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이명박은 언제 ‘성대 수술’ 했나?

▲ 도라산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보고회

오는 12월 17대 대통령 선거 출마자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누가 나오는지 이름도 다 못 외울 지경이다. 새 당도 계속 나오고 있다.

중국 춘추시대 때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이 있었다. 유가(儒家), 도가(道家), 묵가(墨家), 법가(法家)…. 중국역사에 등장하는 주요 사상들이 이 시기에 거의 다 나왔다.

그로부터 2500년도 더 흘러서 마르크스 사상이 통일된 중국의 지도사상이 되었다. 그러다 1956년경 중국공산당 선전부장 루딩이(陸定一)가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百家爭鳴)을 언급했다. 온갖 꽃이 여기저기 피고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주장을 하듯이, 마르크스 사상도 독점적 절대우위가 아니라 다른 사상과 경쟁하면서 지도사상으로서의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로선 파격적이었고, 이 때문에 루딩이는 문화혁명 때 비판받았다.

문혁 때 죽을 고생을 한 덩샤오핑도 문혁 4인방 잔여세력들을 이론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1978년 헌법에 “국가는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방침을 실천하여 사회주의 문화번영을 촉진한다”는 문구를 밀어 넣었다. 그러다 실권을 장악한 뒤인 1982년 경 개정한 헌법에는 이 문구를 슬그머니 뺐다고 한다. 이미 개혁개방의 시동을 걸었는데다 공산당 지도사상마저 진짜로 백가쟁명으로 나가게 되면 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혁개방이 30년 가까이 되면서 앞으로 중국에 진정한 백가쟁명의 시대가 한번 더 올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른바 ‘조화사회론’ ‘과학발전관’ 등 분배문제를 둘러싼 경제중심주의 이론만으로는 14억 인구를 통합하고 산업고도화와 정보 세계화를 동시에 감당하면서, 중국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변해갈 것이 분명한 ‘미래 중국’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지만, 설사 그런 방향으로 나간다 해도 중국 사회가 과연 얼마 동안이나 견뎌낼지 의문이다.

이야기가 좀 빗나갔지만 하여튼, 춘추시대 제자백가들의 백가쟁명은 이후 중국 사회에 거대한 발전을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사람들이나 새 당을 만드는 세력들을 보면 말로는 창조, 개혁, 평화, 미래 운운하지만 제대로 된 사상이나 이념, 정책이 갖춰진 게 아니라 12월 대통령 선거와 내년 4월 총선에서 어찌 한건 해보려는 수작이 뻔히 보인다. 따라서 백화제방 백가쟁명 수준이 아닌 것은 분명하고, 그냥 말을 가져다 붙인다면 ‘와명선조'(蛙鳴蟬噪, 개구리들이 울어대고 매미떼가 악을 씀) 정도가 아닐까 싶다.

선거는 전쟁…전투 싫어하면 안 돼

그런데, 이보다 더 한심하고 기괴한 현상이 10.4 남북정상선언 이후 벌어지고 있다. 김정일이 싫어한다고 노대통령은 정부에 ‘개혁개방’이라는 말을 못쓰게 했다. 북한인권이라는 단어는 요즘 신문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한나라당도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개혁개방, 인권이라는 용어를 잘 쓰지 않는다.

대통령이 ‘북한의 개혁개방은 북한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발언을 했는데도, 한나라당은 미사일 발사는 커녕 총 한방 못쏘고 있다. 노대통령의 발언은 남북문제에 관해 ‘핵폭탄 깽판’을 친 것이다. NLL 관련 발언은 이에 비하면 오히려 약과다. 그런데도 명색이 제1 야당이 백가쟁명은 커녕 큰 도둑이 안에 들었는데도 성대 수술한 강아지마냥 제대로 짖지도 못하고 있다.

북한문제는 핵문제, 인권문제, 평화체제, 평화통일 문제 등등 여러 가지 있지만 주민들이 먹고사는 문제인 개혁개방이 이 모든 문제들을 풀어가는 핵심 고리다. 북한문제에서 ‘개혁개방’이 빠져 나가면 ‘앙꼬 없는 찐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찐빵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북한의 개혁개방을 추진하지 않을 바에야 도대체 왜 대북정책을 펼치는가? 아무 짓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돈이라도 아끼고, 김정일 정권을 스스로 고민에 빠지도록 만드는, 그나마 ‘무위(無爲)의 대북정책’은 된다. 하지만 개혁개방을 추진하지 않고 대북지원과 경협을 하겠다는 말은 아예 까놓고 남한이 김정일 독재정권을 먹여살리는 ‘보급기지’가 되겠노라고 ‘장군님’ 앞에서 선서한 것이나 같다. 따라서 이 문제는 진돗개처럼 물고 늘어지면서 절대 놓아주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 진영은 ‘되도록 북한문제를 이슈화 하지 않는다’는 전략 때문인지,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다. 지난 10년간 정부의 대북정책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국민들이 다 알고 있다. 필자는 선거 전문가가 아니지만 상대방의 약한 고리를 집중적으로 두들겨 패고, 이슈화 시키고, 일부러라도 공개적인 링에 끌어올려 국민 심판을 받도록 하는 것이 선거에서 상식으로 알고 있다.

지난 10년동안 대북정책에 들어간 돈 대비, 시간 대비, 실제 결과물을,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옳은 전략이지, 어떻게 자신에게 유리한 무기조차 병기창에 처박아 놓고 있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정부와 신당은 11월 남북국방장관 회담, 총리회담, 종전선언, 평화체제, 6자, 4자 외무장관 회담 추진 등등, 실제로 되는 일은 없으면서 잔뜩 ‘연보랏빛 평화 비누방울’을 마구 만들어내면서 실패가 기정사실화 된 대북정책을 싱싱하게 살아 펄떡이는 쪽으로 부활시키려 할 것이다.

의도적 무시와 ‘몸 보신’은 다르다

물론 이번 선거의 최대 이슈가 경제분야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대북정책에서도 선명한 원칙을 들고 나가야 하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상대 진영을 허물어뜨리는 전투도 해야 하는데, ‘개혁개방은 북한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대북정책의 밑둥을 처내는 망발이 나와도 한나라당은 멀뚱멀뚱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이런 태도는 북한문제를 이슈화 하지 않기 위한 전술(의도적 무시)이 아니라, 그냥 ‘몸 보신’에 불과한 것으로 오해받기에 충분하다.

경제이슈와 안보이슈라는 대선의 두 축에서 경제이슈가 더 중요한 것은 맞지만, 안보이슈가 조금씩 허물어지면 경제이슈도 차츰 못난 것처럼 보이게 된다. ‘비핵-개방-3000’이 제 구실을 못하면 ‘747’의 고도비행에도 일정한 지장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명박 진영을 보면 대선 상대가 누구인지 불분명하니, 상대가 완전히 정해질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는 모습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전장(戰場)을 선점하여 진지를 구축한 뒤 신무기를 점검하고 상대에게 시험해볼 생각은 않고, 마치 상대방이 성(城)을 다 쌓은 뒤 사이좋게 ‘협의’하여 전장과 무기를 정할 요량이다. 그러다 확정된 상대가 어느날 ‘858’에 ‘비핵-평화-4000’ 업그레이드 신형 미사일을 들고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문제와 관련한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여야 후보가 ‘북한을 어떻게 개혁개방시킬 것인가’를 놓고 정책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 여당은 ‘개혁개방’을 빼버리고 ‘평화’ 이슈로 대체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평화’가 위장평화, ‘비누방울 평화’라는 것쯤은 전문가라면 다 안다. 김정일이 끝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스스로 개혁개방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대부분 알고 있다.

따라서 야당과 언론이 할 일은 이같은 ‘평화 프로파간다’를 계속 까발리는 것이다. 그런 방법이 되도록 세련돼 보이면 더 좋겠지만, 적어도 ‘북한의 개혁개방 없는 평화란 거짓’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북한의 개혁개방이 왜 모든 북한문제의 기본이 되는지를 국민들에게 환기시키는 목소리는 내야 하는 것이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