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반도 균형자로 자리매김할 묘수 있나?

최근 동북아 안보지형은 잠시 소강상태에 빠진 북한을 대신해 중국과 일본이 대리전이라도 치르는 모양새다. 일본이 보통국가로 회귀하는 것을 궁극의 지상과제로 삼고 있는 아베 총리로서는 ‘강한 자위대’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야말로 자기가 해야 할 사명이라고 믿는 듯하다.


가뜩이나 일본이 아시아에서 미국을 대신할 것이라는 관측이 짙어지는 상황에서 이를 가만히 용납할 중국이 아니다. 어쩌면 안보와 영토문제에 관한 한, 사회주의 중국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해왔다. 중국에선 이론의 개발과 현실 적용에 관한 다양한 사상적 담론형성을 선호하지 않다는 점이 주된 이유로 꼽을 만하다.


공산당이 장악한 중국 정치에서 국가와 당의 이익은 일치해야 한다. 이럴진대 이론의 철학적 배경이 될 만한 다른 사유에 귀 기울일 수 없다. 자칫 자기분열에 이르는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관된 현실주의적 사고가 공산당 지도체제를 지배하고 있다.


현실주의적이라 함은 이익과 이념이 충돌할 때 이익의 편을 드는 정서를 반영한다. 이런 중국에게 아베 정권이 추구하는 일본의 재무장 시도는 자신의 무력을 테스트해볼 좋은 시험대이다. 미국의 아바타 일본은 중국에게 동북아시아 무대에서 적절한 스파링 상대라는 의미이다. 지난 몇 년간 심심치 않게 몇 합을 겨루어 왔다.


그렇다면 북한은 중국에게 어떤 카드가 될까? 거의 모든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인 ‘순망치한론(論)’은 관계에서 양국의 필연성을 설명해준다. 북핵 자체는 불용하되 북한의 도발을 통해 중국의 존재감과 이익을 적절히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현실주의 중국이 반길 소재다. 6자 회담의 프레임으로 북한을 관리하는 것, 그 틀 안에 한·미·일을 가두어 두는 것이야말로 중국이 원하는 바 아닐까.


최근 비슷한 시기에 의미심장한 발표가 두 건 있었다. 둘 다 급작스런 북한 붕괴에 대비한 중·미의 사전 논의가 시급하다는 내용인데 한 사람은 량궈량(梁國樑) 홍콩 월간지 징(鏡)보 부편집장이고 다른 한 사람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현재 브루킹스 연구소에 자리잡은 에반스  리비어이다.


리비어는 미 국무부 코리안 데스크 출신으로 주한 미 부(副)대사까지 역임한 한국통인데 8년 전 국무부를 떠난 후에도 지금까지 미국 조야의 막후에서 이런저런 거래를 성사시켜 왔던 인물이다. 2008년 봄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뉴욕 필의 평양공연에도 깊숙이 개입했었다.


홍콩 명보(明報)에 기고한 량궈량 부편집장의 글이 발표(10월 16일)되고 난 삼일 후(10월 19일) 리비어가 ‘선제적 북한 붕괴 추진론’ 주장을 펼친 것은 단순한 우연인 걸까. 한달 전 랜드 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연구원이 발표한 ‘북한 붕괴 가능성 대비 방안 보고서’보다 한발 더 나아갔다. (개인적으로 볼 때 리비어의 그간 경험과 직관에 따른 개인적 판단을 국내 언론이 과대 포장한 감이 있지만.)


중요한 사실은, 베넷 박사가 그 가능성을 2% 미만이라고 밝힌 북한 붕괴 가능성이라기 보다는 미국과 중국이 상호 협의 하에 시나리오를 “지금”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권고 그 자체이다. 북한 붕괴는 언젠가는 ‘일어날 법한 일'(probable happening) 중 하나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한 한 중국과 미국은 서로의 ‘이해’를 알고 모종의 거래가 필요함을 상호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미국과 중국이 현재 신경 쓰고 있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이나 통일 후 북한의 경제개발 같은 인류애 차원의 지고한 목표가 아닌 듯 하다. 가까운 미래에 동북아시아의 가장 큰 지각 변동이 될 post-NK(정확히는 김씨 가문 이후의 북한이겠다)에서 벌어질 미·중의 이해갈등을 사전에 조율해 둬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계산을 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중 접경 길이는 무려 1600km라고 한다. 경부고속도로의 4배에 맞먹고 남북한 총 길이 1100km 보다 길다. 북한의 종합 핵 시설단지 영변과는 불과 100여 km에 불과하다.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 자체가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커다란 섬 같은 미국과 대륙 안에 갇혀 있는 중국이 비슷할 리 만무하다.


중국의 최대 과제 중 하나는 국경을 접하고 있는 14개 국가들과 중국 내 56개 소수민족을 별 탈없이 유지·관리하는 일이다. 중국 지도부가 1년 동안 북한 문제에 얼만큼의 시간(man-month)을 쏟을까? 중동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는 미 대통령은 또 어느 정도 가능할까?


미·중 각 지도부가 처리해야 할 산적한 외교 과제와 국내현안 속에서 북핵과 미사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시적이고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장기적인 해법을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요구인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 구도 속에 한국과 미국을 향한 북한의 종잡기 어려운 메시지는 현란할 따름이다.


북한의 침묵이 상대적으로 길어지는 동안, 아시아에서 가장 해묵은 앙금을 안고 있는 이질적인 두 국가의 군사적 갈등은 수면 위를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다. 현대사에 있어 공동의 피해자란 역사성에서는 중국과 이해를 같이 하고, 정치체제와 미국의 안보동맹이란 현실에서는 일본과 궤를 같이 하는 한국의 애매하고 안타까운 처지는 양가적(ambivalent)일 수밖에 없다.


도대체 해법은 없는 것일까?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같은 유럽의 강소국들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강대국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자로 자리매김한 묘수는 어떤 조건에서 찾을 수 있을까? 여하간 국가란 모름지기 대외적으로는 ‘부국강병’, 내치로는 ‘경세제민’을 우선 이루고 볼 일이지 싶다. 지금 한국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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