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이제는 합의된 公約 이행 중요하다

작금의 한미동맹은 군사동맹, 경제동맹을 넘어 양국이 글로벌 파트너로서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으로 격상됐다. 지난 6월14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제 2차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2+2 회담)’에서는 2010년 열린 제1차 회의와 달리 한반도 문제뿐 아니라 동북아 지역 및 세계 현안 등 양국의 주요 관심사가 광범위하게 논의됨으로써 ‘포괄적 전략동맹’의 대화채널로 발전됐다.

냉전 시대 한미동맹은 군사동맹의 성격이 짙었으나 탈냉전으로 접어들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포괄적 동맹의 특성을 띠어가는 것으로 진화해 온 것이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미래가 온통 장밋빛으로 전망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동맹 관계의 유지를 가능케 해주는 관념의 공유가 전제돼야 하며, 그렇지 못했을 경우 양국 관계의 괴리(혹은 갈등)는 과거 박정희 시대처럼 나타날 수 있다.
      
박정희 시대 전체를 두고 생각할 때 미국 관념의 중요성은 결코 무시될 수 없었다. 박정희 시대는 세계사의 흐름에서 봤을 때 냉전 시기였다. 냉전적 환경 속에서 양국은 반공주의라는 관념을 공유하며 집합(集合)적인 정체성을 형성했다. 그러나 데탕트라는 관념의 등장은 양국의 집합적 정체성을 위협했다.

미국의 냉전적 관념에서 봤을 때 한미관계의 성립조건은 자국의 대(對) 공산권 봉쇄 의지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었다. 미국에게 있어 군사적 봉쇄를 통한 ‘반공’이라는 관념의 공유는 한미 군사동맹의 성립을 위한 가장 큰 전제였던 것이다. 한국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 본토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던 일본을 방위하는 반공 전략기지로서의 가치가 부여됐다.

미국에 의해 한국이 이 같은 의미를 부여받는다고 했을 때 미국의 관념에서 군사적 봉쇄 의지가 희석되면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은 그에 비례하여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양국의 집합적 정체성에는 균열이 생기고 관념의 괴리로 인해 양국은 우호관계라는 정상에서 일탈하게 됐던 것이다. 데탕트 시대의 한미관계가 바로 그랬다.

반공에서 데탕트, 그 후에는 인권이라는 관념이 미국에게 순차적으로 중요한 가치로 등장하면서 미국은 한국에 자국의 관념을 강제하며 한국의 정체성 변화까지 강제하려 했다. 미국이 관념의 관철 수단으로 동원했던 주한미군 관련 쟁점들은 박정희 시대의 시원(始原)적 시점부터 부단하 이어져온 것들이었다.


주한미군 조정을 둘러싼 양국의 협상은 현존하고 있는 한미간 군사관계에 있어 최대 쟁점이다. 이것은 박정희 시대를 관통하여 존재하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한국에 학습효과를 체득시켰을 뿐 아니라 미국의 정체성에 대한 한국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탈냉전의 시기를 맞은 오늘날에도 미국의 관념은 변화하고 있다. 그것은 과거 시기 지상과제이던 ‘반공주의’에서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보다 이상적인 것으로 변모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주적(主敵) 개념도 과거의 공산주의 국가들로부터 비민주적이고 권위적인 독재국가들로 옮아갔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여전히 공산국가 북한이 한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탈냉전 시기에 미국은 자국 관념의 변화에 따라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확산을 지상과제로 내세우고 있는데 한반도에서는 냉전 시기 대치 구도가 지속됨으로 인해 한국은 과거와 동일한 안보 위협을 경험하고 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미국의 변화된 관념 기준에서도 한국의 주적인 북한은 여전히 미국의 주적 범주에 포함된다는 점이다.

관념의 괴리가 과거 시기 불편한 관계를 주조했던 중요한 원인이었다는 점을 교훈삼아 양국은 바람직한 관계의 정립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관념의 이격도(離隔度)를 축소시키기 위한 양국 공동의 의지와 실천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말보다 제도적 차원에서 양국의 의지가 구현돼야 한다. 과거 시기 양국은 공식적인 제도의 장에서 제시된 미국 공약의 신뢰성 문제로 많은 논란과 마찰을 빚었었다.

공약이란 민감한 개념이다. 공약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개념도 아니고, 상황에 따라서는 공약 문구의 해석이 달라지기도 한다. 공약은 제도화가 결여될 때 말 그대로 공약(空約)이 될 수도 있는 한계를 지닌 것이다. 박정희 시대에 미국은 한국에 방위공약을 제시함에 있어 이 같은 공약 개념의 유동성을 잘 활용했던 반면, 한국은 그런 미국의 신뢰성과 동맹국으로서의 정체성에 의혹을 품으며 자주 배신감을 느꼈다.

미래의 바람직한 한미관계를 위해서는 공약에 대한 양국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 공약이 전제하고 있는 자국의 이익에 대한 고려와 상황적 가변성으로 인해 공약에 대한 무용성이 양국의 인식에 지배적으로 확산된다면 한미동맹이라는 제도 자체가 근본적인 수술대 위에 올라서는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다.


양국은 동맹의 유지가 그것을 폐기하는 상황보다는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된다는 전제 하에 상대방에 대한 관용과 이해의 도량을 지닐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양국은 상대방에게 공약준수 의무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자국의 공약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려는 의지를 먼저 실천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최근 제임스 서먼 한미연합사령관이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이 전환되더라도 한미연합사를 존속시키고 한국군이 사령관에 보임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과 관련하여 미국의 對 남한 방위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풀이되는데, 이후 상황의 변화로 인해 이 같은 제안이 번복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양국 정권의 성향에 따라 한미관계가 오락가락한다면 양국이 상대에게 행하는 공약은 말 그대로 공약(空約)이 되고 말 것이며 이는 북한에게도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양국의 공약에 대한 태도 변화는 양국 간 신뢰의 증가로 이어지고 신뢰의 축적은 바람직한 한미관계를 위한 중요한 전제가 된다. 양국 간에 상대방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구축되고 신뢰가 축적된다면 양국 관념의 다름의 차이(difference of difference)도 상대방에 의해 이해되고 수용될 수 있는 관용의 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정체성과 관념의 상호이해에 기반한 관념 간극의 조정이야말로 바람직한 한미관계의 정립을 위한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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