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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대선후보들이 통일외교 정책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북한은 김정일 개인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수령절대주의 사회다. 그래서 북한 문제와 대북정책의 핵심은 김정일 정권에 대한 입장과 대응이다. 후보들 사이에 수많은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갔지만, 아쉽게도 김정일 정권에 대한 또렷한 입장과 대응책 없이, 다양한 현안에 대한 단순 처방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쳤다.
아쉬운대로 후보들의 발언 속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난 김정일 정권에 대한 인식은 엿볼 수 있었다. 이명박 후보는 “리비아의 가다피 원수도 바뀌었는데 김정일도 바꿔놓겠다”고 했다. 박근혜 후보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반드시 만들겠다”고 했다. 김정일 정권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과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후보들이 바라는 대로 김정일 정권이 스스로 근본적 변화를 결심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온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북한의 인권과 평화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것이고, 한반도 통일의 대장정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 국민 모두가 바라는 일이며, 세계가 원하는 일이며, 누구보다 북한 주민이 간절히 염원하는 일이다.
문제는 김정일 정권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핵을 포기하고 개혁 개방하는 것이 북한 발전의 길이라는 사실을 김정일 정권이 왜 모르겠는가? 남한과 자유롭게 왕래 교류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의 길이라는 것도 김정일 정권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선군정치를 내세우고, 위험한 ‘핵’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는가?
북한의 변화와 개혁개방이 수령독재체제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근본적 변화는 북한의 발전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김정일 정권과 수령독재체제 약화를 동시에 가져다줄 것이다. 따라서 김정일 정권이 스스로 근본적 변화를 선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전제로 대북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첫째, 김정일 정권의 약점을 물고 늘어져야 한다. 김정일 정권은 자신의 정권과 체제를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상실했다. 끊임없이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은 한편으로는 외부의 지원을 얻기 위해 어느 정도는 남한과 국제사회의 입맛에 맞게 행동하지 않을 수 없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의 지원이 정권과 체제 붕괴로 연결될 수 있는 길을 차단해야 한다. 이 점을 활용해 때론 김정일 정권의 생존을 위협할 만큼 고립 압박하고 때로는 통제할 수 없는 범위와 속도로 개방을 강제하는 양면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둘째, 중장기적으로는 외부의 직간접적인 강제된 개방압력에 대응하는 김정일 정권의 통제력이 상실되면서 붕괴할 가능성을 감안해, 그 때를 준비하는 정책을 물밑에서 추진해야 한다. 더구나 김정일의 나이가 올해로 65세이며, 후계자도 불투명한 상태다. 설사 후계자가 정해진다 해도 그가 김정일과 같은 절대권력을 휘두르며 수령절대주의 체제를 유지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 공동으로 김정일 이후 시기를 북한의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의 시대로 만들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후보들의 발언 곳곳에서 현 정부와의 차별화를 의식한 대목이 눈이 띤다. 다음 정권을 준비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과 차별화된 대북 정책을 만드는 것이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현 정부에 대한 차별화보다 우선하는 것은 북한의 위태로운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내다보며, 방향과 목표가 분명한 대북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확실한 차별화이기도 하다. 한나라당 후보들도 이 점에 유념해 대북통일정책의 뼈대를 다시 세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