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9일 닷새 만에 재차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우리 군 당국은 현재까지 북한의 발사체는 단거리 미사일이라는 ‘조심스런’ 공식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만약 탄도미사일로 판명될 경우 향후 북한 비핵화를 위한 북미 협상 및 남북 관계에 작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로이터 통신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이번 북한의 발사체는 복수의 탄도미사일(multiple ballistic missiles)이며, 300km 이상을 비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에서 그렇게 발표했다는 것이 파악되지 않고 있다”며 “구체적인 종류나 제원 등에 대해서는 한미 군 당국이 분석 중”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발사체가 탄도미사일로 규정될 경우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된다. 또 다른 제재안이 나오고 북한이 반발하며 대화 중단을 선언하는 예전 행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우리 군 당국이 분석을 유보하고, 로키(Low key)를 취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북한이 지난 4일 강원도 원산에서 발사한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와 전술유도무기를 발사한 지 5일 만에 또 다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배경에는 오히려 이 같은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한몫했다는 분석이 많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10일 데일리NK에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1차 발사 때 원하는 반응을 못 얻었던 셈”이라며 “더 강도 높은 도발로 미국의 반응을 끌어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전현준 국민대학교 초빙교수도 “이번 발사는 미국을 더 강하게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며 “미국에 대해 군사적 수단밖에 없는 북한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라고 말했다.
이어 전 교수는 “탄도미사일을 유엔이 제재하고 있긴 하지만 미국만 놓고 보면 단거리 미사일을 쏜 것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더 센 대북 제재 카드를 가지고 나올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심각하게 지켜보고 있다”면서도 “북한의 발사체는 소형 미사일이고 단거리 미사일(Short-range missiles)”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도발로 당장 작전과 태세를 변경하진 않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소형 미사일”이라고 강조하면서 현재까지의 합의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경계한 셈이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 대한 실마리는 남겨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전 교수는 “미국 국내 상황으로 보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도 현재 상황을 강경 대응으로만 밀고 가기엔 부담이 있다”며 “일단 대화의 끈을 가져가려고는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이번 북한의 도발이 미국의 행동을 변화시킨 만큼 큰 부담으로 작용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 부원장은 “현 상황이 미국의 위협은 아니다”라며 “미국 본토에 큰 위협은 아니기 때문에 대화의 틀을 먼저 닫으려는 모양새를 취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북한의 도발로 입지가 좁아진 건 우리 정부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9일 취임 2주년 대담에서 미사일 발사에 대해 대화와 협상 국면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근본 해법은 조속한 북미 대화라고 밝힌 바 있다.
전 교수는 “북한이 지금처럼 도발을 해온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대화가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강경책이 안보에 도움이 될지 판단해야 한다”고 했고, 최 부원장도 “북한이 대화할 의지가 있다고 해왔는데 그렇지 못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우리 정부가 추진해온 대북 식량지원도 북한의 행동을 이끌어내기엔 부적합한 카드가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전 교수는 “시기와 타이밍이 중요한데 타이밍이 늦은 것 같다”며 “미사일을 쏜 상황에서 지원을 하면 국내적으로 비판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향후 상황 개선에 대해서도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최 부원장은 “현재로서는 북미 간, 남북한 대화가 단절된 상태로 봐야 한다”며 “특별한 정세 반전 카드가 등장하지 않는 한 대화를 복원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올 하반기 한미연합훈련 시작되면 긴장이 더 고조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