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때 국군포로 수천명 소련 끌려가”

한국전쟁 당시 국군포로 수천명이 미군 등 유엔군과 함께 북한에서 소련으로 끌려갔고, 정전협정 후 포로교환 때도 송환되지 않았다는 것이 12일 미국 국방부 비밀해제 문서를 통해 밝혀졌다.

이런 내용은 미국과 러시아가 냉전 종식후 한국전쟁 당시 미군 포로의 러시아 생존 여부 확인 및 유해 발굴.반환을 위해 공동으로 만든 ’미.러 합동 전쟁포로 및 실종자 위원회’가 조사활동 결과의 하나로 1993년 8월26일 작성한 ’한국전쟁 포로들의 소련 이동 보고서’에서 확인됐다.

보고서는 강상호 전 북한 내무성 부상 겸 군총정치국장과 53년 5월 이 문제를 심층보도한 미 에스콰이어지의 자이그먼트 나고스키 기자의 진술을 토대로 이 같은 내용을 다뤘다.

해방후 소련 공산당의 명령으로 북한에 파견돼 한국전을 치르고 군사정전위 북측 수석대표(58~59년)도 역임했던 강씨는 92년 11월 진술에서 수천명의 한국군 포로들을 소련내 300~400개 수용소로 이송하는 것을 지원했으며 수용소는 대부분 타이가(taiga) 지역이나 일부는 중앙아시아지역에 있기도 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강씨가 한국군 포로들의 압송 사실만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의 진술은 미군을 포함한 다른 유엔군들도 수용소로 보내졌음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고 서술했다.

나고스키 기자는 소련 내무부 요원 2명과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직원에게서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국군 포로 등의 소련 압송 경로와 생활상을 진술했다.

압송은 51년 11월~52년 4월 태평양 해안과 타타르 해협이 얼어있을 때에는 기차로 지타를 경유해 몰로토프로 옮겨지거나, 얼음이 녹았을 경우에는 해상을 이용하는 두가지 경로를 통해 이뤄졌다.

보고서는 주로 국군과 남한 정치인들로 이뤄진 포로들이 오호츠크 등 소련 극동항구로 이송된뒤 야쿠츠크 주변의 콜리마 수용소 등으로 보내졌다며 추크치해 지역으로 이송된 포로들은 최소 1만2천명에 달하고 도로공사와 비장장 건설 등에 동원돼 사망률이 높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보고서는 특히 러시아측 속기록을 인용해 스탈린이 52년 9월19일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 유엔군 포로의 20%를 인질로 잡아놓자고 제안했다면서 이런 정황으로 볼 때 다수의 한국군이 포함된 많은 유엔군 포로들이 이미 소련에 있는 수용소들에 비밀리에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서 진술한 강씨는 북한내 소련파 숙청 움직임에 반발해 59년 소련으로 귀환했고 2000년 12월12일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91세로 사망했다.

이 같은 보고서 내용이 사실일 경우 한국전 포로 송환 문제가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토돼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한국전쟁 당시 남한 주요 인사들의 납북 상황 등을 담은 미 중앙정보국(CIA)의 비밀해제 문서도 공개됐다.

1951년 8월8일자 ’만포진 포로에 대한 북한인들의 취급’ 첩보 보고서는 독립운동가인 박모씨가 1950년 9월 남측의 주요 이사 4천600명을 북한으로 집단 납북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납북자가 10월19일 만포진에 도착한 이후 대다수는 이곳 수용소에 수감됐으나 중요 인사들은 압록강 너머로 이송돼 만주공안경찰에게 넘겨졌다고 기록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