧 대한민국의 체제인 자유주의의 보호와 한반도 전체로의 신장(伸長)이며 이것이 바로 본(本)이다. 다른 어떤 가치도 이것보다 우선하지 않으며 그 이유는 바로 사상의 자유로 특징지워지는 자유주의가 다른 모든 가치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점이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민주화 세력의 이름으로” 봉건세습수령주의 옹호?

유감스럽게도 현재 한국의 친북좌파세력은 자유주의를 마치 일개 정책정도로, 특히 경제정책 방향의 하나인 ‘신자유주의’와 글자가 비슷하다는 생각에서 한국사회의 근본적 가치개념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이들이 최고의 가치로 격상시킨 것은 우습게도 좌파와는 원래 물과 기름과의 관계인 민족주의, 이른바 ‘우리민족끼리’라는 배타적이고 폐쇄지향적 ‘정서’이다.

이들은 남북 간의 ‘우리민족끼리’라는 정서적 공감대만 있으면 평화도 통일도 무조건 가능하며, 이 정서적 유대를 비판하는 모든 세력을 남북의 평화공존에 적대적인 ‘전쟁세력’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북의 인권을 비판해도 “전쟁하자는 것이냐?”고 윽박지른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친북좌파의 주적인 미국뿐 아니라, 유엔, 유럽공동체 등 전 세계를 향하여 봉건세습수령주의의 북한을 “민주화세력의 이름으로” 옹호해야 하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 이들에게 민주화는 남한에 국한되며, 이제는 남한 보수파의 도덕적 열등감을 자극하는 수단으로만 기능할 뿐이다.

평화란 지극히 중요한 가치이며 위정자는 필히 평화를 유지하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하고, 또 국민 역시 평화의 가치를 끝없이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평화의 유지가 그보다 더 상위가치인 자유주의 보다 우선할 수 없음은 자유주의가 붕괴된 사회의 평화는 전체주의 사회의 침묵, 즉 강제수용소와 굴락(Gulag)에 의해 유지되는 노예적 평화이며, 평화에 대한 사랑과 의지만으로는 결코 평화가 유지될 수 없음은 1938년 민주주의자인 영국수상 챔벌린과 파시스트 히틀러와의 뮌헨평화회담 이후 곧 발발한 2차대전 등,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바꿔 말해 자유주의의 정신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남북 간의 평화추구가 가능하며, 또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집단과 평화공존이 가능하려면 정상국가가 아닌 북한사회에 대한 비판과 조언이 당연시 되어야 하고, 만일 북한정권에 의해 평화가 유린될 시 무력사용을 하겠다는 국가의지는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그리고 한국의 친북좌파들은 남북 간의 정상적 대화 보다는 식량과 비료 그리고 공식, 비공식의 통로를 통해 돈을 대주면서 김정일 정권이 제공하는 각종 이벤트를 남북 간의 평화의 상징 혹은 북한의 개방으로 팔아왔다. 지난 10년간 남북교류의 과정을 조감해 본 사람이라면 북한이 얼마나 이 이벤트 팔기에 성공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적절하게 개혁개방을 위장하였고, 또 남한의 정권이 이에 얼마나 목을 메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지난 10년 남북 간의 이 변태적 관계가 ‘혁혁한’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우리 국민들은 친북좌파 정권들의 북한 퍼주기에도, 그리고 김정일이 연출하고 있는 재방, 삼방, 10방의 이벤트 프로그램에도 식상하였지만, 이른바 통일비용에 대한 근거 없고 과장된 선전으로 북한의 붕괴나 통일보다는 현 상태(status quo)를 유지하는 것을 더 바라게 되었다.

한국좌파의 감성적 ‘평화찬가’

이제 무능으로 대표되는 노무현 정권의 실정으로 정상적으로는 정권 연장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한국좌파가 안희정씨의 경우처럼 불법을 저지르며 남북정상회담에 목을 메는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도대체 임기 말이 다 된 대통령이 무엇을 약속하고 무엇을 시행할 수 있겠는가? 정상회담의 목적은 분명 남북평화가 오로지 좌파정권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으며, 보수세력의 집권은 곧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의미한다는 호소와 협박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 상태’ 유지를 바라는 국민들이 이 양과 늑대의 이중창 같은 이벤트에 공감하리라는 기대이다.

정책보다는 정서가, 논리보다는 감성이 승패를 좌지우지하는 선거판에서 한국좌파의 ‘평화찬가’가 먹혀들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아마도 야당으로 하여금 대북정책의 방향을 급격히 ‘현 상태’ 유지로 전환을 시도하게 된 동기일 것이다. 그러나 야당 스스로 친북좌파가 자화자찬하고 있는 이 ‘현 상태’가 얼마나 유지되기 힘든 상태인지 잘 알 것이다.

이른바 햇볕정책 10년에 북한은 핵무기를 10개나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만들었고, 북한의 민생에 대해서는 외부로부터 뜯어오는 것 이외에 그 어떤 국가재건 프로그램도 없는 상태가 바로 북한의 ‘현 상태’다. 자본주의 사회로부터의 원조를 빼돌리고 뇌물로 배를 불려 호의호식하는 북한의 엘리트들은 어이없게도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민초들에게 “시장경제란 빈익빈 부익부의 나쁜 체제”라며 이들의 생존기반인 시장의 매대를 뒤엎고 있다. 김정일이 자신의 권력을 세습시키려면 그 물질적 토대가 필요하나, 불행하게도 이 토대가 북한에는 전혀 없고 남쪽에 있다는 점, 따라서 김정일이 정권유지와 정권세습의 기반을 남한에서 찾으려고 할 것이라는 점 역시 분명한 것이다. 그것이 연방제를 통한 적화통일 시도이건 아니면 핵을 통한 협박이건 말이다.

확실한 점은 남한 국민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앞으로 현 상태를 한반도에서 유지하는 것은 무망하며, 그것은 바로 북한정권의 필요에 의해서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한반도의 상태가 바뀔 것인가? 이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미래의 특정 방향을 예측하기 보다는 미래의 모든 방향에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특히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의 대선주자들이 범하는 잘못 중의 하나가 바로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햇볕정책이란 간단히 요약하면 개혁개방의 유도가 역유도 당해온 과정이다. 또 북한의 개혁개방이란 김정일과 그 수하들이 생사를 걸고 결단해야 할 일이지, 한국의 대통령이 유도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남한은 북한이 개혁개방을 천명하고 도움을 요청할 때 개입해도 충분한 것이다.

따라서 대북정책의 관건은 그 본말(本末) 시종(始終) 선후(先後)를 밝히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수호와 신장이 바로 본(本)이고 남북 간의 각종 이벤트가 그 말(末)이다. 남한의 자유주의가 시작(始)이고 한반도 전체의 자유민주화가 그 끝(終)이다. 삶의 고통에 지친 북한주민을 돕는 것이 우선(先)이고 북한의 권력집단과의 친교가 나중(後)이다.

분(粉)바른 한국의 친북좌파가 평화에 대한 애틋한 정서를 자극하며 자유주의 세력을 전쟁세력으로 규정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가치의 중요성에서 공기나 물과 같이 된 자유주의를 옹호하고 재천명하는 것, 그리고 북한주민을 위한 실사구시(實事求是)에 있음을 진솔하게 그리고 감정에 치우지지 않으면서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햇볕정책이란 거대한 분가루를 한반도에서 걷어내고 현 상태의 실상을 직시하게 만드는 ‘올바른’ 대북정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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