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이념지도와 발전방향

좌우파 이념 얘기를 하면 혹자는 21세기에 웬 이념타령이냐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젊은 층에서 그런 경향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념이 흔히 말하는 빨갱이 타령이라면 타당한 반응이겠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이념은 정치·경제정책의 바탕을 이루는 기본사상체계를 가리킨다. 색깔론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시장이냐 정부냐, 우리민족끼리냐 세계화냐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기본접근자세를 말한다.

이런 유형의 이념문제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이념 얘기가 나오면 알레르기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유럽의 선거에서 좌파가 무너졌다든가 우파정권이 위기라는 등의 보도에는 아무런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이념문제에 거부감을 갖는 이유가 흔히 말하는 색깔론에 대한 거부감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좌우의 이념문제가 정치·경제적 기본정책을 분석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때에는 여전히 유효하다.

1987년 체제는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절충에 의한 구도였고, 형식적 민주화의 완성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산업화세력은 해방이후 1980년대 후반부까지 민주화를 유보한 채 반공과 경제성장을 내세워 산업화에 세계사에 그 유례가 드문 성공을 보여주었고, 이에 대항한 민주화세력은 인권과 민주화를 내세운 투쟁에 매진하여 마침내 형식적 민주화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1987년 체제를 성립시켰다.

1987년 체제는 대한민국이 산업화를 이루고 이어 민주화까지 완성하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성과를 과시한 일대 사건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1987년 체제 이후 이를 성립시킨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은 발전을 멈췄다. 산업화세력의 냉전적 반공주의는 소련과 동구를 비롯한 사회주의국가들의 몰락으로 냉전구도가 무너진 이후에도 여전히 냉전적 대결적 반공주의에 머물렀다. 우리의 경제가 고도화함에 따라 높아진 국민의 투명성 요구에도 부응하지 못했다.

경제발전 초기에 효과적이었던 국가지도적 경제성장 모델에 집착하면서 시장의 기능을 가볍게 여겼다. 과거의 부패 고리를 떼어내지 못하고 소위 차떼기 행각을 벌였다. 그 결과 수구우파(올드라이트)가 되고 말았다.

민주화세력은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타고 적대적 대북정책의 반작용에 편승한 민족통일 열기에 힘입어 마침내 1997년 집권에 성공한다. 이후 민주화세력은 성장보다 분배, 시장보다 국가통제를 앞세운 평등사회를 추구했다. 우리가 미국의 식민지나 다름없다는 시대착오적인 인식으로 반미자주화를 부르짖으면서 “우리민족끼리”를 내세우면서 김정일을 보호하고, 수백만의 주민이 굶어죽거나 수용소에 감금당하는 북한주민을 외면하였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자만심으로 “내가 하는 것은 진정성이 있으므로 옳다”는 자아도취에 빠진 채 권력의 단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 결과 민주화세력은 올드레프트(수구좌파)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4년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다. 2004년은 수구우파가 2번에 걸친 대선에서의 참패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였다가 총선에서 탄핵역풍으로 지리멸렬한 후 “수구꼴통”으로 몰려 정신이 없었다. 수구좌파는 대선에서 2번에 걸친 역전극에 이어 대통령탄핵시도를 역공하여 의회다수당까지 장악하자 향후 30년간 집권을 장담하면서 기염을 토했다.

2004년 한국의 이념지도는 수구좌파와 수구우파는 서로를 배척하면서 한편으로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마치 60-70년대 남북이 서로를 괴뢰라고 부르면서 배척하고 상대방의 도발을 강조하여 긴장을 조장하면서 정권안보에 열을 올렸던 관계와 유사한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자유주의연대는 2004년 가을 이러한 수구우파와 수구좌파의 적대적 공존관계를 고발하면서 우파혁신운동의 기수를 올렸다. 바로 천하4분론이다. 자유주의연대는 당시 우리나라의 정치이념지형을 수구우파와 수구좌파, 혁신우파와 혁신좌파로 4분한 다음 2004년 당시 수구우파와 수구좌파의 시대착오적인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다고 규정하면서 우리의 정치지도가 혁신우파와 혁신좌파의 상호보완적인 경쟁관계로 재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 길만이 우리의 당면 과제인 선진화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바로 뉴라이트운동이다. 레닌의 러시아혁명이 한줌도 안 되는 볼세비키에 의하여 수행되었듯이 뉴라이트운동이 비록 그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운동이었기에 “마른 논에 물들어가듯이” 우리 사회는 뉴라이트 운동에 환호하였다.

아직 우리의 이념지형은 올드라이트와 올드레프트의 적대적 공존관계에 있다. 이 양 세력이 모두 올드(old)인 이유는 시대에 뒤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올드라이트는 70,80년대의 냉전적 반공주의와 국가선도 경제성장모델에 집착하고 있다. 올드레프트는 반군사독재투쟁 시절의 사고에 그대로 고착되어 있다. 저항적 민주주의요 저항적 민족주의의 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美帝의 식민지라도 되어 있는 듯이 주장하면서 반미장사, 민족장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수구우파와 수구좌파의 공생관계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이는 국가적 불행이다.

과거 우리의 이념문제는 남북간의 체제경쟁문제였다. 자유시장경제체제를 보존하느냐 공산화되느냐 하는 문제였다. 쉽게 말하면 남북간에 먹느냐 먹히느냐의 문제였다. 따라서 당시는 사상의 자유를 논하기에는 생존이 급한 상황이었다. 냉전적 반공주의, 민주주의의 일부유보가 불가피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남북간의 체제경쟁은 남한의 압승으로 귀결되었다.

이제 우리가 북한에 의하여 공산화될 위험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된다. 남한에 있는 친북좌파세력이 북한에 의한 공산화를 도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민족장사에 나선 것이고, 그 방편으로 친북(정확하게는 친김정일)노선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입으로는 북한체제와 김정일을 떠받들고 있지만 북한에 가서 살라고 하면 손사레를 칠 인물들이다. 입만 열면 미국을 비난하지만 자식을 미국유학 보내려고 안달이 난 사람들이 바로 그들인 것이다.

2007년 대선의 의미

2007년 대선은 우리가 선진화의 문턱에 주저앉느냐 아니면 선진화에 진입하는 기초를 닦느냐를 결정하는 중대한 갈림길이다. 이 대선에서 좌파가 다시 집권한다면 우리는 아르헨티나의 전철을 밟아 세계경제의 기린아에서 지진아라로 전락할 것이다. 사실 2차대전 후 독립한 신생국 중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는 없다. 선진국에 가까이 다가간 나라로 홍콩이나 싱가포르 정도를 들 수 있겠지만 도시국가에 불과하다.

그만큼 후진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는 어렵다. 소외 말하는 중진국증후군이다. 우리는 중진국 증후군을 깰 수 있는 유력한 후보로서 세계사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존재인데, 만약 우리가 선진국의 문턱에서 주저앉는다면 우리 뿐 만 아니라 선진국을 목표로 하는 후발국들에게 반면교사의 예를 하나 제공할 뿐이다. 이렇게 된다면 민족적인 불행이다. 2007년 대선에 그 운명이 달려 있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서 좌파가 재집권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10년간의 좌파집권기간 특히 노무현 정부의 집권기에 워낙 그 무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기 때문에 대세는 일찌감치 우파에게로 넘어갔다. 1997년과 2002년에 워낙 유리하다고 본 판세를 역전당한 바람에 우파가 공포에 가까운 경계심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당시와는 상황이 판이하다.

그 당시만 해도 선거를 7-8개월 남겨 놓은 시점에서 정당지지율이나 예비후보 지지율이 지금처럼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지는 않았다. 국민은 적어도 현 집권 세력을 버리기로 마음을 굳혔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2007년 12월 선거일까지 정국의 요동이 있고, 위기국면이 한두번은 올 수 있겠지만 좌파의 무능을 뼈저리게 체험한 국민들이 다시 좌파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사자가 조그마한 토끼를 사냥할 때에도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대세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굳은 것은 사실이지만 토끼를 잡을 때까지 있는 힘을 다해야 함은 물론이다.

진짜 승부는 차기 정부의 집권기간에 결판날 것

이번 대선에서 우파가 집권할 것은 확실한데, 문제는 차기 정부의 집권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우파가 역시 신통치 않은 성적을 거둘 경우 우리 국민이 다시 좌파를 선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차기정부가 5년간 국정에서 죽을 쑨다면 노무현 정부처럼 가차 없이 버림받을 것이고 좌파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차기 5년이 중요하고 진짜 승부는 이 5년 동안에 결판난다고 보는 것이다.

차기 정부 5년간 평균 정도의 성적만 올리고 웬 만큼의 자질을 갖춘 후보자가 있다면 우파가 다시 집권할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첫째, 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국민은 과거를 잘 잊는 경향이 있다. 차기 정부가 5년 동안 평범한 성적을 거둘 경우 국민들은 좌파가 무능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또다시 좌파의 손을 들어 줄 가능성이 높다.

둘째, 좌파들은 격렬하게 차기정부를 흔들 것인데, 차기정부의 성과가 미흡할 경우 그 흔들기를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좌파는 툭하면 거리에 나와 선동할 것이다. 선전·선동이라면 누구 못지않은 게 좌파들 아닌가.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에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다는 속말이 있듯이 한 번 권력 맛을 알게 된 좌파들은 차기정부의 집권기에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흔들기에 나서면 우파의 재집권을 어렵다. 셋째, 우리국민은 좌파성향이 유독강하기 때문에 좌파가 재집권할 가능성이 높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 속담이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 사람 특유의 평등의식은 좌파에게는 좋은 자양분이다.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한 사람이 돈을 주웠는데, 돈을 주운 사람이 9, 옆에 있던 사람이 1을 나누어 갖자고 불공평한 제안이 있을 때 적게 받는 사람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그대로 되고, 이를 거부하면 두 사람 모두 한 푼도 갖지 못하게 될 경우 대다수 사람이 이 제안을 거부한다는 실험결과는 인간의 좌파적 성향을 잘 보여 준다. 사람들은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불공평함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차기 정부가 뛰어난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2012년 대선에서 우파가 다시 정권을 잃을 위험성이 높은 것이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가장 경계하여야 할 부분이다.

혁신우파와 혁신좌파의 구도

이렇게 좌파가 재집권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데, 현재의 수구좌파가 2012년에 재집권한다면 이는 분명 민족적 불행이다. 선진국의 문턱에서 주저앉아 영원히 2등국으로, 나아가 중국의 변방국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역사를 보면, 고대문명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한 나라는 중국이 유일하다. 중국이 하나로 통일되었을 때 한반도는 그 강력한 영향권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중국은 50년 전에 다시 통일되었다.

중국이 공산주의라는 비효율적인 체제에 얽매여 퇴보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우리가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발전할 수 있었지만 이제 중국이 자본주의를 앞세워 거인이 되고 있으니 우리는 자칫 다시 조공을 해야 할 처지가 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암울한 구도를 깰 유일한 구도는 우리사회가 혁신우파와 혁신좌파가 서로 경쟁 보완하는 체제이다. 지금과 같이 서로를 배제하면서 서로를 이용하는 수구우파와 수구좌파의 적대적 관계 하에서는 어느 쪽이 정권을 잡든 선진화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상호파괴적이므로 어느 쪽이 집권하든 반대편은 사생결단을 내자고 덤빌 것이고, 그러한 상황에서 선진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수구우파와 수구좌파의 파괴적 대결구도가 혁신우파와 혁신좌파의 상호보완적 경쟁관계로 대체될 때 차기 정부 5년간 우리가 선진화 준비를 거쳐 선진국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산업화세력의 발전방향

우파는 혁신우파로 거듭나야 한다. 이 번 대선은 어차피 현재의 수구우파와 수구좌파의 대결구도일 수밖에 없다.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우파혁신운동이 시작되기는 하였으나 아직 주류를 형성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차기정부집권동안 우파는 혁신우파로 진화하여야 한다. 현재의 뉴라이트 세력이 중추를 이루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현재 우파의 중심을 이루는 산업화세력이 혁신우파로 거듭나야 한다는 의미다. 다행히도 수구우파는 두 번의 대선패배로 그 동안의 시대착오적인 냉전적 반공주의와 국가통제 경제발전관에서 벗어나고 있다.

혁신우파의 길은 자유주의에 있다. 역사를 보면 자유가 꽃피는 곳, 즉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에 대한 보장이 철저한 사회가 경제와 문화가 발전하는 즉 선진화가 달성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산업혁명 직전 프랑스의 문화나 과학수준이 결코 영국에 뒤지지 아니하였으나 산업화는 100년 가까이 뒤졌다.

프랑스의 강력한 왕권은 영국에 비하여 시민의 자유와 사유재산(특히 지적재산권)을 손쉽게 유린하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우리사회에서 자유주의가 한 번도 꽃피워본 적이 없다. 우리의 산업화세력은 혁신우파로 거듭나야 한다. 여전히 빨갱이 타령 밖에 모르는 세력이 남아 있겠지만 이들은 일본의 극우파와 같이 사회의 한 구석을 차지하게 될 뿐 영향력은 현저하게 상실할 것이다.

민주화세력의 발전방향

차기 대선에서 좌파가 재집권에 실패할 경우 좌파는 분열할 것이다. 일부 좌파는 중도로 위장하여 재기를 노릴 것이다. 중도의 정확한 의미를 따지지 않은 채 전통적으로 중용을 중시하는 국민들이 경향에 빌붙어 중도로 위장하는 세력이 나타날 것이다. 이미 이 번 대선에서 중도를 표방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중도를 표방하는 세력 중 상당수는 좌파의 위장세력이다.

일부 좌파는 여전히 교조적인 좌파이념에 매달리겠지만 이들은 민주노동당으로 흡수되어 한 구석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화세력의 바람직한 발전방향은 혁신좌파(뉴레프트)로 진화하는 일이다. 현재 그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아직 미미한 형편이다. 차기 정권에서 혁신좌파가 세를 얻을 것으로 보이고 또 그래야 한다.

만약, 민주화세력이 혁신좌파로 진화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수구우파의 몰락을 보듯이 수구좌파의 몰락 나아가 좌파 전체의 몰락을 보게 될 것이다. 이는 진보세력의 몰락이 된다. 현재 좌파는 몰락의 징후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2004년 그 욱일승천하던 좌파세력은 현재 흔적을 찾기 어렵다. 30년 집권을 장담하던 열린우리당은 분당에 이어 지리멸렬을 보여주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자칭 진보라면서 그 어떤 봉건왕조보다도 교조적이고 전근대적인 김정일 정권에 옹호에 전력을 다하고 있으니 아무리 민족이라면 열광하는 우리 국민이라도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아니 북한주민을 한민족으로서 사랑하는 우리국민들이 북한주민을 굶겨죽이는 김정일 정권에 분노할 수밖에 없고, 그 정권을 옹호하는 수구좌파의 행태를 혐오할 수밖에 없다. 민주화세력이 혁신좌파로 진화하지 못한다면 일본에서 극좌파가 몰락하였듯이 그렇게 스러져갈 것이다.

그러나 좌파의 전반적인 몰락은 진보세력의 불행이자 우리의 불행이다. 우파의 정책이 바른 길이라 하더라도 한 사회가 우파 일색이라면 이 또한 끔찍한 일이다. 일본에서 그나마 소금역할을 하던 사회당이 몰락한 이후 일본정치는 그 나마 자정능력을 의심받고 있다.

2012년 대선은 혁신우파와 혁신좌파의 정책 경쟁의 장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어야 우리의 선진화가 달성될 것이다. 이러한 구도창출은 차기 정부 5년 동안 우리사회가 이루어야 할 중차대한 과제다.

이 재 교(자유주의연대 부대표, 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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