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3대 의제 주목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갖는 3번째이자 통산 6번째이며, 워싱턴에서 열리는 것으로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의 14일 정상회담을 둘러싼 분위기가 무척 긴장돼 있다.

박정희-카터 서울 정상회담은 한국 인권문제가 쟁점이었고 오래된 일이므로 제외하더라도, 1995년 11월 김영삼-클린턴 마닐라 정상회담을 비롯해 2001년 김대중(金大中) 당시 대통령의 마지막 한미정상회담이자 새로 당선된 부시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에 이어 노무현-부시간 정상회담들은 모두 북한 문제로 인해 회담을 전후해 두 나라 정상간 이견과 한미동맹 ‘균열’이 부각됐다.

시간의 기억 침식 작용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정상회담을 둘러싼 긴장이 여느 회담때보다 높아보이는 것은, 북핵 문제외에도 한미 군사동맹 재조정의 마지막 일정인 전시 작전통제권과 한미동맹의 미래상에 한축을 차지할 자유무역협정(FTA) 문제 등 양국 동맹관계의 기반문제들이 두 정상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리처드 부시 동북아정책연구센터 소장과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조지타운대 교수 등 미국내 오랜 한국 전문가들도 최근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 관한 기고문을 각각 쓰면서 두 정상이 한미 동맹의 재조정 작업이 동맹 강화로 결론을 맺기 위해 지혜롭게 다뤄야 할 문제들로 이들 문제를 특히 강조했다.

북핵 문제와 관련, 당초 회담 추진 사실이 발표됐을 때 일각에선 어차피 북핵 문제에 대한 합의가 어려운 상황임을 들어 위험성이 큰 회담이라는 분석이 나왔었다.

그러나 두 정상이 만나 북한을 다루는 법에 관해 기존의 이견을 재확인하는 데 그치더라도, 이번 회담없이 지나갈 경우 북핵 이견과 양국 동맹관계에 대한 인식에 미칠 파장을 예상할 때, 만나는 게 안 만나는 것보다 낫다는 게 양국 정부의 판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양국 정상의 대북 발언과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행보는 각각 대북 외교 노력 강화와 제재 강화 쪽으로 접점이 더 벌어지는 형국이기 때문에 북핵 문제에 대한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는 예상은 거의 없다.

부시 대통령은 9.11 5주년 관련 각종 연설에서, 노 대통령은 미국으로 오는 길에 각각 자신의 솔직한 입장을 밝힌 만큼, 회담에선 두 정상이 ‘북핵 문제의 6자회담을 통한 외교적 해결’이라는 대원칙을 재확인하고, 북한의 핵실험 등 상황 악화 행위 가능성에 대해 공동 경고를 할 수 있다면 회담 성과로 간주될 분위기다.

미 백악관 고위관계자는 12일 한미정상회담에 관한 사전 브리핑에서 6자회담을 통한 해결이라는 미국의 입장이 확고함을 거듭 강조했고, 한국측 외교소식통도 6자회담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상징이므로 이의 실패를 자인하는 셈이 되는 “포기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북핵 문제의 근본 책임이 미국이 아니라 북한에 있다는 점에 노 대통령이 동의해주기를 바라는 미 행정부의 입장은 여러 고위관계자들의 언급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의 경우 양국 정부관계자들은 두 정상이 한미 군사동맹 재조정 작업이 이룬 그동안의 성과를 재확인하는 과정에서 이에 관해 언급할 가능성이 있으나, 한미 국방 당국간 이견이 있는 이양시기에 관해선 구체적인 논의없이 군사 당국에 맡길 것으로 예상했다.

미 관계자는 이날 “한국 국내 상황을 감안하면 노 대통령의 염두에 이 문제가 우선 자리잡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두 정상이 이 문제에 관해 얘기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구체적인 이양시기에 관한 미 정부의 입장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며, 국방부와 국가안전보장회의간 협의를 통해 미 정부 입장을 정한 뒤 양국 군사 당국이 논의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한국측 외교소식통도 이양 방침 자체는 미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확정됐지만, 이양시기에 관해선 “약간 다른 의견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해 2009년과 2012년 사이에서 유동적임을 시사했다.

이양 방침에 대해선 피터 로드먼 미 국방부 차관보가 최근 방문한 황진하(黃震夏.한나라) 의원을 면담한 자리에 노무현 정부에 대한 감정차원에서 결정한 게 아니라 검토한 결과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민간전문가들 사이에선 한미 군사동맹의 이상징후의 하나로 파악하는 의견이 더 많지만, 이날 백악관 관계자는 전작권 이양도 한미동맹의 ‘진화와 성숙’의 한 면으로 표현했다.

한미 정상도 이번 회담에서 전작권 문제를 주한미군 기지의 통폐합과 재배치, 용산기지의 평택이전 등 군사동맹 재조정의 일환으로 규정하고 미국의 대한 방위공약을 재확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한국 전문가들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의 확고한 입장 표명을 기대하는 새로운 문제는 FTA 관철 의지.

한미 FTA협상 미국측 수석대표인 웬디 커틀러 무역대표보도 최근 전화회견에서 양국 정상이 FTA 문제를 중요 의제로 다룰 것으로 예상하면서 자신보다 “고위급” 수준에서 지난 3차례의 협상 결과 나타난 쟁점들에 대한 돌파구가 열릴 것을 기대했다.

미 정부와 의회, 전문가들 사이에서 노 대통령이 국내 반대를 무릅쓰고 FTA 협상을 주도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최근 열린우리당과 일반여론에서 반대론이 높아지는 여론조사 결과와 강력한 반대시위를 접함에 따라 과연 노 대통령이 협상 타결을 위해 주요 쟁점에 관해 양보하면서 관철 의지가 있는가 물음이 나오고 있다.

스타인버그 교수는 한미 FTA를 양국간 동맹을 다시 활성화시킬 새로운 동력으로 규정하고 양국 정상 모두에게 각각 자국내 반대세력을 극복하는 데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을 투입할 것을 주문했다.

한편 이번 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선언, 언론발표문 등이 계획되지 않은 사실이 국내에서 크게 부각된 것도 이번 회담을 둘러싼 긴장된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에 대해 백악관 고위관계자는 사전 브리핑에서 지난해 11월 경주 정상회담 때 공동선언이 나온 점을 상기시키며, “불과 몇개월 전에 내가 작성에 직접 참여한 커다란 공동성명이 있었고, 우리는 이를 북한문제와 동맹문제에 관한 틀을 매우 명백히 제시한 아주 중요한 성명이라고 생각”해 “또 다른 성명을 낼 필요가 없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그는 농을 곁들여 “우리가 공들여 만든 경주 선언문을 아무도 기억못하는 것 같은데, 이번 회담에서 공동성명이 없는 것은 경주선언을 다시 읽어보라는 뜻”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노 대통령을 면담하는 게 추가적인 대북 금융제재와 관련있느냐는 질문에도 이 관계자는 폴슨 장관이 최근 임명된 장관으로서 노 대통령이 14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13일 일정이 빈 기회에 예방하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엔 한국측에서 폴슨 장관에 대한 관심을 먼저 보인 것처럼 말했으나, 어느 쪽이 먼저 청했는지를 확인하는 질문엔 “솔직히 모르지만, 누가 먼저냐는 중요치 않다”고 말했다.

외교가에선 로버트 졸릭 전 국무부 부장관이 중국측과 고위전략대화를 정기적으로 가지면서 미국의 장기적인 대중 전략을 총괄해오다 사임한 뒤, 폴슨 장관이 중국통으로서 졸릭 전 부장관의 역할을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부여받은 점을 지적, 노 대통령과 대화에서 무역, 환율 등 경제문제와 함께 ‘중국’이 주요 화두가 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미 재무장관이 한국 대통령을 30여분간 예방하는 자리에서 대북 금융제재를 주문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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