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외교장관 연쇄 회담..납치문제 고리 풀리나

“6자회담은 물론 남북관계의 진전 상황과 어울리는 의미있는 만남으로 평가된다.”

제19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합동각료회의가 진행중인 호주 시드니에서 6일 오후 잇따라 진행된 한.미, 한.일 외교장관 회담의 성과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7일 ‘시의성있는 만남’이라고 강조했다.

우선 지난 1~2일 제네바에서 열린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회의에서 ‘연내 핵시설 불능화’를 전제로 북한과 미국이 ‘중요한 합의’를 한 직후 3국의 외교장관들이 논의의 장을 마련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번 제네바 합의는 `방코델타아시아(BDA) 암초’에 걸려있던 6자회담을 복원시키고 ‘비핵화 1단계’의 해법을 사실상 이끌어낸 지난 1월의 `북.미 베를린 합의’에 버금가는 내용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북한과 미국이 `연내’라는 시한을 정해놓고 ‘비핵화와 관계정상화’ 트랙을 매우 빨리 가동시키기로 한 것은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변수에 해당한다.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북한의 협상의지가 과연 어떤 것인 지, 그리고 전체 6자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면밀히 분석해야 하는 시점이다. 게다가 다음달 초 평양에서 열릴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의중 파악이 시급한 실정이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간 6일 회담에서 제네바 회의에 대한 성과에 대한 평가를 나누면서 향후 6자회담의 추진일정 등을 논의한 것은 이런 측면에서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시드니 국제회의장에서 오후 1시(한국시간)부터 50분간 회담한 두 사람은 일단 제네바 회의가 성과가 있었으며 특히 한반도 비핵화에 긍정적 모멘텀이 조성됐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두 사람은 또 차기 6자회담 본회의가 9월 중에는 개최돼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다음달 중에는 6자 외무장관 회담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공유했다. 특히 두 장관은 다음달 6자 외무장관 회담이 개최되면 9월 6자회담 본회의에서 마련할 비핵화 다음 단계(2단계) 로드맵을 승인하기를 기대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는 게 회담에 배석한 당국자들의 전언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음달 초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이 6자회담과 선순환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는데도 뜻을 같이했다.

이렇게 본다면 한.미 양국 외교수장들은 제네바 합의의 모멘텀을 최대한 살려 손에 잡히는 비핵화의 진전을 이뤄야 한다는 인식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이달 중 열릴 것으로 보이는 6자회담 본회의의 결과에 북핵 외교가의 관심이 쏠린다.

고려해야 할 변수는 이른바 일본인 납북문제다. 현재 일본은 국내 정치적 요인 등으로 이 문제에 사실상 ‘모든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2.13합의 도출 때에도 이 문제를 거론하며 끝내 대북 에너지 지원에 동의하지 않은 일본이다. 외교가의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납치문제에 집착하는 것은 `아베 정권’이 사실상 이 문제를 계기로 집권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어쩔 수없는 선택으로 외교가는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이 제네바에서 ‘과감한 빅딜’을 하기로 사실상 합의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일본으로서도 이 문제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빗장을 풀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부닥치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송민순 장관은 지난 5일 저녁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현안으로 부각된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와 관련, 일본이 ‘조건’으로 제시하려는 자국인 납북문제에 대해 “그것이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에 결정적 장애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일본 측의 반응도 송 장관의 진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6일 송 장관과 대면한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일본 외상은 6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북.일 관계개선 실무그룹회의가 “좋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마치무라 외상은 특히 일본 정부도 북.일 관계정상화 실무그룹회의 등을 통해 납치문제와 과거사 문제 등 제반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몽골 회의의 결과가 전해진 이날 밤 늦게 다시 기자들과 만나 “이틀간 진행된 북.일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회의에서 비록 구체적인 진전은 없었지만 앞으로 해결될 수 있는 토대를 닦았다”고 긍정 평가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사뭇 달라진 일본 측의 반응을 엿보게 한다.

외교 소식통들은 현재의 상황을 종합할 때 미국이 정치적 결단을 내리고 일본이 양해하면 연내 핵시설 불능화의 ‘상응조치’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가 가능할 것이라는 적극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런 관측을 토대로 할 때 6자회담 본회의에서는 2.13합의에 따라 핵시설 폐쇄(1단계)에 이은 2단계 조치인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신고와 핵시설 불능화에 대한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편, 마치무라 외상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이뤄진 한.일 외무장관 회담은 ‘마치무라 변수’ 때문에 외교가의 관심을 모았다.

2005년에도 외상이었던 그는 참의원 외교방위 위원회에 출석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과 독일을 비교하며 일본의 역사인식을 비판한 것에 대해 ‘단순히 독일과 비교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고 반론한 데 이어 지난 5월에는 워싱턴에서 가진 강연에서 “한.일관계가 급속하게 좋아지기는 어렵다. 나로서는 ‘포스트 노무현’에 기대하고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따라서 과연 이날 한일외무장관 회담이 어떤 분위기에서 진행될 지가 외교가의 관심을 모았다. 일본 정계 최대 계파인 ‘마치무라파’의 수장이기도 한 그의 태도가 향후 한.일 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마치무라 외상이 과거 한일의원연맹에서 활동해온 점을 강조하는 등 한.일관계 개선에 큰 의욕을 과시했다”면서 “이에 따라 첫 공식 회담임에도 매우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회담이 진행됐으며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회담은 약속된 30분을 훌쩍 넘겨 1시간 이상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6자회담과 관련된 일본의 입장이 미묘하게 바뀌는 상황이어서 더욱 회담 분위기가 좋았다는 후문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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