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북핵 ‘보폭맞추기’..先비핵화 유지

이명박 대통령과 북한 조문단의 23일 면담은 결과적으로 북핵 해법에 대한 한.미간의 `코드일치’를 재확인하는 동시에 북한의 계속되는 평화공세 흐름에 일정한 제동을 거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를 새로 시작하자”는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유화 메시지에 대해 이 대통령이 “일관되고 확고한 대북 원칙”을 강조하며 분명한 선을 긋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구체적 언급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비핵화에 대한 확약 없이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은 어렵다는 확실한 시그널을 보냈다는 게 정부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한 소식통은 “북핵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은 완곡한 어법이었지만 북한이 지금처럼 핵을 가지고 가면 안 된다는 취지였다”며 “우리가 얘기하는 `비핵.개방 3000’은 핵 포기가 반드시 전제조건이라기보다는 비핵화와 대북지원이 함께 이뤄지는 과정상의 의미가 크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이후 대북 제재와 대화의 기류가 엇갈려 나오고 있는 상황 속에서 북핵 사태의 전개방향에 의미있는 방향타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외교가는 평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최근 잇따르는 북한의 평화공세에 흔들리지 않고 유엔 1874호 결의에 따른 제재기조를 유지하는 쪽으로 한.미 양국의 `주파수’가 맞춰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게 관측통들의 시각이다.

클린턴 방북, 여기자 석방, 현대아산 근로자 석방, 유엔주재 북한 공사의 미국 서부방문, 북측 조문단의 방남 등 일련의 평화 제스처들이 `인도주의적’ 차원의 의미를 띠고는 있지만 결국 북핵 해결이라는 본질과는 무관한 사안들이라는데 양국 외교당국이 공감대를 구축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그동안 미국 국무부가 북한의 평화공세에 대해 “주변적 조치들(marginal steps)”이라고 평가절하하고 나온 것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위 소식통은 “결국 한.미 양국이 일관되게 요구해온 비가역적 비핵화 요구에 대해서는 북한이 한발짝도 나아가지 않았다”며 “제재를 완화할 아무런 이유도, 근거도 찾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이뤄지는 미국 대북제재팀의 방한은 정부의 이 같은 스탠스와 맞물려 긴밀한 한.미공조를 재확인하는 또 다른 모멘텀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22일 저녁 우리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위성락 평화교섭본부장과 미국 조문사절단의 일원으로 서울을 찾은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별도의 회동을 갖고 “양국의 대응기조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물론 양국의 공조전선에 미묘한 기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정은 현대회장과 북측 아태위가 합의한 금강산 관광재개와 개성공단 활성화 조치가 유엔 제재결의와 배치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보인다는 일각의 지적 때문이다.

그러나 한.미 양국은 큰 틀의 압박기조는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 두 사업을 `예외’로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한 고위소식통은 “두 사업을 명시적으로 규제하는 조항이 유엔결의에는 없을 뿐만 아니라 향후 대북 대응에 있어 우리 쪽에서 `레버리지(지렛대)’를 마련해둘 필요가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한.미의 이 같은 압박기조는 6자회담이라는 `출구’를 전제로 하고 있다. 제재를 계속해 나가되 대화의 문을 열어 놓음으로써 북한에 6자회담의 복귀를 압박해나가는 기조다.

다만 6자회담 복귀는 단순히 `대화’의 전제조건이고 6자 틀내의 북.미간 `협상’이 현실화되려면 북한의 보다 분명한 의지표명이 필요하다는 게 외교 당국자들의 강조점이다.

한 외교당국자는 “예전과는 다르다. 마냥 6자회담 복귀만을 기다리지는 않는다”며 “북한이 비가역적 비핵화에 대해 확실한 태도 표명이 있어야 실질적 협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주목할 대목은 북한의 대응이다. 북한은 당초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분위기를 띄운 뒤 북.미간 담판 쪽으로 국면전환을 시도하려는 전략이었던 것으로 분석되지만 예상보다 단호한 한.미의 입장표명으로 인해 분위기가 여의치 않음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평화공세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압박 흐름이 지속될 경우 북한으로서는 중국 등의 중재를 통해 `변형된 형태의 6자회담’에 참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으로서는 더이상의 강경대응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알고 있다”며 “결국 북한이 어떤 형태와 수순으로 6자회담의 틀로 복귀하느냐가 숙제”라고 말했다.

외교가에서는 벌써부터 북.미 대화 또는 북.미.중 대화를 거쳐 6자회담을 갖거나 아니면 5자회담이 진행되는 등 협상의 다양한 조합과 구상이 거론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국과 북한이 어떤 조합의 6자회담 틀로 절충점을 찾느냐가 향후 북핵 논의의 실질적 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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