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유해발굴 현장..”미국의 힘은 JPAC서”

18일 오후 강원도 화천군 풍산리 야산 기슭. 5평 남짓한 흙구덩이에서 6명의 한국과 미국 장병들이 뭔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3명은 곡괭이로 땅을 열심히 그러나 조심스럽게 파내고 있었고 나머지 3명은 파헤쳐진 흙을 삽으로 떠 양동이에 담아내는 작업을 반복했다.

햇볕 가림막 하나 없는 땡볕 아래에서 팔을 걷어붙인 이들의 얼굴에선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경외감마저 들 정도로 비장한 표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옆에선 다른 한.미 장병들이 넘겨받은 흙더미 속에서 보석이라도 찾듯이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물이 촘촘한 채에 흙을 부어가며 쉬지 않고 흔들어댔다.

6.25전쟁 당시 혈맹인 한국을 구하려고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를 하다 전사한 이름 모를 미군의 유해를 찾기 위한 현장으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미 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JPAC)가 합동으로 본격적인 미군 유해발굴에 나선 것이다.

이곳 화천 지역은 1951년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과 치열한 격전을 치러 양측 모두 수많은 사상자를 낸 곳이다.

뜨거운 햇볕과 지열 속에 갇혀 끊임없이 흙을 파고 채로 걸러내는 작업을 반복했지만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아 오히려 취재진이 미안할 정도였다.

그러자 이번 JPAC 발굴팀의 지휘를 맡은 법의학 인류학자인 제이 실버스턴 박사가 검은 `007가방’을 쑥 내밀었다. 지난 며칠간 발굴했던 뼛조각과 유품 등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가운데 소뼈로 판명난 부분도 있었지만 사람 손가락의 일부로 보이는 3~4조각의 뼛조각도 포함돼 있었다.

실버스턴 박사는 “아직 이 뼛조각이 무엇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신중하게 말했지만 국방부 유해발굴단 관계자는 “너무 작아 확실치는 않지만 손가락 뼈의 일부일 것이라는 의견이 발굴팀에서 나왔었다”고 귀띔했다.

그 역시 “이는 시각적인 추정에 불과하다”는 단서를 잊지 않았다.

만일 이 뼛조각이 손가락뼈의 일부이고, 그것도 전사한 미군의 것이라면 한.미가 합동 유해발굴을 하면서 처음으로 미군 유해를 발굴하는 개가를 올리는 셈이 된다.

이 같은 추정에 힘을 실어주는 유품들도 나왔다. 뼛조각이 발견된 바로 옆에서 반으로 뚝 부러진 만년필이 나온 것이다. 만년필에는 `PARKER USA’라는 문구가 뚜렷했다. 당시 `파커’ 만년필은 국내에서 거의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번 발굴작업을 사실상 총지휘하고 있는 국방부 유해발굴사업단장인 박신한 육군 대령은 “6.25 전쟁 당시 군인이 가족과 연락하는 방법은 편지가 유일해 만년필을 소지하고 있던 장병들이 많았고, 국군과 중공군, 북한군 유해에서도 만년필이 종종 나오긴 하지만 파커 만년필이 나온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발굴된 뼛조각이 미군 것이라면 그가 소지했던 유품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몇 발의 탄피와 탄두가 나왔고, 거기에는 생산년도인 `1944′ `1951’이란 숫자가 찍혀 있었다. 6.25 전쟁터라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넓디넓은 화천 전투지역에서 50평 남짓한 이곳에 울타리를 치고 발굴작업을 하는 것은 하나의 제보가 발단이 됐다. 6.25 전쟁 때 여기에 살았다던 이모(75)씨가 당시 마을 주민들이 미군 유해를 이곳에 묻었다는 말을 선친에게서 들었다는 제보였다.

박 단장은 “유해의 80~90%는 전투현장에서 전사해 고지 부근에서 발견되지만 이번 제보처럼 10~20%는 마을 사람들이 생활터전에 묻어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뼛조각이 미군의 것인지를 확인하려면 한.미가 합동으로 감식을 벌이거나 미국 본토로 가지고 가 정밀 DNA 검사를 거쳐야 한다.

실버스턴 박사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확인 가능하며 2주에서 6개월이면 된다”고 말했다.

발굴작업은 뼛조각 하나를 발견하는 것으로 끝나진 않는다. 일단 파놓은 5평가량의 구덩이에서 이런 단서가 나오면 주변을 조금씩 확장하면서 발굴지를 넓힌다. 작은 뼛조각이 나왔기 때문에 더 큰 단서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을 박 단장은 “1%를 100%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했다. 미약한 단서를 확보하면 발굴지를 넓혀간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작은 단서라도 유품과 대조해 반드시 신원을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JPAC의 의지와 시스템에 대한 부러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정작 부러워하는 것은 이것이 아니었다.

“미국은 한국을 비롯해 미군이 전사한 곳은 어디든지 발굴을 하지만 한번 파견에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도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할 때가 잦아요. 그래서 한번은 `그렇게 빈손으로 가면 문책당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국가가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을 국민이 알아주는 것은 돈으로 환산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발굴팀의 미측 지휘관인 마크 웰치 대위는 “이번 발굴은 작년 한미간 유해발굴 협력 양해각서 체결 뒤 첫 합동작업으로, 발견된 유품을 가족에게 드리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당당히 말했다.

미국이 해외에서 국익을 위해 전사한 자국 군인의 유해를 한 구라도 찾기 위해 예산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 현장으로, “미국의 힘은 바로 JPAC에서 나온다”는 우리 군 관계자의 말이 귓가를 맴돌던 하루였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