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우파, 親美 전에 ‘知美’부터 먼저 하자

한국의 우파라면 미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한미관계, 한일관계가 우리 국익에 중요한 것은 틀림없다.

최근에는 좀 나아졌는지 모르겠지만, 노무현 정부 출범 후 미국과의 관계는 나빠졌다. 한국의 외교안보에서 미국과의 관계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없었고, 집권층의 과거 80년대 얼치기 반미주의 성향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우파 진영의 일부에서 반미적 경향성이 나타나 어리둥절한 경우가 있었다. 북한의 핵실험과 이어진 미북 양자대화, 베이징 2.13 합의를 거치면서 일부 우파들의 반미적 성향이 나타난 것이다. 과거에는 볼 수 없던 현상이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 이유는 이들 일부 우파들이 미국의 대북 전략에 대해 잘못 이해한 측면이 한몫 한 것 같다.

이들은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2년 1월 29일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이후 미국의 대북 정책은 무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은 김정일 붕괴 전략인 것으로 판단하였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분류하면서 그것이 단순한 핵이 아닌 북한의 공산군사독재정권과 그에 따른 북한 동포의 인권탄압도 포함되는 종합적 판단인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었다. 따라서 북한 정권의 교체에 대한 언급이나 추측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이번 기회에 북한 정권을 민주화 시키거나 제거하는 호기가 될 것처럼 낙관적으로 생각하였다.” (2007년 3월 9일 정창인 칼럼, ‘한반도에 몰아치는 태풍과 부시 대통령의 배신’에서 인용)

우파 봉쇄론자들은 대부분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우파 봉쇄론자들은 부시 정부가 핵무기의 근본적 해결에 대한 보장이 없는 조건에서 북한과 2.13 합의를 하는 것을 목격했다. 또 부시 정부가 노무현의 작전권 환수 제의에 기꺼이 동의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곤 그들의 미국에 대한 애정은 돌연 분노와 배신감으로 전환했다.

“2•13 6자회담 합의로 한국의 안전 보장은 잠재적 위기를 맞고 있다. 2•13으로 북한의 기존 핵과 핵물질은 여전히 남아있고 미국은 한국을 핵 위협에 방치하는 결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안보는 공중에 떠있게 된다. 미국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우리는 부시에게 배신당한 기분이다.” (2007년 2월 25일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은 이 칼럼에서 부시에 대한 배신감을 솔직히 토로하고 있다. 또 다른 우파 칼럼니스트인 정창인씨도 비슷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 미국은 지금 꼬리를 내리고 있다. 마치 기독교인으로 인권을 신앙처럼 보호할 것처럼 보였던 부시 대통령도 지금은 핵문제 외에는 다른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부시 대통령은 우리들의 희망을 배신한 것이다. 북한 동포의 노예같은 생활은 이제 더 이상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부시가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직후 탈북자를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만난 것은 순전히 쇼였던가?…” (2007년 3월 9일 정창인 칼럼, ‘한반도에 몰아치는 태풍과 부시 대통령의 배신’에서 인용)

또 “이제는 한국의 애국세력이 국익 차원의 반미도 생각할 때이며, 이것이 진정한 자주이다”라는 주장도 나왔다. 우파 내부에서 왜 이런 갑작스런 변화가 온 것일까?

‘지미(知美)’하고 친미 해야

첫째, 미국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즉 친미(親美)이기는 하나 지미(知美)하지는 못했다.

어떤 사람이나 세력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말보다는 실천을 보아야 한다. 부시가 2002년 북한을 “악의 축”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하기는 했으나 2002년 이후 북한정권 교체를 실질적으로 도모했다는 아무런 실천적 증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북한 인권법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보아도 명확히 알 수 있다. 미국은 2004년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키고 매년 2,400만$을 집행할 것을 법안에 명시했다. 그러나 2004년 이후 지금까지 북한인권법 예산은 단돈 1$도 집행되지 않았다. 정창인씨는 자신의 칼럼에서 “부시가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직후 탈북자를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만난 것은 순전히 쇼였던가?”하고 반문하고 있으나 결과적으로 볼 때 부시가 탈북자를 백악관으로 초청한 것은 쇼였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탈북자를 만난 뒤 실질적 후속 조치가 거의 취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시는 당시 탈북자만 만난 것이 아니라 쿠바 민주화 운동가들, 중국 민주화 운동가들을 연이어 만났다. 부시의 탈북자 만남은 북한 김정일 정권 교체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서가 아니라 여러 억압 국가들의 민주화 운동가들을 만나는 전체 이벤트 중의 일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평가해줄 수 있는 것은 미국이 2006년부터 탈북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2004년 북한 인권법 통과 이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부시 정부를 미국 내 NGO들이 줄기차게 비판하면서 미국 정부가 마지못해 일부 탈북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탈북자 망명 허용이 미국의 김정일 정권 교체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 이후에 미국 정부의 대외 정책 우선 순위에서 북한은 결코 높지 않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라크를 안정화시키는 것이 제 1순위이고 다음 순위는 북한보다 테러 지원에 더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2순위였다. 북한은 잘 잡아야 3순위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라크 문제도 제대로 해결 못하는 부시 정부 입장에서 김정일 정권 교체를 목표로 삼아서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정말 미국의 현실을 너무도 모르는 희망사항에 불과했던 것이다. 비록 미국에 대한 실망은 있었을지언정 배신감을 토로할 정도로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시민사회도 외교 역량 강화해야 한다

둘째, 이들은 외교는 국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도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 우리 사회의 여론을 주도하는 지도급 논객이라면 자신의 발언이 외교 관계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 올지 미리 예상할 필요가 있었다.

글로벌 시대에 한국의 장래에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미국에 대해서는 민간도 중요한 외교적 행위를 한다. 우파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진정 미국에 대해 실망하여 미국의 입장을 바꾸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자신의 배신감과 분노를 공개적으로 표출하기 전에 미국의 현실을 정확히 타산하고 미국의 입장을 바꿀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오히려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이런 논객들은 다혈질, 변덕쟁이가 되어 버렸다. 동맹의 입장에서 진정한 벗은 벗이 어려울 때 그 어려움을 함께 공감하면서 그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을 같이 찾아보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동맹의 기본 정신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들 논객들은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 상황은 도외시한 채 오직 자신들의 어려움만 토로하는 이기적인 친구로만 보일 것이다. 비록 동맹이라고 하더라도 미국의 국익은 한국의 국익과 항상 일치할 수는 없다. 이는 외교의 기본이다. 그러나 우파 봉쇄론자들은 한-미 동맹을 강조하면서도 때로는 미국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미국이 어려울 때 우리가 도와주면 우리가 어려울 때 미국의 지원을 당당히 요청할 수 있다는 외교의 기본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미국 국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핵 그 자체를 폐기하는 것보다도 이슬람 테러리스트 손에 핵이 들어가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라크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아주 어려운 입장임에도 여전히 대외적으로는 북한의 비핵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 승인을 단호히 거부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것만으로도 미국은 한국의 입장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해 주어야 한다.

또 미국이 주한미군 전작권 반환에 동의했음에도 주한 미군은 여전히 한국에 주둔할 것이며 한-미 동맹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차 강조하고 있다. 즉 미국은 나름대로는 한-미 동맹의 기본 정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한국 입장에서도 미국의 어려운 입장을 최대한 이해하면서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동맹이 추구해야 할 길이다.

우파 내부 혁신이 필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21세기 진일보한 한-미 관계를 위해 민간의 역량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실 봉쇄론자들 뿐 아니라 한국의 시민사회는 우파든 좌파이든 대미 외교 역량이 극히 취약하다. 현재 민간 세력 가운데 워싱턴에 상주 사무소를 두고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스탭을 고용하여 대미 로비를 전개하는 집단은 필자가 과문해서 그런지는 모르나 한 군데도 없다.

특히 한-미 동맹을 그렇게 강조해 왔음에도 우파의 대미 로비 수준이 미미하다는 것은 경악스러운 일이다. 외교 영역은 전적으로 정부에 의존해온 과거 권위주의 시대 관성이 남아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급변했다. 시민사회에서도 독자적인 외교력을 확보해야 한다. 워싱턴 정가에는 다양한 세력들이 총집결해 있다. 이념적으로도 좌-우에 걸쳐 다양하지만 기능적으로도 로비를 해야 할 곳들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백악관, 의회, 국무부, 국방부, 씽크 탱크, NGO, 여러 재단 등 미국은 여러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이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해서 최종 정책이 결정된다.

따라서 대미 로비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복합적으로 진행되어야 실효를 발휘할 수 있다. 대미 아마추어리즘을 극복하는 것은 비단 우파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정부와 시민사회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 중 미국의 힘을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비록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의 많은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자신의 국익을 위해 미국을 활용하는 그들의 전략과 기술은 충분히 배워야 할 것이다.

한국의 우파는 우선 친미 이전에 지미(知美)를 해야 한다. 그리고 지미(知美)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21세기 좀 더 성숙한 한-미 동맹을 만들어 가는 데 한국 우파가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면 우파 내부 혁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