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좌파들이여, ‘진보의 우주선’에 올라타보라

오늘(8일) 오후 8시16분(한국시간)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29)씨가 우주로 떠났다.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발사대에서 지구를 박차고 떠난 이씨는 세계 475번째 우주인이다. 여성 우주인으로 49번째, 아시아 여성으로는 2번째다. 부디 주어진 소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무사히 귀환하기를 기원한다.

세계 475번째 우주인 이소연씨의 첫번째 선배, ‘1호 우주인’은 구소련 공군의 유리 가가린 중위였다.

1961년 유리는 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지구 대기권 밖으로 나가 인류 최초로 우주에 인간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것은 신(神)에 대한 도전이었다. 지구로 귀환한 그는 기독교 정신으로 건국한 미국을 겨냥하여 “우주에 가서 찾아보니 신은 없었다”고 말했다. 아마도 소련 선전매체의 ‘기획 보도’가 아닌가 짐작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최초 우주인이 소련에서 먼저 나왔다는 사실은 미국인들의 또 하나의 건국 이념인 ‘프론티어십'(개척자 정신)을 자극했다.

젊은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우주항공 산업에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투입했고 결국 1969년 11월 닐 암스트롱 일행을 태운 아폴로 11호는 소련보다 앞서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다. 1957년 소련이 최초의 우주선(무인)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먼저 우주로 진출한 지 12년만에 거둔 역전승이었다.

아폴로 11호의 달착륙 장면은 한국에도 흑백 TV로 생생히 중계되었는데, 당시 초등학생이던 필자를 포함한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달에는 옥토끼가 살지 않는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되어 실망감도 있었지만, 암스트롱의 달 착륙은 수많은 한국 어린이들의 장래 희망을 ‘대통령’이나 ‘이순신’에서 ‘과학자’로 돌려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930년대~60년대 소련이 미국보다 우주항공산업에서 앞서 갔던 이유는 수학(數學) 때문이었다.

당시에 소련은 국가적으로 수학을 중시했다. 당시 소련에는 종합대학(university)으로는 모스크바종합대가 유일했는데, 최고의 수재들이 몰린 곳은 수학물리부였다. 모스크바종합대 수학물리부는 고등학교 졸업성적 5.0 만점에 5.0을 받은 학생들에 한해 입학시험을 칠 자격이 주어졌다. 이 때문에 끼릴 공대 등 다른 명문대 교수들은 합격자 발표날 수학물리부 시험에 떨어진 학생들을 먼저 유치하기 위해 교문 앞에서 장사진을 쳤다고 한다.

소련이 수학을 비롯하여 기초과학을 중시한 배경은 중화학공업을 먼저 발전시켜 생산력을 빨리 높이려는 정책 때문이었다. 이론적으로는, 생산력이 높아진 수준 만큼 사회주의적 생산방식의 수준도 빨리 수립되어 사회주의 경제제도가 빨리 완성되고, 이어 공산주의 단계로 넘어간다는 것이었다. 스탈린이 죽은 다음 실제로 흐루쇼프는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비판하면서 소련은 사회주의 경제제도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 철학의 기초는 변증법적 유물론과 유물 변증법이 두 축이다. 따라서 당시 소련에서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과 자연과학이 발전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는데, 둘 중에서도 자연과학이 발전하는데 더 유리했다고 한다. 자연과학이 발전하려면 기초가 되는 수학이 발전하는 것은 당연하다.

1950년대 초까지 모스크바종합대 철학부에 유학했던 황장엽(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은 당시 소련의 마르크스 철학 연구는 이미 자연과학의 상당 분야가 철학의 영역으로 넘어와 있었다고 한다. 철학부 강좌장(강좌장은 커리큘럼을 신설하거나 폐지할 권한을 갖는다)도 대부분 철학박사 학위에 수학이나 물리학, 또는 화학 박사학위를 소지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철학의 영역에 자연과학이 상당 부분 넘어 와 있었다는 말은, 철학 자체의 영역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으로 이미 완결되었으니, 자연과학 연구로 마르크스 철학을 더 심화하는 작업만 남았다는 뜻이었다. 황위원장의 회고에 따르면 이 때문에 논리학 정도나 철학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고, 동료 철학연구생들도 대부분 화학, 물리학을 연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철학에 비해 자연과학이 더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 대목에서 이미 낡고 오래된 우문(愚問)을 하나 던져보자.

인간이 살아온 길, 또 앞으로 살아갈 길에 대해 모르는 것 없이 다 해명되었고(유물사관), 또 자연과학의 급속한 발전으로 지구에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이후 최초로 지구를 떠나 우주로 진입했던 그 ‘위대한’ 소련은 왜 무너졌을까.

물론 답은 대개 알려진 것이다. 90년대 초 소련 체제가 갑자기 전환되자 사회주의 몰락의 원인을 사회주의의 관료화와 개인의 창의성 말살 때문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했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만약 그렇다면 관료화를 막고, 개인의 창의성을 높였다면 사회주의는 실패하지 않았을까? 아마 남한 좌파들 중에는 아직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마르크스주의의 실패는 이미 오래 전부터 여러 각도에서 연구되었다. 유럽에서는 네오 마르크스 계열과 사회민주주의, 시민 사회론 등으로 전개되다가 ‘제3의 길’까지 거쳤다. 지금은 개혁 우파가 힘을 얻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마르크스주의 계급이론과는 역사적으로 완전히 결별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 좌파는 90년대 초 동유럽 체제전환 이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성찰과 비판을 하지 못했다. 소련과 동유럽이 무너지자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 성찰이 없으니 대안이 나올 수도 없다.

이런 가운데 남한의 좌파들은 10여년 전부터 북한문제를 매개로 해서 스스로 수렁에 빠져들어 지금은 거의 재기 불능 상태가 되었다. 특히 이론 분야에서는 아무런 대안 담론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탈이념 실생활 진보’ 식의 대안 진보론이 잠깐 얼굴을 내민 것 같은데, 그 내용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탈이념 실생활 진보’로 과연 한반도 문제의 진보를 담아낼 큰 그릇이 될지는 의문이다.

한국좌파가 진정 ‘진보’로 가려면 먼저 김정일 정권에 대한 뚜렷한 자기 입장부터 밝혀야 한다. 자신이 진보라면 현 지구상에서 가장 수구반동적인 김정일 정권에 대한 공개비판부터 먼저 선행돼야 하는 것이다.

90년대 동유럽 체제전환 때도 한국 좌파가 자기 성찰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계속 꿀먹은 벙어리가 된 이유도 동유럽 체제전환 뒤에는 바로 ‘북한문제’ 또는 이른바 ‘민족문제’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좌파가 비로소 진보로 갈 수 있는 길은 김정일 정권에 대한 입장 천명부터 하는 것이다. 그것도 공개리에 해야 한다.

예컨대 진보신당의 경우 “우리는 김정일 정권을 반대한다” “우리는 북한에 개혁개방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지원할 것이다” “우리는 북한주민의 인권을 위해 국제인권단체와 연대할 것이다”는 구체적인 입장을 명시적으로 내놓아야 한다. 이와 같은 행동을 공개적으로 하지 못하면 민노당, 민주노총, 전교조처럼 종북주의 수구반동의 수렁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고 보기 어렵다.

자신이 진정 ‘진보’라면 먼저 북한문제의 수렁에 빠져 나와야 한다. 그것이 남한에서는 진보의 첫 스타트 라인이다. 또 이는 ‘한반도 전체의 진보’와 관련하여 숙명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 자랑스런 한국의 첫 우주인 이소연 씨는 대기권 밖을 빠져나갔을 것이다. 한국 좌파들도 북한 김정일 정권의 대기권에서 먼저 빠져나와야 한다. 그것이 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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