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구소련과 북한의 차이 제대로 알아야

많은 한국 국민들은 구 소련도 북한처럼 공산권 국가였기 때문에 정치와 사회 부분에서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에게 공산권 국가라면 국내 여행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하고 해외교류를 차단하고 정권에 대해 열망이 부족한 사람들을 수용소로 보내는 국가이다. 그래서 수많은 이곳 사람들은 1960년대나 1970년대 소련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국내 어디에나 갈 수 있었고, 돈만 있으면 라디오 수신기를 살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깜짝 놀란다.


1940년대 말 소련 위성국가로 탄생한 북한은 당연히 스탈린 시대 소련체제를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50년대말에 들어와 구 소련과 북한이 빨리 변화하기 시작했다. 1953년 스탈린 사망 이후 소련 정권은 제한적인 것이지만 자유화의 길에 접어들었다. 반대로 그 무렵 김일성 정권은 아주 엄격했던 체제를 더 엄격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구 소련과 김일성 시대의 북한을 비교하면 1960~70년대 소련은 거의 민주국가처럼 보였다. 국민들에 대한 감시도 북한 보다 너무 없었고, 물질적인 생활도 북한보다 훨씬 풍요로웠다. 필자는 서양 사람들에게 60~70년대 소련의 형무소에 갇혀 있었던 정치범이 몇 명 정도 있을 것 같은가라는 질문을 하곤 한다.


이 질문의 정답을 들어 본 적은 아직 거의 없다. 서양사람도 남한 사람도 대부분은 당시의 소련에서 정치범들이 수만 명 정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상 1970년을 전후하여 소련 전체 인구가 2억5천만명 이었지만 정치범 숫자가 천 명 정도였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통계가 당시 소련 정권의 주장이 결코 아니다. 당시 소련 정부가 소련에서 정치범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통계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 통계는 1990년대 초에 나온 소련 비공개 자료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인권보호 운동 자료를 보면 대체로 비슷한 통계가 나왔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971~1975년까지 소련에서 정치범으로 체포된 사람은 893명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그 기간에 소련에서 매년마다 정치범으로 체포된 사람은 180명이다. 1976~1980년 체포 숫자가 347명으로 보다 더 낮아졌다. 소련전체 인구를 감안한다면 1970년대 말 매년 정치범 체포의 숫자는 1억명당 26명 꼴이었다.


스탈린의 테러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소련 사람들은 이러한 정치 자유화를 환영할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이 사망한 1953년 기준으로 소련 수용소에서 있었던 정치범의 숫자는 120만 명을 초과했다. 그래서 스탈린 사망 이후 정치범의 숫자가 몇 년 이내 천 배나 급감했다. 김일성은 이것을 수정주의로 봤고 1950년대 이후 북한 주민들에 대한 박해와 테러를 심화하기 시작했다.


스탈린 이후 소련 국민들이 당국자들을 무섭게 여기지 않았거나 공산당의 정치노선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대신 술자리에서 공산당이나 사회주의 제도에 대해서 몇 개의 농담을 한다면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체제에 대해서 비판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알려진다면 출세가 많이 어려워지고 가족도 이런 저런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특히 당 간부나 장교, 경찰 등이 되고 싶은 사람들은 말 조심을 해야 했다.


또한 공개적인 반정부 활동도 불가능했다. 친구끼리 술을 마시면서 공산당 총비서나 고급간부들은 욕하거나 자본주의 나라에 대해서 극찬할 경우 평범한 사람이면 그리 위험하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이야기는 사무실에서 공개적으로 하거나 특히 시위와 같은 정치적인 행위를 한다면 큰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0-1970년대 소련은 북한보다 아주 자유로운 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또 하나의 특성은 해외 정보에 접촉하는 방법이다. 북한은 일반 국민들이 기술적인 안내서가 아닌 외국 출판물과 간행물을 전혀 보지 못한다.  소련에서 공산주의 사상이나 소련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해외 서적은 일반인들이 볼 수 없었지만 반공 사상이 없는 도서가 서점에서 팔릴 수도 있었고 도서관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었다. 1960~1970년대 소련에서 외국에서 나온 서적들이 다 수입할 때에 검열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려서 어떤 제한 없이 국내에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라디오는 제일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북한에서 고정주파수 수신기만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 북한 주민은 남한을 비롯한 외국 방송을 청취한다면 정치범이다. 1960년대 이후 소련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소련의 멀고먼 시골에서도 좋은 단파 라디오 수신기를 구입할 수 있었다. 이 수신기로 외국 방송을 청취한다면 100% 합법적인 행위였다.


국내 여행도 별로 제한이 없었다. 일반인들이 통행증 없이 갈 수 없는 지역이 있었지만 이러한 여행 통제 대상 구역은 압도적으로 접견지역이나 군사 기지 밑 군사 시설에만 해당했다. 예외적으로 많은 곳이 있었지만 일반적인 거주지역은 제한이 없었다. 소련 국민들은 국내에서 거의 어디에나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었다. 장기 체류나 이사에 대해서 국가 통제가 있었지만 단기 여행은 거의 민주국가처럼 자유로웠다.


역설적으로 소련체제를 무너지게 된 이유가 바로 이러한 자유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소련 정부가 북한 정부만큼 민중을 엄격하게 통제했더라면 소련이란 국가는 지금까지 그대로 존속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소련체제의 붕괴를 야기한 이유 중에 제일 중요한 이유는 국가사회주의의 경제적인 무능력 및 비효율성이다. 그러나 소련 사람들은 기타 국가의 생활에 대해서 잘 모르고 비공식적인 정보를 접촉 할 수 없었더라면 이러한 무능력과 비효율성이 얼마나 심한 일인지 알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또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서 소련 국민들은 수많은 수평적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국가가 양보하는 비정치적인 활동을 통해서 사람들은 이러한 관계를 많이 맺고 결국 1980년대 이와 같은 환경은 반공운동의 튼튼한 기반이 되었다. 소련이 붕괴되고 나서 이를 후회하는 사람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잃어버린 초강대국이라는 지위이다. 그래서 구 소련 사람들은 이렇게 온건한 정치노선을 했던 공산당을 그리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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