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부 교체사이클 관심

“묘한 게임을 하는 듯하다.”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5일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 한국과 미국의 정부 교체 시기에 얽힌 미묘한 분위기를 화두에 올렸다.

세계 최강 미국의 정부가 어떤 성향이냐는 한반도에 사는 한국인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정부 수립 60년 만에 세계 중견국가로 발돋움한 한국의 집권세력이 미국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느냐도 미국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된다.

이렇게 볼 때 최소한 1993년 김영삼 정부와 미국의 클린턴 정부 출범 이후 한국과 미국의 정부 교체 주기는 묘한 점이 있다.

미국의 민주당 클린턴 정부가 북.미 직접 협상을 전개할 때 보수 성향의 김영삼 정부가 ‘핵을 가진 자와 악수하지 않겠다’며 협상 공간에서 스스로 이탈했다.

이 때문에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미국과만 협상하고 한국을 봉쇄한다) 전술이 한동안 구사됐으며 제네바 북미협상이 타결된 뒤 한국 정부는 경수로 건설을 위한 ‘돈줄 역할’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런가 하면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클린턴 정부 말기 북.미간 최고위급 지도자의 교환방문 등으로 조성된 2000년의 ‘통큰 협상’ 분위기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주도하는 2001년 부시 정부 출범 이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이후 ‘미국에 할말은 하겠다’는 노무현 정부가 2003년 들어서면서 한국과 미국은 다시 갈등 기류에 휩싸였으나 부시 정부가 2기에 접어들면서 협상을 통한 북한 핵문제 해결 기조를 분명히 하면서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2007년 대선에서 보수성향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서 한국과 미국은 모두 정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게 됐다. 그 결과 2008년 4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21세기 전략동맹을 선언하는 ‘관계의 격상’을 현실화했다.

그러나 다시 미국의 대선에서 민주당의 오바마 후보가 당선됐다. 불과 1년만에 이명박 정부는 새로운 미국 정부와 관계설정을 다시 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난날의 경험을 토대로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하다”고 주문하고 있다.

특히 오바마 당선인이 대북 협상에서 유연한 자세를 보이며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큰 만큼 한국 정부도 명분을 지키면서 한국의 역할과 위상을 확보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과거의 사례에서 보듯 한국 정부가 자칫 주요 외교흐름에서 소외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연세대 문정인 교수는 “북.미 관계가 개선되는데 남북관계가 안움직인다고 과거 김영삼 정부 때처럼 해서는 안 된다”면서 “그렇다고 미국이 하는대로 따라가면 국내적으로 엄청난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신기욱 교수도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는데 맞춰 한국 정부도 변화된 상황에 적절한 외교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면서 “북한과 미국 관계의 흐름을 정밀하게 분석하면서 한반도 정세의 흐름을 주도하는 능동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민주당 오바마 당선인의 이념적 성향이 과거 민주당에 비해 ‘보수적 색채’가 결합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공화당의 보수인사들까지 아우르는 이른바 ‘오바마콘(오바마식 보수주의)’이 새 정부의 주축 세력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민주당 오바마 캠프의 외교안보 참모들은 오래전부터 친분을 맺어온 인사들로, 정서적으로도 매우 가깝다”면서 “한미 공조는 앞으로도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특히 과거 클린턴 시절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와 노하우가 축적된 만큼 변화된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경우 정부 교체기의 미묘한 분위기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